사회

"지나가다 쳐다만봐도 학교폭력이라는 학교가 정상인가"

류인하 기자 2018. 12. 3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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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정엽 행정사는 학교폭력 사안만 8000여건 다뤘다./우철훈 선임기자

학교폭력 문제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는 누구도 교사와 학교에게 전권을 주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가해학생이든 피해학생이든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려 하는 교사가 없다는 데 있다.

이정엽 행정사는 “가해자 재심·피해자 재심을 따로 처리하는 복잡한 시스템과 처분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함, 교사와 학교장에게 사전종결권을 주지 않는 구조가 결국 학교폭력을 법정분쟁으로 끌고 가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행정사가 2012년부터 처리한 학교폭력 사안만 8000여건, 초기 접수부터 종결까지 처리한 사건만 2400건에 달한다.

학교폭력 사건을 많이 접하면서 느꼈을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신고하면 무조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가 열린다. 담임 종결이나 학교장 종결이 안 된다. 신고를 했다가 화해를 했으니 종결하자는 것도 안 된다. 신고한 피해자가 임의적으로 ‘나 신고 안 하겠다’고 했더라도 취하제도가 없다. 교육부 사안 처리지침에는 종결 요건이 세 가지로만 규정돼 있다. 첫 번째가 신체적·정신적·재산적 피해증거가 없고 화해했을 경우이고, 두 번째가 오인신고, 세 번째는 조사결과 학교폭력으로 보기 어려운 사건이다. 이 세 가지 항목에만 들어가면 학폭위까지 가지 않고 사전종결이 된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사안을 판단하는 기준이 학교마다 다르다. 피해자가 오인신고였다고 주장해도 학교가 봤을 때 학폭이면 그냥 학폭위가 열린다.”

실무에서 봤을 때 해결책이 있어 보이나. “곧바로 학폭위로 가지 않고, 숙려제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일단 한 번 숨고르기 식으로 끊어주는 거다. 그 사이에 화해가 되거나 원만하게 처리가 되면 학폭위까지 가지 않고 자체 종결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해가 되지 않으면 학폭위로 가는 게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누가 봐도 경미하지 않은 사건, 예를 들어 전치 몇 주가 나오는 부상사고나 사망사고와 같은 것들은 숙려제로 가선 안 된다.”

너무 어려운 문제 같다. 그리고 학폭위 개시 이후 절차도 너무 복잡하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경우의 수가 몇십 가지가 나온다. 절차가 복잡하고, 구조 자체도 복잡하다보니 교사들도 모르고, 하다못해 학폭에 참여하는 위원들도 그 절차를 정확하게 모른다. 학폭위 다음 절차가 복잡한 것은 말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피해자 재심은 시·도 지역위원회에서 열리고, 가해자 재심은 시·도교육청에서 열린다. 같은 사안을 놓고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재심하는 기구가 다르다. 두 기구의 결론이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가해재심에서 처분취소가 됐는데 피해재심에서 가해학생에 대해 더 엄한 처벌이 나올 때가 있다. 재심 결과가 달라졌을 때 결국은 또다시 행정심판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재심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재심에서 얻은 이득이 없는 거다. 어떤 해석이 맞는지 보려면 중앙행정심판위원회를 가거나 소송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반사이득은 누가 받나. 나 같은 행정사와 변호사가 보는 거다.

재심 역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인가. “재심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아나. 이게 왜 기각이고, 인용인지 이유를 재심 청구자에게 알려주질 않는다. 서울·경기 지역은 재심처분 이유에 대한 문구가 고정돼 있다. 거의 비슷한 포맷이다. <사건 경위와 내용,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관계, 피해학생의 피해정도 등 제반사정을 종합해 볼 때 위 처분은 적절하다고 판단되므로 재심청구를 기각한다/부적절하다 판단되므로 재심청구를 인용한다>라고 쓴다. 그러면 피해자 부모든 가해자 부모든 재심 결과가 납득이 안 된다. ‘왜’가 빠져 있으니 아무도 납득을 못한다. 하다못해 판결문에 적시되는 처분 이유의 절반만 적어줘도 납득을 한다. 그런데 재심 이유가 너무 불친절하다. 그러면 이유를 찾으려고 행심이든 소송이든 가는 거다.”

가해재심이든 피해재심이든 단일화하고, 이유 적시가 충분해야 하겠다. “그러려면 학폭위에서 처벌되는 사건 수가 적어져야 한다. 그래서 전단계로 숙려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의 4분의 1 정도인 경미한 수준의 것은 숙려제로 해결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건의 절대수를 줄여야 된다. 무리하게 모든 사건을 학폭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정말 심각한 상황을 정밀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행정사 입장에서는 일거리가 줄어들 수 있는 이야기다. “일거리가 줄 수도 있겠지만 부모님들이나 사회적으로 봤을 때 이게 과연 옳은지를 먼저 봐야 하지 않을까.”

재심에 이유를 쓴다고 불복률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왜 불복이 많은지 아나. 너무 세게 나오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사례 외에 일반적 사례를 봐야 한다. 현장에서는 한 대만 때려도 강제전학이고, 지나가다가 처다봐도 전학이다. 그러면 불복재심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나는 가해·피해사건을 모두 맡아왔다. 나는 잘못했지만 벌을 안 받겠다는 학생은 1000명 중 한 명이다. 행위에 비해 처벌이 과하게 나오니까 그걸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오는 것이다. 1000명 중 한 명을 기준으로 잡으면 나머지 999명이 피해를 보게 된다. 학폭법은 절대 한 대만 때려도 가혹하게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교육과 선도의 법이다. 징벌 위주의 법이 아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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