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공소시효 끝난줄 착각.. '제2지존파' 도피범, 19년만에 잡혔다

김정훈 기자 입력 2019.01.08. 03:00 수정 2019.01.08. 03:50

지난해 9월 5일 오전 3시.

하지만 이 씨의 도피 생활은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2014년 3월이 지나면 공소시효 만료로 그는 처벌을 면하게 돼 있었다.

형사소송법상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는 그 기간만큼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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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인조 강도중 1명 법의 심판
지난해 9월 5일 오전 3시. 서울 양천구의 주택가 골목에 세워진 스타렉스 차량 안에는 서울 서초경찰서 강력5팀 형사들이 숨죽이며 대기하고 있었다. 전날 오전 9시 집에서 나간 이모 씨(62)를 붙잡기 위해 15시간째 잠복 중이었다. 곧 형사들의 시야에 이 씨가 들어왔다. 형사들이 차량에서 일제히 내려 다가서는데도 이 씨는 태연하게 걸어왔다. 형사 2명이 그의 양팔을 붙들었다. 이 씨는 “왜 이러느냐”며 큰 소리로 따졌다. 경찰은 체포영장을 내밀었다. 영장에 적시된 혐의는 ‘특수강도강간’. 이 씨는 “나는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다”며 버텼지만 19년에 걸친 그의 도피생활에 종지부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 ‘제2지존파’로 불린 도피범

이 씨는 1999년 서울 강남 일대에서 부녀자들을 납치해 돈을 빼앗고 성폭행한 4인조 일당 중 한 명이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그해 모두 검거돼 징역 13∼17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씨의 도피 생활은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교도소 등에서 만나 알게 된 이 씨 일당은 1999년 3월 한 달간 여성 4명을 납치해 돈을 빼앗고 성폭행했다. 훔친 차량을 몰고 다니면서 어둡고 한적한 골목을 배회하다 혼자 걸어가는 여성들을 목표물로 삼았다. 납치한 여성을 2, 3일간 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피해자의 카드로 현금을 인출했다. 차량 안에선 번갈아가며 납치한 여성을 성폭행했다. 여성들을 풀어줄 때는 “신고하면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을 빼놓지 않았다.

4인조 일당의 이 같은 수법은 1994년 강남 부녀자 5명을 납치해 살해한 지존파의 범행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경찰은 이들을 ‘제2의 지존파’로 부르며 검거에 나섰다. 하지만 이 씨는 범행 한 달 뒤인 1999년 4월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위조 여권을 사용해 중국으로 달아났다. 자신이 납치한 여성의 카드로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잡혀 TV에 방송되자 해외로 도주를 결심한 것이다.

○ 해외 도주 확인돼 결국 심판대에

이 씨의 행적은 19년간 묘연했다. 그의 혐의인 특수강도강간의 공소시효는 15년. 2014년 3월이 지나면 공소시효 만료로 그는 처벌을 면하게 돼 있었다. 이 씨가 지난해 9월 잠복 경찰과 맞닥뜨렸을 때도 태연했던 이유다. 일당 3명 중 가장 무거운 형량인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던 공범은 2017년 초 출소했다.

하지만 이 씨가 놓친 게 하나 있었다. 형사소송법상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는 그 기간만큼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것. 경찰이 이 씨의 행적을 포착한 건 지난해 3월이었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수상한 사람이 있다’며 이 씨의 인적사항을 경찰에 넘긴 것이다. 이 씨는 2017년 10월 한국으로 다시 들어왔는데 출입국관리사무소가 확인한 결과 출국 기록이 없었다. 입국자의 출국 기록이 없다면 출국할 때 위조 여권을 썼다는 얘기였다.

경찰은 이후 6개월 동안 이 씨의 행적을 끈질기게 추적했다. 그의 도피는 지능적이었다. 범행 직후 중국으로 달아났던 이 씨는 한국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도피했다. 이때도 위조 여권을 사용했다. 이 씨가 미국에서 일용직과 마사지 업소 등을 전전하며 생활한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이 이 같은 출입국기록과 위조 여권 사용 증거를 내밀며 “처벌을 피하려 도주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이 씨는 발뺌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강도 성폭행에는 가담하지 않았고 단순 (현금) 인출책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공소시효도 지났고 공범들이 다 출소해 붙잡힐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구속돼 기소된 이 씨는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