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의회, 사실상 '해외관광일정'으로 꽉 채운 계획서.."심의 30분 만에 원안대로 통과"

백경열 기자 2019. 1. 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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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공무국외연수 중 가이드 폭행 등의 물의를 일으킨 경북 예천군의회는 사실상 ‘해외관광’ 목적으로 일정표를 짰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기초·광역의회 상당 수가 비슷한 형태의 계획을 세우는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7월 예천군의회 개원을 기념해 의원 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군의회 홈페이지 갈무리

7일 경향신문이 예천군의회에서 받은 ‘2018 해외연수 세부일정’을 보면, 예천군의원 9명과 의회 사무국 직원 5명 등 14명은 지난달 20~29일(7박10일) 미국 동부 지역과 캐나다로 연수를 다녀왔다. 준특급호텔에서의 숙박 비용으로 1인당 83만5000원(7박) 등을 포함해 각 442만원을 썼다. 총 예산은 6188만원이 들었다.

연수단은 인천을 출발해 미국 뉴욕에 도착한 뒤 전용 차량을 타고 워싱턴·프린스턴과 캐나다 토론토·오타와·몬트리올 등지를 방문했다. 연수기간에 비해 동선이 길어 하루에 방문할 수 있는 도시가 1~2곳에 불과했지만, 일정은 철저히 관광 중심으로 꾸려졌다.

예천군의회는 연수 첫날인 20일 뉴저지주 프린스턴의 한 호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둘째 날에는 4시간을 달려 워싱턴을 방문해 첫번째 공식일정을 소화했다. 이들은 ‘케어피플 성인 데이케어 센터’(Adult Daycare Center)에 들렀다. 이 곳은 일정 규모의 공간에 실내산책로·음악치료실·노래방 등의 운동 및 문화시설을 갖춰놓고, 한인 어르신이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곳이다. 최근 몇 년 새 워싱턴에 상당 수가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예천군은 다른 농촌 지역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고령화에 따른 인구 소멸 위험에 빠져 있다.

현지 분위기를 통해 지역에서의 벤치마킹 가능성을 엿본 의원들은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고 백악관·국회의사당·링컨 등 미 전직대통령 기념관·한국전 전쟁기념비 등도 살폈다.

22일에는 전용 차량을 타고 펜실베니아 목장지대를 거쳐 국경지대를 통과,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광했다. 의원들은 폭포를 둘러본 뒤 360도를 회전하는 스카이론 타워 전망대에서 스테이크 특식으로 저녁을 먹고 아이맥스 영화를 감상했다.

폭포 관광은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방문단은 지하동굴 밖을 나가서 경관을 즐겼다. 수력발전소와 호수 등을 본 뒤 오후 1시쯤 발걸음을 돌린 의원들은 토론토로 이동해 문화체험을 했다. 토론토 구·신청사와 토론토 대학 등을 보고 호텔로 이동했다.

5일차인 24일에는 오타와로 이동해 시청과 시의회를 둘러봤다. 예천군의회 관계자는 “오타와가 구청사 옆에 신청사를 지어서 예천군과 상황이 비슷하다”면서 “구청사 활용방안을 살피기 위해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방문단은 국회의사당과 총독관저, 리도운하 등 관광지를 거쳤다.

이날 오후 늦게 오타와를 나선 이들은 몬트리올에 도착해 자끄까르띠에 광장, 노트르담 성당 및 광장, 올림픽 경기장 등을 봤다. 이날 저녁 메뉴로는 랍스터와 와인이 준비됐다.

7일 보수성향의 시민단체인 ‘활빈단’ 관계자들이 예천군의회를 찾아 이형식 군의회 의장에게 해외연수 중 가이드를 폭행한 박종철 의원의 사퇴 등을 요구했다.|연합뉴스

25일은 하나의 거대한 세계문화유산인 퀘벡주에서의 일정으로 채워졌다. 연수단은 샹플랭 거리·더 프린 테라스·샤또 프롱트낙 호텔·화가의 거리 등으로 걸음을 옮겼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아브라함 대평원도 빼놓지 않았다. 오를레앙 섬을 들러 수백년 전 유럽풍 가옥을 둘러보기도 했다.

방문단은 7일차(26일)에는 다시 미국으로 이동, 뉴욕주 워런 카운티에 있는 레이크 조지마을을 지나 뉴욕의 쇼핑명소인 ‘프리미엄 우드버리 아울렛’에 들르기로 했다. 이곳에서 자유 쇼핑을 할 예정이었지만 다음 일정이 늦어 계획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군의회 관계자는 “쇼핑 이후 인근 H마트 방문해 대표와 간담회를 갖기로 했는데, 시간이 늦어져 쇼핑은 취소했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예천군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미국 내 마트에서 팔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들렀다.

귀국 전 마지막에는 이번 연수의 2번째 공식방문 일정이 마련됐다. 뉴저지주 파라무스 의회에 방문해 역할 등에 대해 소개를 받았다. 연수단은 마지막 일정으로 워싱턴 관광을 택했다. 워싱턴 광장과 맨해튼섬 남부 예술가 거주지역인 ‘그리니치빌리지’, 미트패트리킹 거리 등을 거닐었다. 폐철도를 복원해 조성했다는 하이라인 공원을 보고 월스트리트 및 황소 동상도 구경했다.

유람선 위에서는 자유의여신상도 봤다. 차이나타운과 유엔본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의 경치도 빼놓지 않았다. 록펠러센터, 센트럴파크, 브로드웨이 등도 일정에 포함돼 있었다. 방문단은 28일 현지시각으로 0시50분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예천군의회 관계자는 “관광 위주로 짜여져 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이번 연수의 목적이 자연유산 및 관광자원 개발과 보존실태, 도심재생, 다양한 복지정책 등을 파악하는 것이었다”면서 “지역 실정에 맞는 방안을 찾기 위해 연수를 진행했고 사전 심사를 거쳤다”고 말했다.

이어 “2016·2017년에는 각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라오스를 방문하는 등 그간 동남아 위주로 연수를 떠났다”면서 “지난해만큼은 선진지를 방문하자는 의원들의 의견을 참고해 다른 지자체의 연수자료 등을 보고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박종철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54).|박 의원 홈페이지 갈무리

이번 해외연수와 관련해 예천군의회는 지난해 11월26일 오후 2시 박종철 당시 부의장(54)실에서 심사위원회를 열었다. 이들은 ‘단순 시찰 견학 등을 목적으로 하는 국외 여행을 억제한다’ ‘여행목적 수행에 필요한 국가기관으로 (방문을) 제한하고, 부수적인 목적 수행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방문국과 방문기관을 추가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등을 자체 심사기준으로 세웠다.

이번 계획은 심사위원 7명의 만장일치로 회의가 시작된 지 약 30분 만에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7명 중 의원이 2명, 의회 사무처 직원이 2명 포함됐다. 박 의원은 연수 나흘째인 23일 오후 6시쯤(현지시각) 캐나다 토론토에서 저녁을 먹고 다른 장소로 가기 전, 버스 안에서 50대 한국인 가이드 ㄱ씨의 얼굴 등을 주먹으로 때려 콧등 등에 상처를 입혔다는 의혹을 받는다. 박 의원은 지난 4일 잘못을 인정하고 부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이날 저녁 자유한국당 경북도당에 탈당계를 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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