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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세대, 개인주의 아닌 가족에 떠넘긴 복지 탓"

이윤주 입력 2019.01.02. 04:44

‘내일의 종언’ 낸 장경섭 서울대 교수

“만혼ㆍ저출산ㆍ노인문제 등 구조화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화가 아니라

국가가 복지를 가족에 떠넘긴 탓

그림 1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압축적 근대화를 연구 화두 삼은 장겹섭 교수는 “한국의 근대는 서구 제도를 광범위하게 즉석 차용해 이룬 일종의 ‘꺾꽂이 근대’”라고 정의하며 “서구 제도가 갖는 사회 복리, 해방의 효과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기초부터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 31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지난달 24, 26~28일 전국 성인 2,01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부정 평가(49.7%)가 긍정 평가(45.9%)를 앞섰다. 21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취임 후 처음 발생한 ‘데드 크로스’ 현상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던 20대 남성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리얼미터 조사 기준으로 2017년 80%대의 20대 남성 지지율은 1년 새 29.4%까지(12월 10~14일 전국 2,509명 조사) 떨어졌다.

#지난 4월 한국리서치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딸 하나는 있어야 한다’(44%)고 답한 사람이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23%)고 답한 사람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 응답자 2명 중 1명(46%)이 ‘결혼은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고, ‘자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응답(63%)도 과거(2013년 79.9%, 2016년 71.3%)보다 줄었다.

흔히 페미니즘 열풍과 젠더 갈등으로 풀이하는 두 현상을 “한국 특유의 가족주의가 만든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압축적 근대화’론을 제시한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다. 한국의 압축적 발전과 근대화가 가족의존(착취)적 경제·사회 체제에서 비롯됐다는 이 이론은 유럽·북미·아시아 각지에서 동아시아의 비교문화(한류), 가족·개인, 사회정책 연구에 활용돼 왔다. 장 교수는 최근 한국의 가족주의를 정교하게 분석한 책 ‘내일의 종언? 가족자유주의와 사회재생산 위기’(집문당 발행)를 펴냈다.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장경섭 교수는 “가족 의존적 경제사회 체제는 한국인들의 강한 가족주의와 결합해 장기간 지속됐다. 그 결과 만성적 가족피로 증후군이 나타났고 외환위기 이후 비혼과 만혼의 증가, 저출산, 노인자살 증가 등 가족 재생산위기가 구조화됐다”고 말했다. 가족자유주의는 한국 같은 비서구 사회가 서구의 자유주의를 사회 핵심가치로 채택하면서도 자유와 책임의 기본 단위를 개인이 아닌 가족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서구 자유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한국의 가족은 단순히 사생활을 영위하는 관계가 아니라 책임과 자유를 함께하는 공동체이자 정치·경제 활동의 최소 단위다. 이 사회에서 가족은 마치 기업처럼 구성원 개인의 교육, 주택, 금융(가족간 지원이나 융통), 경영(재벌) 활동에 광범위하게 ‘공격적으로 개입’한다.

이 독특한 가족주의를 유교적 전통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장경섭 교수는 우리 사회가 개발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며 생성된 ‘상황적 구성물’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고 말한다. 한국이 애국을 기치로 내세우며 유교의 ‘충’과 함께 강조한 개념이 ‘효’라는 주장이다. 조선시대에는 양반 등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는 유교적 가족문화에 대한 개념이 모호했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시어머니-며느리 사이 같은 가족 내 위계 갈등이 생긴다. 노비의 ‘공짜 노동’이 없어진 시대에 “여성이 혼인 제도를 통해 가부장의 ‘유사 노비적 존재’로 교환”됐고, 가사와 돌봄 노동에 “여성 노동력을 공짜로 동원하는 과정은 이들에 대한 ‘천대’로 이어졌다”.

가족 내 예법을 법률로 정리한 ‘가정의례준칙’이 발표된 게 박정희식 개발자본주의가 강력히 형성되던 1969년.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개정한 2015년 ‘건전가정의례준칙’을 발표한다. 복지사회에서 국가가 담당하는 노약자, 장애인에 대한 돌봄 노동이 가족에게 전가된다.

'내일의 종언' 출간한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신상순 선임기자

외환위기 이후 가족은 기업처럼 스스로 구조조정(출산 혼인 기피)에 들어갔다. ‘결혼 기피, 출산 파업’으로 요약되는 작금의 가족 재생산의 위기는 개인주의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뿌리 깊은 가족자유주의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장 교수는 “최근의 여러 조사에서 나오는 ‘N포 세대’의 좌절은 고용 주택 교육 문제의 중층적 압박 속에 (본인들이 꿈꾸는) 혼인과 출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젊은 세대는 (개인화된 게 아니라) 부모세대와 마찬가지로 현실적, 물질적으로 준비된 혼인과 출산을 당연히 여긴다. 경제발전과 사회복지 간극이 세계 최악인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준비된 가족’을 당연하게 여김으로써 만혼 비혼 초저출산 추세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고용위기 등으로 아직 경제적 독립기반을 갖지 못한 청년들에게 가족자유주의 질서란 중장년 부모에 대한 무기력한 의존을 의미할 수밖에 없고, 심각한 소득, 자산 양극화에 따라 이런 지원이 불가능한 부모가 급증하는 현실에 엄청난 불안과 고통을 야기한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청년 지지율 하락의 배경이 여기 있다.

외환위기 이후 남성의 정규직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여성의 경제활동이 급증하지만 가정 내 가사, 돌봄 노동은 여성의 몫으로 남는다. 비혼 증가의 배경이다. 장 교수는 “청년 여성의 경우 노동시장 참여 등으로 어머니 세대에 불가능했던 개인중심의 ‘자유주의적 근대화’를 실천하고, 국가의 수용적인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높은 지지율이 유지된다고 덧붙였다. “아들을 통해 기대했던 세대 간 계층 상승 욕구가 딸을 통해서도 충족되면서”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양육과정의 정서적 보상감’ 뿐만 아니라 고령화로 급격히 연장될 노후의 자녀와의 관계 등이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부계(아버지ㆍ남편)쪽 가족을 더 자주 만난다’(24%)는 사람보다 ‘모계(어머니ㆍ아내)쪽 가족을 더 자주 만난다’(36%)는 사람이 더 많았다.

작금의 현상을 바꿀 구체적 방안을 묻자 “임기응변식 정책 몇 가지로 타개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국가가 복지를 얼마만큼 담당하느냐는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라는 설명이다. 외국인에게도 아동수당을 주는 나라가 있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기초적인 의료보험을 도입하는데도 반대하는 나라도 있다. “문제는 박정희 시대에 ‘선성장 후분배’, ‘선가정보호 후사회복지’를 내세워 가족에게 복지를 전가하고 경제발전을 이루는 동안 단 한 번도 분배가 없었다는 거죠. 대통령 바뀔 때 마다 국가운영 철학, 정책이 바뀌고 그 후유증을 가족이 다 떠맡았잖아요. 국가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토론을 하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편으로 우리 같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다른 나라들이 어떤 복지정책을 도입했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죠.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4대강 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도 국가 재정이 건전한 걸 보면 세금으로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거든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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