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하다]실패한 KT&G 사장 교체.."문 정부 아마추어적 권력 행사"
"기재부, KT&G 동향 3건 작성"
정부, 대주주 기업은행 통해
KT&G 사장 교체 압박 의혹
내부 인사 "외부 핍박 받는다며
사장이 이사회서 문건 보여줘"
결국 주총서 사장 교체 불발
“문재인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이나 같다. 차이라면 박근혜 정권은 야만적으로, 문재인 정권은 아마추어적으로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추적했다.
“지금 문제의 KT&G 문건은 초안이 있었고 그 다음에 중간 문서가 있었고 최종 문서가 있었다. 언론에 보도된 건 중간 문건으로 알고 있다.”
기재부의 KT&G 문건은 한 종류만 알려졌다. 신 전 사무관의 제보로 지난해 5월 언론에 보도된 바로 그 문서다. 하지만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초안·중간·최종 문건이 있다고 발언했다. 그중 중간 문건이 언론에 알려진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3종류가 있는 셈이다.
기은의 행보는 문건대로다. ▶주주권을 행사해 사추위원 명단을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KT&G의 외국인 주주(54%)의 의결권 대행사(ISS) 등에 외부인사 CEO(최고경영자) 영입 필요성을 설득하며 ▶2월 2일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 공시하고 사외이사 2인을 추천하는 주주제안권을 행사했다. 기은은 외환위기 당시 정부로부터 KT&G 주식을 현물출자 받은 이후 한 번도 경영 참여에 나선 적이 없었다. 당시 돌연한 경영 참여 선언에 업계에선 “정부가 국책은행을 통해 ‘우회 관치’에 나선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기재부는 “담배사업법상 정상적인 업무처리 과정의 일환으로 KT&G의 현황을 파악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김도진 중소기업은행장도 지난해 2월 국회에서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무슨 사장을 바꾸고자 하는 일이 진행된 건 금시초문”(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란 입장이다.
지난해 1월 26일 KT&G 이사회에서 백복인 사장이 한 말이라고 복수의 내부 관계자가 전했다. 백 사장은 당시 휴대전화를 꺼내 문서를 보여줬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당시 문서는 기재부가 작성했다는 문건과 유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1월 중순 입수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사회에선 사장 재선임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다만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외이사인 윤해수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백 사장이 외부에서 사임 압력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한 것은 전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송업교 전 의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백 사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그와 잘 아는 지인은 “백 사장은 기재부나 다른 곳에서 연락이 온 건 없다고 말한다. 다만 자신과 잘 아는 사이인 김도진 중소기업은행장이 갑자기 연임에 반대해 왜 그런지 모르고 열심히 대응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KT&G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대로 사장 재선임 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 1월 31일 사장 공모 공고를 했고 이틀간 접수받은 뒤 서류심사·면접을 거쳐 2월 5일 이사회에서 백 사장을 사장 후보자로 결정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정권의 압박이란 백 사장의 방어 논리가 통했다”고 했다. 2월 말엔 KT&G 노조에서 “정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기은이 KT&G 지분보유 목적을 변경하면서까지 이사회를 장악하려는 것은 KT&G를 정권 전리품으로 삼으려는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민간기업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고 지시했는데도 일선에선 민간기업에 대한 인사·경영 개입이 이뤄지고 있다”는 취지로 반발했다.
박근혜 정부 때엔 “청와대 인사가 KT&G에 직접 찾아와서 ‘사외이사 추천이 잘못됐다’고 항의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KT&G에선 실제 찾아온 인사가 있는지 CCTV를 확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백 사장의 경우 광고회사에서 뒷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1, 2심에서 무죄를 선고를 받기도 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당시 청와대 수석이 지인을 밀어 넣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벌였다”고 전했다.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결과적으론 복잡한 길을 돌았다. 한 사외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개입하려는 구나 하는 느낌은 받았지만, 실제로 노골적으로 개입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KT&G는 이사회가 사장 선임의 전권이 있기 때문에 (사장을 교체하려면) 사외이사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게 없었다. 때문에 정부가 관심을 갖다가 치워버렸거나 기업은행이 혼자 뛰다가 주저앉은 것으로 생각했다.”
김태윤·하준호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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