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페미' 워마드를 만나다

2019. 1. 4.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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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마드는 페미니스트라고 단언
미러링 나온 배경, 파급효과 살펴
미러링이 여성혐오의 민낯 드러내
젊은 페미 목소리도 가감없이 전달

혐오 미러링-여성주의 전략으로 가능한가?
김선희 지음/연암서가·1만3000원

워마드는 페미니스트인가. <혐오 미러링>의 저자인 김선희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는 ‘그렇다’고 단언한다.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용감하고 의미심장한 선언이다. 워마드를 일베와 같은 악마적 존재로 여기는 흐름이 대세인데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 중에도 워마드를 ‘진짜 페미니즘’을 욕 먹이는 ‘가짜’로 구분 짓는 이들이 많다. 특히 저자가 속한 ‘올드페미’ 그룹에선 그간 험한 말을 남발하고 위악인지 아닌지 모를 비윤리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이 이질적인 종족의 출현에 어떻게 화답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김선희 이화여대 교수는 “여성주의가 충족해야 할 최소한의 두 가지 조건”으로 “인류 역사를 통틀어 구조적으로 부당한 성차별이 있어왔으며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그 부당한 성차별이 해소돼야 한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을 꼽는다. 그리고 “이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는 점에서 워마드가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부정할 이유가 없으며, 다만 기존의 페미니즘과 다른 전략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하고 시위를 벌인 것은 “언어적 투쟁이 정치적 투쟁임을 보여주는, 한국 여성주의 운동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5월17일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6번 출구 앞에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2주기를 맞아 열린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가 열리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혐오 미러링>은 이 전략적 차이점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메갈리아에서 시작돼 워마드로 이어진 이 색다른 전략을 “미러링으로 상징되는 혐오 전략”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전략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전개과정, 우리 사회와 여성들에게 미친 파급효과를 짚는다. 이는 여성철학을 연구하며 대학에서 젊은이들과 꾸준히 소통해온 저자가 새로운 세대의 생각과 운동방식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끌어안으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살아갈 평등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올드페미’라 불리는 우리 세대의 과제”라는 사명감도 있었다.

미러링을 페미니즘의 한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생각 없이 혐오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여성혐오에 대한 저항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며 나름의 논리와 규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온라인에서 벌어진 미러링 방식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남녀의 기본설정(디폴트)을 뒤바꾸는 미러링이다. ‘남녀’를 ‘여남’으로, ‘부모’를 ‘모부’로, ‘하느님 아버지’를 ‘창조주어머니’로 바꿈으로써, 남성이 기본이 되고 여성은 부차적 존재로 간주하는 언어 질서를 전복하는 것이다. ‘여의사’ ‘여류 소설가’ 등의 접두사 ‘여’를 ‘남’으로 치환해 ‘남의사’ ‘남류소설가’로 칭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는 여성을 타자화하거나 성적대상으로 비하하는 표현을 남성들에게 직접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한남충’ ‘김치남’ ‘창남’ ‘(맘충의 미러링인) 애비충’ 등이다. 셋째는 여성혐오 표현을 오히려 긍정하고 새로운 표현으로 재탄생시키는 방식이다. ‘김치녀’에 담긴 속물적 존재의 의미를 신격화된 존재인 ‘갓(God)치(녀)’로 바꾼 것이 대표적인 예다.

워마드에 반감을 가진 이들도, 워마드의 미러링 전략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충격적인 민낯을 드러내고 페미니즘을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렸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한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미러링의 최대 수신자는 남성이나 우리 사회가 아니라 여성 자신”이라고 일갈한다. 여성들은 미러링을 통해 “자연스레 받아들였던 표현들이 실은 경악할 만한 인권침해였다는 사실을 자각했고, 내면의 우울과 분노가 여성혐오 때문임을 깨닫고 ‘미러링 놀이’를 통해 이를 해소하는 경험을 했으며,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연대의 힘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미러링으로 촉발된 각성과 자기치유와 연대의 힘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 따라 한국 여성운동의 미래와 여성 각자의 삶, 나아가 한국사회가 달라질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집필 과정에서 만난 30여명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따로 갈무리해 놓은 이유 역시, 새 시대의 주인공인 이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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