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위한다면서..'엇박자' 노동정책 부작용 어쩌나 [김현주의 일상 톡톡]

김현주 2019. 1.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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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 개선 원하는 직장인들, 근로시간 단축 대체로 찬성..개인시간 증가,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기대감 때문 / 10명 중 6명 "근로시간 줄어 급여수준 감소한다면 근로시간 단축 반대"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일과 삶의 균형추는 사실상 업무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과도한 노동시간은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데요. 직장생활 비중이 높다 보니 가족과의 시간은 줄어들고, 사실상 인간관계와 취미생활 등도 포기해야 했던 게 사실입니다.

최근에 한국사회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화두가 되는 것도 그만큼 삶의 질이 나쁘고,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삶의 균형을 찾고,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보다 강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인식 변화와 맞물려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제도적인 변화도 이뤄졌습니다. 지난해 7월 시행된 주52시간 근무시간 단축이 대표적인데요.

특히 삶의 질의 개선을 위해 현재의 과도한 노동시간을 제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이지만, 줄어든 근무시간으로 인한 소득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최저임금 산정방식을 놓고 정부와 경영계, 자영업자 간의 갈등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산정할 때 법정 주휴시간을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는 반면, 경영계와 자영업자들은 법적 투쟁도 불사하겠다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형국입니다.

새해를 맞아 전국 곳곳에서 아파트 경비원 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높은 최저임금 인상이 강행되자 입주자들이 경비원 감축으로 대처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업도 구조조정을 통한 최저임금 대응에 나서 경기 하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신입사원 채용을 미루고, 경력직원 뽑아 사실상 신입사원 수준의 대우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영업자 사이에선 이른바 '알바 쪼개기' 방식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근로시간이 주당 15시간을 넘으면 하루치 임금을 더 쳐줘야 하는 주휴수당 부담을 피해 가기 위한 편법이라는 지적입니다.

취약계층인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다는 '친(親)노동' 정책이 되레 해고와 소득 감소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직장인들의 하루 일과는 세대별로 뚜렷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4050대는 아침을 챙겨먹고 20~30분씩 일찍 출근하는 반면, 2030대는 아침을 거르고 정시 출근을 했습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단축 및 유연근무제와 관련한 전반적인 인식을 살펴본 결과,‘일과 삶의 균형과 삶의 질 개선에 대한 기대감 속에 근로시간 단축법 시행과 유연근무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직장인들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먼저 직장인들의 하루 일과를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세대별 직장생활의 모습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요. 우선 아침식사의 경우는 출근하기 전에 집에서 먹고 나오는 직장인(40.3%)과 대체로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직장인(31.4%)으로 크게 나뉘어졌습니다.

가급적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오려는 습관은 4050대(20대 28.4%, 30대 25.2%, 40대 48.4%, 50대 59.2%)가, 주로 아침을 거르는 습관은 2030대(20대 50.4%, 30대 48%, 40대 37.2%, 50대 30%)가 강한 편으로, 직장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세대별로 다르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의 풍경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직장인 10명 중 7명(67.5%)이 점심을 먹을 땐 주로 같은 팀원이나 부서원들과 함께 먹고 있는 것으로, 그만큼 개인적인 시간으로의 활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친한 직장동료끼리 약속을 잡아 먹거나(6.3%), 주로 혼자서 식사를 해결하는(10.1%) 직장인은 많지 않았습니다.

일부 직장인(6.9%)만 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점심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편이었는데요. 주로 많이 하는 활동은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 최대한 쉬거나(36.2%·중복응답), 개인적인 용무를 보는 것(36.2%)이었습니다.

퇴근 후 저녁시간에는 곧장 집에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63.7%·중복응답), 혼자 TV시청 및 인터넷을 하면서 저녁식사를 하는(57.2%) 것이 가장 일반적이었습니다.

다만 중장년층은 가족과의 식사(20대 39.2%, 30대 64.8%, 40대 77.6%, 50대 73.2%)를, 20대 젊은 세대는 혼자서 TV시청 및 인터넷 이용(20대 64.4%, 30대 56.4%, 40대 49.6%, 50대 58.4%)을 많이 하는 편으로, 세대별로 저녁시간을 활용하는 모습에 차이가 뚜렷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가까운 친구들과 약속을 해서 시간을 보내거나(38%), 운동(29.4%)을 많이 했으며, 회사동료들과 간단한 술자리 및 저녁식사(22.8%)를 갖거나, 개인적인 취미활동(21.2%)을 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다른 세대에 비해 20대 직장인들이 친구들과의 시간(41.6%)이나 운동(34.4%), 취미활동(28.4%) 등으로 저녁시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려는 노력이 많아 보였습니다.

◆회식문화 시각 엇갈려.…젊은층일수록 회식 필요없다는 목소리 많이 내

회식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세대별로 뚜렷한 인식 차이가 있었습니다.

부서나 팀에서의 회식이 어느 정도 이상 필요하다는 주장(29.2%)과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32.9%)이 크게 엇갈렸는데요. 회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중장년층(20대 19.2%, 30대 23.2%, 40대 33.2%, 50대 41.2%)에서, 회식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은 젊은 층(20대 42.4%, 30대 34.4%, 40대 26.8%, 50대 28%)에서 주로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직장 내 회식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직장인들은 직원과의 더욱 원활한 소통(71.2%, 중복응답)과 부서원, 팀원들과의 단합 및 친목도모(63.7%)를 위해 회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주로 많이 내세웠습니다.

