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았다, 알았다, 말하지 않았다" 中 신문 마지막호 제목

신경진 2019. 1. 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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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50만부 찍던 랴오닝성 화상신보 정간
인민일보 신년호부터 평일 24→20면 감면
독자감소·언론통제에 신문들 '정간 쓰나미'
’보았다. 알았다. 걸었다. 말하지는 않았다.(看見了 知道了 走過了 不說了)“ 지난달말 정간한 랴오닝성 선양시의 대중신문 화상신보의 마지막호 1면. [인터넷 캡처]
“보았다. 알았다. 걸었다. 말하지는 않았다.(看見了 知道了 走過了 不說了)”

지난달 29일 중국 랴오닝(遼寧)성의 대중지였던 ‘화상신보(華商晨報)’가 마지막 종이신문 1면에 실은 짤막한 12자 이별 기사 전문이다. 유명 소설가인 류칭(劉慶) 총편집인은 “모두 걷자. 등불을 꺼야 해 괴롭고 어둠이 두렵지만, 우리가 등을 끄는 것은 아니다”라며 SNS 플랫폼인 웨이신(微信·위챗)에 마지막 종이신문 제작 기록을 덤덤하게 실었다.

2000년 창간해 18년간 하루 광고매출 400만 위안(6억5000만원), 연간 3억 위안(490억원), 최다 50만 부를 발행하며 직원 1000여 명에 달하던 선양(瀋陽)시 대중신문 화상신보는 독자 감소로 3년 연속 구조조정과 감원 끝에 작은 사무실에 전 직원이 모일 정도로 쪼그라든 상태다.
’보았다. 알았다. 걸었다. 말하지는 않았다.(看見了 知道了 走過了 不說了)“ 지난달말 정간한 랴오닝성 선양시의 대중신문 화상신보의 류칭 총편집인이 마지막호 1면 대장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화상신보 SNS판 캡처]
중국 전통 매체가 2019년을 지각 변동으로 시작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월 1일 신년 호 1면에 “평일 24면에서 20면, 주말 12면에서 8면으로 조정하며, 전면 컬러 인쇄하지만, 구독료 변화는 없다”는 알림을 내고 감면을 선언했다.
전국에서 10여개 이상의 종이신문이 인쇄를 중단했다. 베이징에서 ‘북경신보(北京晨報)’, ‘법제만보(法制晩報)’가 1일 자로 정간(停刊)했다. 지방에서는 ‘흑룡강신보(黑龍江晨報)’, ‘감주만보(贛州晩報)’, ‘신상보(新商報)’, ‘신지신보(新知訊報)’, ‘중경시보(重慶時報)’, ‘춘성지철보(春城地鐵報)’ 등이 정간 행렬에 동참했다. 미디어 전문 인터넷매체 ‘광전두조(廣電頭條)’는 “2019년 많은 주류 매체가 종이신문을 버렸다”며 “정보화 시대 생존을 위한 시련에 대처하는 변혁의 몸부림”이라고 평가했다.
2019년 연초 감주일보, 황산신보, 화상신보 등 중국 전역에서 10여개 종이신문이 인쇄를 중단했다. 독자감소와 뉴스 소비 형태의 변화와 언론탑압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인터넷 캡처]
신문사들이 종이신문을 버렸지만, 보도를 중단한 것은 아니다. 안후이(安徽)성의 지방지 ‘황산신보(黃山晨報)’은 뉴미디어로 체제를 개편했다. 지난달 28일 자황산신보는 1면에 “오늘 아침신문에서 아쉬운 이별을 하지만 이후 24시간 보도로 다시 만나겠다”고 썼다. 황산일보는 새롭게 개편한 뉴스 어플리케이션(앱)과 SNS 매체를 공개했다. 장시(江西)성의 ‘감주만보’도 마지막 호 1면에 “새해 1일 감주만보가 정간한다. 안녕이라 말하지 않겠다. 매체를 융합한 매트릭스로 다시 만나겠다”며 변신을 선언했다.

신문과 달리 방송은 보도 기능을 강화했다. 베이징위성방송은 새로운 뉴스 프로그램 ‘서우두완젠바오다오(首都晩間報道)’를 월~목 오후 10시 30분, 금~일 오후 11시 30분 방영을 시작했다.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뉴스를 전달하며 심층취재와 평론 기능을 강화했다는 평가다. 상하이의 둥방(東方)위성방송은 종합 시사프로 ‘진완류스펀(今晩60分)’을 평일 황금시간대인 오후 10시 30분에 편성하며 새로운 뉴스 포맷을 선보였다.

신문사들의 정간 ‘쓰나미’가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강화된 언론 통제와 탄압 탓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1일 정간한 법제만보는 베이징시 정법위 기관지인 북경법제보(北京法制報)를 이어 2004년 5월 창간했다. 깊이 있는 탐사보도로 정평이 난 종합 대중지였다. 지난 2017년 말왕린(王林) 사장이 돌연 사직한 뒤 베이징시 공청단 기관지 북경청년보(北京靑年報)의 펑량(彭亮) 부사장이 파견됐다. 2018년 5월에는 돌연 탐사뉴스부가 해체됐다. 기자들은 대량 이직으로 항의했지만 결국 정간됐다.
지난달 31일 장시성 감주일보의 종이신문 마지막호 1면. ’안녕이라 말하지마“라는 글자가 인상적이다. [인터넷 캡처]
또 다른 정간지 북경신보는 베이징시 공산당 위원회 선전부의 지휘를 받는 북경일보그룹 소속 대중지였다. 2016년 지난 2011년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고속열차 탈선 사고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경화시보(京華時報)’를 병합하며 성가를 올렸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베이징시 공산당 심화개혁조가신경보, 북경신보와 인터넷매체 첸룽망(千龍網)의 통합을 의결했다. 당국은 선전분야의 “공급자 측 개혁”이라고 설명하지만, 홍콩과 중화권에서는 중국판 ‘언론 통폐합’이라고 반박한다.

지난해 9월 홍콩의 인터넷 언론 이니티움미디어(端傳媒)가 ‘전면 검열시대’란 탐사보도로 중국의 검열 실태를 폭로했다. 18년 경력의 중국 시사지 편집자는 “현재 뉴스 종사자는 충분히 알고 무엇이 본질인지 알고 있어도 지면에 쓸 수 없다”며 “배후의 우두머리를 모르는 척하며 표면적인 현상만 보도할 뿐”이라고 한탄했다. 또 다른 시사지 종사자는 “현재 가장 두려운 점은 기자들이 보도 마지노선을 모른다는 점”이라며 “뉴스를 다루는 SNS 매체를 (당국이) 체포해도 모두 합법”이라고 우려했다. 법 규정이 고무줄 같아 기자를 언제, 누구라도 합법적으로 체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초부터 설화(舌禍)도 퍼졌다. 지난 1일에는 “당국이 북경일보 신년 호를 회수 중”이라는 글이 SNS에 퍼졌다. 양청쉬(楊成緖) 전 오스트리아 대사가 “현재 유럽에서 집권 정당마다 정치적 주장은 다르지만, 각국의 대형 정당이 영향력을 잃고 있는 것은 논쟁의 여지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한 칼럼이 중국 공산당을 비유했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14억 중국인의 뉴스 소비 형태가 디지털과 모바일로 급변하고 공산당의 통제와 탄압이 겹치면서 중국 미디어 업계가 혹독한 새해를 맞고 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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