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배반 [양권모 칼럼]

양권모 논설실장 입력 2019. 1. 7. 21:02 수정 2019. 1. 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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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어쩌면 조기 진화될 것 같던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를 거의 참사 수준으로 전화시킨 데는 손혜원 의원의 활약(?)이 컸다. 손 의원의 무지막지한 글도 경악스럽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더불어민주당의 방관도 무섭다. 손 의원의 폭주에 제어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것은, 어쨌든 그가 ‘우리 편’에서 싸우기 때문일 게다. 청와대 감찰반 사태가 터졌을 때 ‘조국 민정수석 책임론’(조응천 의원)이 불거지자 의원들이 앞다퉈 나서 단숨에 제압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민주 정당에서 분열 못지않게 위해한 것은 다양성이 사라진 획일화와 맹목적 충성이다. 그 유전자가 민주당에 스며들고 있다.

민주당의 불통이 심해지고 있다. ‘강한 여당’을 표방한 이해찬 대표 체제가 등장한 이후 4개월 동안 의원총회가 4번 정도 열렸다. 정기국회 기간 여야 합의사항이나 ‘유치원 3법’ 보고 의총을 빼면, 정국 이슈나 주요 정책을 다루는 의총은 한 차례 열렸다. 그것도 이 대표 취임 전에 이미 잡힌, 은산분리 완화 법안을 다루기 위해 열린 의총(8월29일)이다. 의총이 필요 없을 만큼 만사태평이어서는 아닐 터이다. “의총을 열면 청와대 입장과 다른 말이 나올까 봐서” 그랬을 수 있다. 사실 집권여당에서 이만큼 ‘다른’ 목소리가 없었던 적이 없다. 전당대회 기간에 “당이 청와대를 견제하지 못하고 침묵해서는 안된다”고 목청을 높이던 초선의원들도 조용하다. 결국 주요 정책 변화에 대해 당내 토론과 지지층 설득 과정이 번번이 생략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정부를 견인하기는커녕 청와대가 내린 과제와 이슈를 따라가기 급급하니, 여당의 자리가 협소해지는 것이다. 2018년 마지막 날 문재인 대통령이 당 지도부와 오찬을 했다. 오찬에 앞서 문 대통령과 이 대표는 배석자 없이 독대했다. 공히 이해찬 대표 체제에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이다. 여당 지도부가 이럴진대 일반 의원들이 대통령을 만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극히 정상이어야 할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만남이 당·청 소통의 신호로 조명받는 현실이다. 소위 ‘민주당 정부’에서 당·청의 불통이 이렇다.

민주당은 무기력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처리가 없었다면 집권당 2년차인 민주당의 2018년 결산은 너무 남루했을 것이다. 개혁입법은 2년째 사실상 빈손이다. 야당을 탓하기 전에 말로만 외쳐온 ‘협치’를 돌아볼 때다. 그나마 산안법도 민주당 실력으로 성안된 게 아니다.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의 무참한 죽음, 아들을 잃은 어머니 김미숙씨의 눈물겨운 헌신과 호소가 28년간 잠자던 산안법을 깨웠다. 3년 전 ‘구의역 사고’로 19살 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이름으로 산안법 개정안 등 7개 법안을 패키지로 내놨다. 민주당이 집권여당이 되었지만 방치로 일관,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은 김용균씨가 죽고 나서야 세상에 나왔다.

민주당은 태만해졌다. 카풀 정책에 항의하려 택시 종사자 10만명이 운집한 지난달 22일 여의도 집회에 민주당에선 전현희 의원(민주당 택시·카풀TF 위원장)이 참석했다. 한국당에서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나왔다. 전 의원 연설 도중 심한 야유가 터져나온 반면, 나 원내대표 연설 때는 환호가 들렸다. 이해집단 집회이긴 하지만, 촛불 이후 민주당과 한국당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엇갈린 것은 드문 일이다. 당시 이 대표는 당 특별위 출범식에, 홍영표 원내대표는 여성가족부 업무보고에 참석했다. 나 원내대표의 흑색선전을 성토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안이함을 돌아봐야 했다. 민주당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파인텍 노동자들을 찾은 것은 세계 최장기 기록을 세우기 하루 전날(12월24일)이다. 민주당은 현장의 치열함을 잊었다.

민주당 지지율은 추세적으로 하락해 30%대에 머물러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 조사 기준으로 6·13 지방선거 직후 최고점에 비하면 6개월 만에 20%포인트 정도 떨어졌다. 그간 고공 지지율이 민주당의 자생력에 바탕을 둔 게 아니었으니,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 하락과 동기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주목할 것은 한동안 민주당에서 이탈한 지지가 정의당으로 옮겨 갔으나, 근래에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등락이 연동되는 조짐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렇다하게 바뀐 게 없는 한국당이다. 민주당이 싫어서 한국당을 택하는 적극 반대층이 늘었다는 얘기다.

여전히 상대가 ‘한국당’이라는 이유에서 실제 선거에 가면 달라질 것이라며, 막연한 희망을 붙잡고 있기에는 민주당이 ‘해 놓은 것’이 너무 없다. 정치에서 도저히 만회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라고 했다. 촛불의 절실한 기대를 안고 출발한 민주당은 실로 황금 같은 ‘집권당 2년’을 허송했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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