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먹는다는 건,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는 일"

2018. 12. 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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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책 <사랑할까, 먹을까> 황윤 감독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제작부터 고기의 생산 과정을 관찰·사유한 8년
공장식 축산이 미치는 영향이란.."육식은 세상과 연결된 사회·정치적 행위"
황윤 다큐멘터리 감독은 최근 펴낸 <사랑할까, 먹을까>에서 고기에 대한 욕망으로 고통 받는 동물들의 현실을 직시했다. 자신의 책을 보고 있는 황 감독을 그의 남편 김영준 수의사가 직접 찍었다.

서너살 때 ‘조기교육’을 통해 돈가스가 돼지라는 걸 알아버린 아이는, 어느 날 식탁 위 생선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물고기 불쌍해. 엄마,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는 안 먹을 거야.”

최근 책 <사랑할까, 먹을까>를 펴낸 다큐멘터리 감독 황윤씨의 아들 도영이는 4살이었던 그때부터 ‘눈동자를 가진 타자’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아이는 황 감독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하는 존재였다.

“도영이가 없었다면 대충 회피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를 질문들, 그러니까 살처분 문제 같은 걸 내가 뭘 어쩔 수 있겠어, 하며 넘어갔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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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15분 거리에 돼지가 살고 있었다

26일 서울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애니멀피플>과 만난 황 감독은 2010년 아이가 두 돌이 지나고 한창 육아에 매진하던 때, 아이에게 동물이 나오는 동화책을 읽어주다 텔레비전에서 들려온 살처분 보도의 충격을 말했다. 그의 인생은 수천 마리의 돼지가 비명을 지르던 아비규환의 살처분 구덩이를 본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직접 그 현장을 확인했다. 당시 천안시의 한 아파트에 살았던 그는 집에서 차로 불과 15분 거리에 돼지 농장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돼지가 살고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살아있는 돼지를 본 적이 없었던 거죠.”

산골 농장에 사는 아기 돼지가 카메라와 눈을 맞추고 있다. 황 감독은 “농장에서 만난 돼지들은 인지 능력이 뛰어나고 감수성이 풍부한 동물이었다”고 말했다. 한겨레출판 휴 제공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카메라를 들쳐메고 돼지 농장을 찾아 나선 것이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시작이었다. 2015년 만들어진 영화는 가깝고도 멀리 있는 동물 돼지를 들여다보며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부터 생명 윤리에 대한 질문까지 던진다.

영화가 채식하는 엄마, 육식하는 아빠, 그 사이에 낀 아들이 있는 ‘잡식가족’의 고민을 다룬다면, 책은 이후 수년간 고민하고 답을 찾아 나선 여정과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들여다볼수록, 먹는 행위가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아주 많은 것들과 연결된 대단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일”이었다.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황 감독도 먹는 것이 그저 취향의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축산의 현실을 알고 난 다음에는 얘기가 달라졌다.

옴짝달싹 못한 채 갇혀 있는 돼지들. 한겨레출판 휴 제공

황 감독은 “공장식 축산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라고 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려 “전지구적으로 수백억 마리의 동물을 먹기 위해 기르는 공장식 축산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파괴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축산 방식과 육식 위주의 섭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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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밖 돼지들의 발견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항생제, 호르몬제, 피부병약, 기관지약 등 여러 약물에 의지해 고기를 생산하는 기계, 알 낳는 기계로 사는 동물들은 은폐돼 있다. 은폐된 농장에서 태국, 네팔, 중국 등지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분뇨를 치우다 질식사하기도 한다.

공장식 축산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 재난의 원인이 되고, 밀집 사육으로 바이러스의 온상이 되기도 하는데, 이 행위를 계속한다면 지구의 생명력이 지속 가능할까.

거대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까맣고 동그란 돼지의 눈을 여러 번 들여다보는 시간만으로도 ‘사랑할까, 먹을까’라는 질문에서 사랑 쪽으로 무게 추가 미끄러져 내려갔다. 산골 농장에서 지푸라기를 헤집으며 뛰어노는 아기 돼지의 눈은 장난기로 빛났다. 아이에게 차마 보여주지 못한 공장 돼지의 동공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같았다.

공장 밖의 돼지들은 자는 곳과 배설 장소를 구분하는 깔끔한 동물이었고, 절대 ‘돼지처럼’ 많이 먹지 않았다. 어미 돼지들은 공동 육아를 하며 서로의 새끼를 아끼고 사랑했다. 개 못지않은 풍부한 감정으로 인간과 교감하는 동물이기도 했다.

황윤 감독은 공장식 축산의 비인간성과 파괴성이 결국 지구 생태계를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실상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돼지는 왜 더럽고, 탐욕스럽고, 미련한 동물로 여겨져 왔을까. 돼지뿐만 아니라 왜 어떤 동물들은 전통적으로 혐오의 대상으로 그려질까. 교활한 여우, 미련한 곰, 사악한 여우가 뒤집어쓴 억울한 누명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걸까.

그는 누명의 배경으로 인간의 죄책감을 지적한다. “그래야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그들의 가죽을 벗기거나 잡아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돼지에 대한 오랜 오해와 누명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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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담할 수 없는 폭력의 세계

2011년 무턱대고 돼지 농장을 찾아나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8년여 동안 끝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계속된 데는 고기가 나오는 급식 대신 채식 도시락을 싸가는 걸 선택한 도영이의 힘이 컸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질문을 꾸준히 간직했던 것 같아요. 제가 엄마라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기에, 이제 막 새끼를 낳아서 젖을 물리던 돼지가 아기 돼지와 같이 구덩이에 쳐넣어지던 그런 장면을 봤을 때…. 몰랐을 땐 어쩔 수 없었더라도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 거기에 더 가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장식 축산 농장에 사는 한 돼지가 스툴에 갇혀 있다. 한겨레출판 휴 제공

그래서 그는 이 책을, 누구보다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다고 했다.

“우리가 이렇게 고기를 많이 소비할 수 있는 것은 공장식 축산이 사육과 도살에서 오는 불편함을 대행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이 고기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 고기의 생산 방식이 어린이들의 건강과 지구 생태계, 인류의 생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제대로 알려주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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