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前정권과 달라" 강조할수록..돌아오는 '내로남불' 역풍

이동수 2019. 1. 4. 06:09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슈톡톡] 與, 잇딴 폭로에 '대응력 부족' 논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왼쪽)과 김태우 수사관.


“그래도 이번 정부라면 최소한 내부고발로 제 목소리 들어주시려 해야 하는것 아닌가요? 전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재발방지 이야기 해주실 줄 알았어요.”

청와대의 KT&G 사장 교체 개입, 적자 국채 발행 압력 의혹 등을 제기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3일 모교인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 남긴 유서에서 이같이 말했다.

신 전 사무관의 ‘유서 소동’ 이후 신 전 친구의 대학 친구라고 밝힌 ‘대학 시절부터 신재민을 지켜봐 온 선후배 일동’은 호소문을 냈다. 이들은 현 정부를 향해 “그가 잘못된 이야기를 한 것이라면 충분히 말하고 설명해주셨으면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게 쉽지는 않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저희는 이 정부가 탄생했을 때 그 쉽지 않은 일을 해주는 정부가 될 것을 믿었다”고 말했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3일 오후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응급실로 후송되고 있다.신 전 사무관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잠적한 지 4시간만에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 건물에서 발견됐다. 뉴시스

신 전 사무관과 그의 친구들의 요지는 ‘이 정부라면 다를 줄 알았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줄곧 내세워온 ‘지난 정권과의 차별화’를 겨냥한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폭로한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등을 ‘의인’으로 내세웠던 이번 정권이 신 전 사무관의 폭로에 대해선 180도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뜻이다. 1992년 군 부재자 부정 투표 고발로 한국 내부고발의 상징이 된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이와 관련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 정부에선 내부고발자를 의인이라 칭하던 사람들이, 이번 정부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자 나쁜 놈이라고 욕하고 있다. 내부고발도 자기들 입맛에 맞으면 선한 것이 되고, 맞지 않으면 적폐가 되는 건가?”라고 꼬집었다.

여권의 이런 대응방식은 오히려 여론의 반감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정권과 다르다’고 강조할수록 스스로 전 정권과 비교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프레임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가운데 현 정권의 도덕성에 의혹이 제기되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프레임은 강화하기 마련이다. 신 전 사무관,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수사관의 등장이 폭로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큰 파문을 낳은 이유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우며 ‘우리는 깨끗하다’라고 말해왔지만 이 정부에서도 내부고발이 잇따르고 있다”며 “청와대가 ‘DNA 자체가 다르다’고 말한 것이 오히려 부메랑이 돼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달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민정수석실 특감반 의혹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 교수는 정부·여당이 폭로 내용을 반박하기보다는 폭로자 개인신상에 대응을 집중하는 것 또한 부정적 여론을 배가시킨다고 지적했다. 김 수사관의 폭로 이후 청와대는 김 수사관을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비위 혐의자’로, 그가 생산한 첩보를 ‘불순물’이라고 규정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신 전 사무관에 대해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 것일까”(홍익표 수석대변인), “스타강사가 되기 위해 기재부를 그만두고 메가스터디에 들어간 사람”(박범계 의원), “신재민에게 가장 급한 것은 돈이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이 방법(폭로)을 선택한 것”(손혜원 의원)이라며 총공세를 펼쳤다.

기재부는 신 전 사무관의 주장에 대해 “(신재민이) 이런 내용을 알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며 직급의 고하를 내세워 반박했다. 그러나 전날 검찰 고발에서는 기재부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가 아닌 형법상 비밀누설 및 자료 편취 등의 혐의를 제기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 교수는 이에 “청와대가 폭로 내용 중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폭로자들의 오해, 당시 정부의 의도를 정확히 해명했어야 한다”며 “처음부터 내부고발자들을 희화화시키면 대중은 김태우, 신재민이 왜 폭로를 결심하게 됐는지 더 큰 의문을 품게 되고, 의문점이 많아질수록 여론 대응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여권의 대응력과 관련한 정치권의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어떻게 됐든 문재인 정부가 확실한 리더십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6급 행정관(김태우)한테 청와대가 흔들리더니 이제 물러간 사무관(신재민)에게 기획재정부도 흔들린다고 하면 그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도대체 국민이 국정을 맡겨놨는데 6급 사무관하고 싸우고 있는 정부를 과연 신뢰할 수 있느냐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