함께 한다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50%), 직장 상사 및 동료들과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40.1%)는 이유로 회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직장인들도 많은 편이었습니다.

반면 회식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업무시간의 연장인 것 같다(55%·중복응답)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직장상사 및 동료들과의 시간인 만큼 편한 분위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법’에 대해서는 직장인 대다수가 찬성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장인의 67.7%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찬성한다고 밝힌 것으로, 특히 다른 연령에 비해 30대 직장인들이 근로시간의 단축을 많이 반기는(20대 62.8%, 30대 75.2%, 40대 68%, 50대 64.8%) 모습이었습니다.

근로시간 단축법을 찬성하는 이유는 현재의 시간부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근로시간이 단축될 경우 개인시간을 활용할 수 있고(58.5%·중복응답),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지며(57.6%),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54.5%)는 기대감 때문에 찬성을 하는 직장인들이 많은 것입니다.

평소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여유로운 삶이 어려웠던 다수의 직장인들에게는 충분히 환영할 만한 제도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만큼 그동안 한국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일을 하고(49%), 습관적으로 야근을 강요하는 회사도 많았다(48.6%)고 볼 수 있는데, 이를 제도적으로 억제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근로시간 단축법에 반대하는 직장인들은 ‘수입 감소’에 대한 우려(71.6%·중복응답)를 가장 많이 내세웠습니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월급이나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하는 시각이 상당한 것으로, 비슷한 맥락에서 일은 줄고 급여는 그대로인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 것 같다(38.3%)는 주장도 많았습니다.

다만 근로시간 단축법을 찬성하는 의견도 어디까지나 현재의 소득이 보장되는 경우에 한해서였습니다.

근로시간 단축법과 관련한 다양한 인식을 살펴본 결과, 직장인 10명 중 6명(59.2%)이 근로시간이 줄어 급여수준이 감소한다면 근로시간 단축에 반대할 것이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모든 연령대(20대 59.2%, 30대 58%, 40대 59.6%, 50대 60%)에서 소득이 줄어들면 근로시간의 단축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비슷했습니다.

근로시간 단축법이 정착될 경우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더 많은 개인적인 시간의 활용을 통한 삶의 질의 개선이었습니다. 직장인 10명 중 7명(72.1%)이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을 내보였는데요.

특히 2030대가 근로시간의 단축으로 인해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감(20대 79.6%, 30대 79.6%, 40대 66.8%, 50대 62.4%)을 많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근로시간 줄어도 급여수준 보장돼야"…최저임금 인상, 취약계층 소득 되레 감소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가 연달아 시행되면서 자영업자들의 체감경기는 급속도로 악화했습니다. 직장인들의 빠른 귀가는 자영업자에게 매출 감소라는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는 형국인데요.

물론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 초기인 데다, 일부 사업장에만 도입된 수준이라 주 52시간제에 따른 자영업자 피해액이나 민간소비 위축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야근수당 등이 줄면서 소득이 감소한 직장인도 있었습니다. 한 온라인 취업플랫폼이 지난해 10월 직장인 6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0.9%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월 임금이 줄었고, 줄어든 금액은 평균 36만9000원"이라고 답했습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공식적인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업무량은 사실상 줄지 않아 잔업을 하고도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저임금이 인상돼도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 저소득 근로자의 임금은 오히려 감소하고, 고용도 불안해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은행의 ‘최저임금이 고용구조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이 최저임금보다 적거나(최저임금 미만자) 최저임금의 1.2배 이하(최저임금 영향자) 저소득 근로자 비율이 1%포인트 많아지면 월평균 급여가 1만~1만2000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월평균 급여가 83만~89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1.1~1.45% 가량 줄어드는 셈입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최저임금 미만자 및 영향자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약 2.1~2.3시간 줄어드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은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 규모와 업종별로 다른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해 차등 적용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자영업자 "주휴수당 부담, 근무시간 줄일 것"…알바생 "소득 감소해 걱정"

정부가 주휴시간을 최저임금 산정 근로시간에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을 강행해 자영업자들은 '인건비 폭탄'을 떠안게 됐습니다. 2019년도 최저임금 인상분(10.9%)에 실제 일하지 않은 주휴시간까지 임금을 줘야 최저임금법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상당수 자영업자는 알바생 근무시간을 줄이는 형태로 이 폭탄을 피해갈 것으로 관측됩니다.

근로기준법상 주휴수당은 주당 15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만 받을 수 있습니다. 하루 5시간씩 3일 일한 근로자는 주휴수당을 포함해 매주 4일 치 임금을 받을 수 있지만, 하루 2시간씩 5일 일한 근로자는 주당 근로시간이 10시간이어서 주휴수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최저임금법 개정 시행령이 이달 1일 시행되면 저임금 근로자 등 취약계층이 되레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취약계층이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노동 정책이 취약계층을 더욱 힘들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이지고 있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 업주는 "주휴수당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던 알바생들이 많아 일단 액면 시급이 높은 걸 더 선호한다"며 "알바 공고를 낼 때 시급을 높이면 그만큼 지원하는 알바생들 수준도 높아져서 업주에겐 좋지만, 법을 어기는 것이어서 찜찜한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습니다.

편의점에서 주말 알바를 하고 있는 한 대학생은 "'(편의점주로부터) 15시간 미만으로 주당 근무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원래 주말에 총 20시간을 일했다. 용돈과 학자금 대출이자 등 돈 들어갈 곳이 많아 걱정"이라고 하소연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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