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페이 우린 안 써요"..가맹점 20곳 중 1곳만 결제 성공

박형수 2019. 1. 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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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보름 .. 영등포지하상가 가보니
계단·가게 입구 곳곳에 홍보물
결제된 카페선 앱 작동 늦어
점원이 되레 사용 방법 묻기도
손님도 "카드가 더 편해" 외면
제로페이 광고로 도배되다시피 한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 입구. [중앙포토]
“그거? 사장님이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희 가게는 (결제가) 안 돼요.”

제로페이 도입 보름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에서 ‘제로페이 가맹점’ 스티커가 붙어있는 가게 20곳을 둘러봤다. 이 가운데 기자가 제로페이로 결제에 성공한 곳은 커피숍 한 곳뿐이다. 나머지 가게에서는 “한 번도 써본 일이 없다” “승인이 안 나서 결제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등포역 지하상가는 강남터미널 상가와 더불어 서울시가 선정한 ‘제로페이존’이다. 영등포역 지하상가 60곳 중 제로페이 가맹점은 53곳(88.3%). 시행된 지 보름이 지났고, 이렇게 안내하면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제로페이 가맹 스티커가 붙어있는 화장품가게에 들어갔다. 물건을 고른 뒤 제로페이로 결제할 수 있냐고 묻자 “아직 승인이 아직 안 나서 결제가 안 된다”고 했다. 승인이 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냐고 묻자 “잘 모른다. 사장님이 아직 (제로페이를) 쓰지 말라고 하셨다”고 답했다. 현금으로 결제하고 가게를 나서자 직원들끼리 “또 기자인가 보다. (제로페이) 찾는 사람은 전부 기자”라고 수군거렸다.

바로 옆에 있는 가방가게 직원은 난감한 표정부터 지었다. “아직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고 하더니, 기자를 매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 “저쪽에 가보면 그거(제로페이) 갖고 살 수 있을 것”이라며 건너편을 가리켰다. 추천을 받고 찾아간 가게에서 “제로페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사장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안돼요. 난 몰라요”라면서 말을 잘랐다.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에 입주한 점포 60곳 중 상당수가 제로페이 가맹점임을 알리는 스티커 위(빨간색 동그라미)로 플래카드나 광고지 등을 붙여놔 소비자들이 이를 인지하기 어려웠다. [중앙포토]
영등포역 지하상가에서 유일하게 제로페이를 사용한 곳은 작은 카페였다. 제로페이로 결제해도 되냐고 묻자, 직원 이미선(36)씨는 깜짝 놀라며 “제로페이 찾는 사람은 두 번째”라며 “나도 방법은 잘 모르는데 손님이 알면 한 번 해보라”고 말했다. 기자가 음료를 고른 뒤 스마트폰으로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을 연동하자 한참 만에 로딩이 완료됐다.

제로페이 버튼을 누르자 다시 로딩이 시작됐다. 30초 남짓 지나서야 제로페이 창이 열리고 가게에 비치된 QR코드를 촬영할 수 있었다. 결제창이 뜨자 음료 가격을 입력하고 확인을 누르니 곧바로 송금이 완료됐다.

그러자 이번엔 이씨가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가맹점주가 아닌 이씨는 결제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서다. 기자가 다시 앱을 열고 거래내역을 조회해 영수증을 보여주자 그제야 “결제된 것 같다”면서 음료를 내줬다. 이씨는 “막상 써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면서 “한가한 시간이면 몰라도 손님이 몰리면 제로페이 결제가 어렵겠다”고 말했다.

이날 가게 직원들이 “승인이 안 된다”며 제로페이 사용을 거절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제로페이는 사용자가 은행 앱이나 간편 결제 앱을 사용해 매장 내 QR코드를 촬영한 뒤 구매 금액을 입력하면 계좌이체 방식으로 가맹점주 통장에 현금이 입금되는 시스템이다. 가맹점주는 스마트폰에 제로페이 점주용 앱을 깔고 입금 내역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직원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직원의 스마트폰에 제로페이 가맹점주용 앱을 깔고, 점주의 인증을 받으면 되지만 다수의 점주는 이런 방법을 꺼린다.

손님들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화장품가게에서 만나 박지영(22)씨는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쓰는 게 훨씬 편한데, 굳이 직원들 눈치 봐가며 ‘제로페이 써도 되냐’고 허락받아서 물건을 사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날까지 가맹점 확보 현황와 결제 건수 등 실적을 알려 달라는 요청에 “아직은 제도를 보완·개선하는 단계”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시 김형래 제로페이추진반장은 “소비자가 제로페이 가맹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늦어도 3월까지는 ‘제로페이 지도’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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