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 오도독] '사람 값'..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최저임금을 어떻게 보도할까?

최경영 2019. 1. 7. 11:3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여기 한 여성 노동자가 등장합니다.

한국의 보도에는 최저임금을 직접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별로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CBC는 같은 보도에서 이번 최저임금 인상조치로 토론토 식당 한 곳당 평균 4만 7천 불, 우리 돈으로 따지면 1년에 4천만 원 정도 순이익이 감소하게 생겼다고 우려하는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았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CBC는 여기서 또 한 발 더 나아가서 보도 후반부에 최저임금 인상을 찬성하는 자영업자의 인터뷰를 하나 더 넣고 있습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 여성 노동자가 등장합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거주하는 '브라보'라는 이름의 여성입니다. 그녀는 4군데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공장 노동자로, 청소부로, 건설 인부, 카페 직원으로 최저 시급을 받고 있지요.

"온타리오주의 최저임금 인상이 소규모 자영업자들을 죽인다는 비판을 받지만, 많은 사람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인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Ontario's minimum wage raise a 'small business killer,' say critics, but for many it means feeling 'human')라는 제목의 캐나다 공영방송 CBC의 보도에서 '브라보'는 기사 맨 처음에 등장합니다.

CBC의 기자는 최저임금이 15불로 인상된 것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습니다.
그녀가 CBC 기자에게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한때 난 내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 현실이었다. 4개의 다른 직장에서 이리저리 파트타임으로 일하다보니 정말 힘들었다. 쉴 시간도 별로 없었다. 최저시급이 15불(한화 13,000원 수준)로 올라가면 내게는 참 좋은 일이지. 정부나 시당국이 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니 고마운 일이다. 내가 한발짝 또 나아갔구나. 당신(기자)같은 그런 안정된 삶을 향해...언젠가 나도 당신들처럼 각종 고용 혜택을 받을 수 있겠지. 내가 이제야 좀 진화된 사회(first world)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야 내가 당신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하지만 시급 15불이 내가 원하는 전부는 아니다. 난 내 가치가 이보다는 더 높다고 믿는다”

최저임금과 관련해 주로 자영업자나 강단 교수들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 우리나라의 보도태도와는 참 많이 다릅니다. 한국의 보도에는 최저임금을 직접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별로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경제적 취약계층이 내는 목소리도 우리보다 훨씬 더 당당함이 느껴집니다. 사람들의 생각도, 보도 양태도 한국과는 다릅니다.

그렇다고 CBC가 자영업자들의 우려, 비판의 목소리를 기사에서 배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CBC는 같은 보도에서 이번 최저임금 인상조치로 토론토 식당 한 곳당 평균 4만 7천 불, 우리 돈으로 따지면 1년에 4천만 원 정도 순이익이 감소하게 생겼다고 우려하는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았습니다. 토론토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프레드 루크 사장은 정부의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30퍼센트 이상 늘어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다 죽게 생겼으며(small business killer), 이러면 토론토 식당들은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자르거나 식당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건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캐나다 CBC는 여기서 또 한 발 더 나아가서 보도 후반부에 최저임금 인상을 찬성하는 자영업자의 인터뷰를 하나 더 넣고 있습니다. 직원 12명을 고용한 헬미 안싸리 사장의 인터뷰입니다. 안싸리 사장은 CBC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토론토 같은 도시에서 어떻게 1년에 22,000불, 23,000불 받고 생활이 가능한가. 여기서 그 돈으로는 못 산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 자기 삶에 찌든 사람들이 어떻게 일에 집중할 수 있겠나. 나는 기본적으로 최저임금 12불, 13불씩 주고 사람들 일 시키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최저임금을 15불로 인상하는 것이 당장에 사업에 안 좋을 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우리 사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참 신기하지요? 보도에는 비디오 인터뷰가 총 3개가 나오는데 인터뷰의 숫자도 최저임금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2대1로 되어 있습니다. 전체 보도의 뉘앙스도 최저임금 인상에 호의적입니다. 그런데도 기사 댓글을 보면 "좌빨"이네, 또는 "어용"이네 하는 캐나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이게 국격인 것일까요?

이게 단순히 먼 나라 캐나다의 이야기일까요? 캐나다니까 이런 보도가 당연한 것이고, 한국은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으니, 30년 고용한 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보도하는 것이 당연합니까? 과연 언제까지 한국 언론은 사회적 갈등을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부풀리고 과장만 할 작정인가요? 과연 언제까지 사회적 갈등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합의는 나 몰라라 뒷짐지며 자영업자와 최저임금 시급 노동자들의 싸움, 을과 을의 싸움을 부추기면서 정치적, 상업적 이익 따먹기에 열을 올리려는 것입니까?

캐나다에서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지 8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1988년부터 시행됐으니 30년이 좀 넘었지요. 그럼 앞으로 50년쯤 지나고 나서야 우리도 캐나다 CBC 같은 언론의 보도가 당연한 것이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한국 언론이 지금처럼 공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주저하고,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면서 을과 을의 싸움을 부추기기만 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50년이 지나도 똑같은 보도, 똑같은 사회를 맞닥뜨리게 될 개연성이 높습니다. 언론이 변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인식도 변하지 않습니다. 최저임금이라는 건 결국 그 사회에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사람값"이라는 인식말입니다.

최경영 기자 (nuroo@kbs.co.kr)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