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에 2조..새해 전국에서 지역화폐가 뜬다

2019. 1. 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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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714억원에서 2019년 2조원대..5배↑
복지수당 등 정부 발행 규모 크게 늘어나
'복지와 지역경제' 두 마리 토끼 잡겠다는 복안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경기 시흥시 삼미시장에서 아동복 판매 상인이 지역화폐 ‘시루’로 옷값을 받고 있다. 홍용덕 기자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낮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삼미시장은 성탄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물건을 산 손님들은 익숙한 듯 지역화폐를 꺼내 계산을 마쳤고, 상인들은 웃으며 손님을 배웅했다. “사람들 발길이 이어지니 좋죠.” 시장에서 아동복과 성인용 겨울바지를 파는 이금옥씨가 웃으며 말했다. 이씨는 “경제가 어려운데 사람들이 시흥 밖에서 쓸 돈을 이곳 시장에서 지역화폐로 쓰니 상인들이 반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30년 역사의 삼미시장은 시흥에서는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이다. 지난해 9월17일 시흥시는 지역사랑 상품권의 하나인 지역화폐 ‘시루’를 출시했다. 이사나 개업을 하면 이웃에게 시루떡을 돌리듯, 지역화폐가 시민들의 나눔과 소통의 매개체가 되길 바라는 뜻에서 ‘시루’란 이름을 붙였다. 시루는 지역화폐의 성공 모델로 꼽힌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시루는 불과 한달 만에 유통 목표액 20억원어치가 모두 판매됐다. 시민들에게 호평을 받자, 시흥시는 추가로 9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출시 기념으로 시흥시가 액면 가격의 10%를 할인 판매한 것이 주효했다. 현금 9만원을 내면 시루 10만원을 주는 식이었다. 차액 1만원은 시가 부담했다.

판매액이 늘자, 시루를 쓸 수 있는 가맹점도 빠르게 늘어났다. 출시 3개월여 만인 지난달 28일 기준으로 삼미시장의 모든 점포 152곳을 포함해 시흥시내 상가 5천곳이 가맹 계약을 맺었다. 박춘기 삼미전통시장 상인회장은 “지역화폐는 시흥시에서만 유통되고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가맹점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 자금이 시 밖으로 유출되지 않는다”며 “신용카드의 경우 전통시장에서 수수료율이 0.8~1.6%인데, 지역화폐는 환전수수료가 전혀 없어 상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새해 들어 전국의 여러 지방정부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자금 역외유출을 막기 위해 지역화폐 발행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기업 진출, 높은 임대료, 최저임금 등으로 고통받는 소상인을 지원하기 위한 지역화폐는 올해 발행 규모가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18년 전체 발행액 3714억원의 5배가 훌쩍 넘는 수준이다.

3일 행정안전부의 ‘지역(고향)사랑 상품권 운영 지자체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12월 말 기준으로 전국 17개 광역 시·도와 226개 기초 시·군·구 가운데 지역화폐를 도입한 지역은 모두 66곳이다. 지역화폐는 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법정 통화가 아니어서 정부는 ‘지역(고향)사랑 상품권’이라고 부른다.

경기 시흥지역 지역화폐인 ‘시루’가 출시 3개월여 만인 지난해 12월28일 가맹점 5천곳을 돌파했다. 시흥시 제공

지역화폐 발행이 급증하는 이유는 지방정부들이 대폭 늘린 복지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올해 경기도는 청년배당 1753억원, 산후조리비 지원 423억원, 각 시·군의 복지수당 1406억원 등 3582억원을 지역화폐로 발행한다. 앞서 지난해 성남시는 180억원의 아동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했다. 전남 해남군도 올해 지역화폐(해남사랑상품권) 150억원어치를 발행하고, 연간 60만원인 농민수당 등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로 했다.

지방정부가 이처럼 지역화폐 발행에 적극적인 것은 지역 소득이 서울로 유출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산업연구원이 내놓은 ‘전국 16개 시·도 지역 소득 역외유출의 결정요인’ 보고서를 보면, 2016년 기준 전국 16개 시·도(세종시 제외) 가운데 충남 등 9개 지역에서 소득이 유출됐다. 유출 규모는 충남이 24조971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경북(16조1003억원), 울산(13조6305억원), 경남(12조205억원), 전남(11조5236억원) 등 차례였다.

반면, 서울은 40조3807억원, 경기는 21조9464억원이 유입됐다. 충남, 경북, 울산 등 지방에서 발생한 소득이 서울과 경기로 대거 유출된 것이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지난달 말 “도내에서 생산된 부가가치가 도민에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 도내 노동자들이 주거지를 수도권에 두기 때문”이라며 “지역화폐를 도입해 소득의 역외유출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경기도 성남시가 발행한 지역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 경기도 31개 시·군 전역에서 오는 3월부터 순차적으로 지역화폐가 발행될 전망이다. 김기성 기자

이미 8개 시·군에서 지역화폐를 사용하는 충남은 올해 공주 등의 지역에서 지역화폐를 추가 도입한 뒤 이를 도 전체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 지역 생산의 역외유출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충남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경기, 서울에 이어 17개 광역 지방정부 가운데 3위지만, 1인당 민간 소비는 1366만원으로 전국 15위권이다.

모바일 결제시스템 도입을 계획하고 있는 지방정부도 있다. 강원도는 올해 하반기부터 모바일상품권 결제시스템을 도입한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온라인에서도 쉽게 도내 소상공인들의 상품을 살 수 있고, 발행이나 환전 등 유통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인천은 전자상품권인 ‘인처너 카드’(인천사랑전자상품권)를 지난해 7월30일 출시했다.

지역화폐가 광역 단위가 아닌, 주로 기초 지방정부 단위로 발행되는 이유는 같은 광역 안에서도 시·군 지역의 소득이 대도시로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민정 경기도 서민금융팀장은 “경기도 안에서도 수원 등 대도시로 지역 소득이 쏠릴 수 있고, 재래시장이 많고 적은 등 지역별 특성이 있기 때문에 개별 시·군의 지역화폐 발행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역화폐가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양준호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2012년 성남시장 재직 때 발행한 지역화폐(성남누리)로 4년 동안 영세자영업자의 실질소득이 22.3%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 사례가 있다”며 “국내 경제 상황과 서울이 빨아들이는 경제적 흡인력 때문에 지역이 황폐해지고 있다. 지역화폐는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힘이 되기 때문에 정부가 지역화폐 발행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용덕 채윤태 송인걸 안관옥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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