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다시 '싸가지 없는 진보'를 경계할 시기 / 석진환

2019. 1. 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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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 이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주목받은 두 사람이 있다.

여러모로 비교되는 두 사람의 글은 사안에 대처하는 자세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글을 두고 자유한국당은 "진실의 머리는 감추고 변명의 꼬리만 내미는 격"(나경원 원내대표)이라고 비판했지만, 나는 그렇게 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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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환
정치사회 부에디터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 이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주목받은 두 사람이 있다. 김동연과 손혜원. 여러모로 비교되는 두 사람의 글은 사안에 대처하는 자세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글을 두고 자유한국당은 “진실의 머리는 감추고 변명의 꼬리만 내미는 격”(나경원 원내대표)이라고 비판했지만, 나는 그렇게 읽지 않았다. 그의 글에는 중책을 맡았던 전직 고위공직자가 갖춰야 할 절제와 품격이 있었다. 폭로의 일부가 자신을 겨냥했지만 그동안 나서지 않았던 이유. 폭로자의 충정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해 구하기. 누굴 탓하지도, 그렇다고 자신을 장황하게 변호하지도 않는 사정 설명. 그는 딱 필요한 말만 했다.

그리고 이 대목. “나도 신 사무관 또래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남은 가족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아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 아끼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런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진심으로 신 전 사무관을 걱정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쓸 수 없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쓴 인신공격성 글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대신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패배 뒤 쓴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 나오는 그 유명한 구절을 다시 한번 소개하려 한다.

“혹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람 성격은 편안하고 여유가 넘칠 땐 알기 어렵다. 고스톱이나 내기 당구를 쳐봐야 그 사람을 알게 된다는 말처럼, 다급하고 코너에 몰렸을 때 성격과 실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집권세력에게는 지금이 그런 시기다. 대통령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졌다. 집권 초 ‘골든타임’은 손에 잡히는 성과 없이 지나갔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폭로가 이어졌다. 악재가 이어지니 청와대와 여당 내부에서 ‘싸가지 없는 진보’의 귀환을 알리는 발언이 꼬리를 물고 튀어나온다.

손 의원만이 아니다. 집권 여당의 대표는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연일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김태우 폭로’ 국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조국 민정수석의 관리 책임은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렇지만 여당에선 “조 수석은 (특감반 비위) 사안에 아무런 연계가 없다”(이해찬 대표), “조국은 촛불정권의 상징”(안민석 의원) 등의 말과 글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오만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말은 그중 압권이다.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고 말하려고 유전자까지 들먹인 건 지나쳤다. 두고두고 회자되며 현 정부를 아프게 할 실책이다. 청와대 표현대로 김태우 전 특감반원이 “과거 폐습을 버리지 못하고 일탈 행위를 저질렀다”면 제2, 제3의 ‘김태우’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1년6개월 만에 공무원들의 ‘유전자’가 싹 바뀌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모든 공무원은 ‘문재인 정부’ 그 자체여서, 이제 편을 가를 수도 남 탓을 할 수도 없다.

문 대통령이 책에 쓴 것처럼 “진보적 가치에 대한 자부심으로 우월감을 갖지 않았는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가 다시 온 듯하다. ‘징후’들은 차고 넘친다.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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