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맨발 운동 30분의 마법.. 아이들 뇌가 깨어났다

대구/주희연 기자 2019. 1. 1. 03: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이 아이를 키운다] [1] 대구 관천초의 맨발 체육시간
맨발로 뛸수있는 운동장 만들자 인지강도 40%·집중력 12% 증가

지난 12월 24일 오전 대구 구도심 관천초등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전교생 242명의 작은 학교다. 겨울 미세 먼지가 기승을 부리다 일주일 만에 해가 난 아침이었다. 아이들이 신발과 양말을 차례로 벗어던지고 맨발로 운동장을 내달리며 까불었다. "아, 차가버라!" "겨울 모래랑 여름 모래랑 와 느낌이 다르노!"

지난달 24일 오전 대구 관천초 여학생들이 운동장 한편에 있는 구름사다리에 매달려 즐거워하고 있다. 이 학교 전교생들은 일주일 세 번 30분 중간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 나와 뛰놀고, 아침, 쉬는 시간, 방과 후에도 수시로 운동장에 나와 달린다. 아이들의 운동 시간이 늘자 집중력, 인지 강도는 좋아지고 스트레스와 질병은 줄어드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신현종 기자

고학년 남자 아이들은 농구 시합을 했다. 여학생들은 바지를 걷어붙이고 구름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했다. 여기저기서 "까르르" "우아아아" 소리가 들렸다. 30분 뒤 교사들이 "이제 들어가자"고 외쳤다. 애들이 소리 질렀다. "쫌만 더요!" 이 학교는 일주일에 세 번 하루 30분씩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와 달리고 운동한다. 비 오는 장마철도, 눈 오는 겨울날도 모두 밖으로 나온다.

◇운동장이 북적대는 학교

2016년 이금녀 교장이 부임했을 때만 해도 관천초 아이들은 지금처럼 활달하지 않았다. 새싹같이 파릇해야 할 아이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아침마다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았는데, 생기도 없고 체력이 달려서 학교에 걸어오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애들이 많았어요. 그때 생각했죠. 학교에서라도 많이 움직이게 해 체력을 길러주자고."

이듬해 제일 먼저 한 일이 맨발로 걷고 달릴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교사, 장학사 하며 수백개 학교를 다녔는데 '빈 운동장'이 너무 많아졌어요. 운동은 습관인데, 요즘 아이들은 주변에 놀이터도 없고 학원만 다니니 운동할 일이 없는 거예요. 운동시키려면 먼저 아이들에게 운동장에 호기심을 갖고 친해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오전 10시 20분부터 하루 30분씩 1~6학년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나와 뛰노는 '중간 체육 시간'을 만들었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도 모두 참여한다. 교사들은 피구공, 농구공, 훌라후프 같은 장비를 갖고 나와 아이들과 같이 논다. 6학년 담임 김민지 교사는 "공부하다 졸거나 집중 못 하는 아이들이 3분의 1 정도가 되면 전원 밖에 데려가 공놀이를 하고 온다"면서 "한번 뛰고 오면 애들이 더 집중을 잘한다"고 했다. 학교 교훈도 '지덕체'에서 '체(體) 덕(德) 지(知)'로 바꿨다. 체력을 길러야 인성·지성이 따라온다는 의미다.

◇2년 운동의 기적

운동 시간이 늘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몸 아파 결석하는 애들이 줄었다. 2015년엔 전교생 340명이 1년간 질병 결석을 101일 했다(질병 결석 비율 30%). 2017년 이 비율이 2년 전의 절반(15%)이 됐다. 한 학부모는 "겨울만 되면 애가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학교서 맨발 운동한 다음부터 감기나 비염 증상이 줄고 몸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관천초 설문조사에서 전교생의 71%가 "맨발 운동하기 전보다 지금 건강해졌다"고 했다.

6학년 박태영군은 갈비뼈 한쪽이 늦게 자라는 흉곽 기형을 갖고 있다. 저학년 체육 시간 땐 움직이면 가슴 통증이 밀려와 벤치에만 앉아 있었지만 작년부터 중간 체육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친구들 따라 조금씩 움직이다 보니 올해부턴 체육 수업을 곧잘 따라간다. 어머니 김은애(40)씨는 "앉아만 있던 애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걷고 심지어 뛰는 걸 보니 눈물이 난다"고 했다. 주의력 결핍 증세로 치료받던 한 6학년 학생도 1년 새 증상이 나아졌다. 담임교사는 "느닷없이 화내거나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나가버리곤 하던 아이가 운동장에서 뛰면서 화도 줄고 감정 조절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이 학생은 이번 학기 학생회 임원도 맡았다.

대구교대가 작년 두 차례(3월·11월) 이 학교 학생들의 '두뇌 활성화'를 측정했다. 맨발 운동을 하기 전과 후다. 불과 8개월 차이인데, 정보 처리 능력을 보여주는 '인지 강도'와 '인지 속도', '집중력' 등이 크게 향상됐다. 스트레스는 줄었다. 조사를 진행한 권택환 대구교대 교수는 "아이들이 몸을 많이 움직일수록 두뇌가 활성화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다는 걸 확인했다"며 "특히 두뇌 발달 속도가 빠른 초등학생들은 더욱 체육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