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중국 '보따리상 BJ' 600팀 생중계에.. 동대문이 살아난다

이건창 기자 입력 2019.01.0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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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통해 실시간 쇼핑 방송.. 1년 매출만 1600억원

지난 2일 자정쯤 서울시 중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근처의 의류 도매 쇼핑몰 3층. 셀카봉에 휴대전화를 끼운 중국인들이 가게를 누볐다. 거위털 패딩을 파는 매장에서 만난 한 중국인 소매상은 갈색과 베이지색 패딩을 번갈아 입었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생방송에는 2000여 명이 접속 중이었다. "색깔은 다른 게 없나요" "옷이 작아 보이는데 사이즈는 괜찮은가요" 같은 메시지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동대문에서 수백㎞ 떨어진 중국 고객들이 올린 질문이다. 그는 사진을 찍어가며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실시간으로 올렸다. 동대문 도매가의 2배 가격이지만 5분 만에 패딩 4벌을 팔았다.

지난 2일 자정쯤 서울 중구 의류도매상가 APM플레이스에서 중국인 보따리상 BJ(왼쪽)가 휴대폰으로 쇼핑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에서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이‘모자 쓴 모습도 보고 싶다’는 실시간 댓글을 달자 매장 직원(가운데)이 패딩 모자를 써보고 있다. /이건창 기자

요즘 서울 동대문 의류 상가는 실시간 판매 방송을 하는 중국 소매상으로 붐빈다. 상인들은 '왕훙(網紅·인터넷 스타)' '보따리상 BJ(인터넷 방송인)'라고 부른다. 상가 관계자들에 따르면 'APM플레이스' 'DDP몰' 등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일대 의류 도매 상가에서 활동하는 중국인만 600여 팀 정도 된다. APM플레이스에서 의류 도매점을 운영하는 전모씨는 "중국인 손님 10명 중 5~6명은 라이브 방송을 하는 BJ 상인"이라고 했다.

개인이 인터넷 홈쇼핑 방송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2016년 출시된 '타오바오 즈보(直播·라이브)'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몰과 인터넷 방송을 합쳐 놓은 서비스로, 중국 인터넷 업체 '알리바바' 계열이다.

중국인 소매상들의 '동대문 라이브'는 상가가 문을 여는 오후 8시쯤 시작해 새벽 3시쯤 끝났다. 한국 소매상들이 움직이는 시간대보다 2~4시간 이르다. 중국인들이 퇴근하고 집에서 인터넷 쇼핑하는 시간대에 맞춘 것이다.

중국인 보따리상이 실시간으로 상품을 올리고 주문을 받는 휴대폰 화면. /이건창 기자

지난 6일 밤 동대문의 한 쇼핑몰에서 만난 중국인 유학생 왕모(25)씨도 누나와 함께 휴대전화 방송 중이었다. 누나 왕씨가 귀걸이와 옷을 걸치는 '모델'을 맡고 왕씨가 쇼핑 호스트를 맡아 실시간 중계를 한다. 왕씨는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매장 5곳을 돌면 하루에 5000위안(약 82만원) 정도 판다"고 했다.

동대문 상가는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며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지대식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은 "2017년에는 전년 대비 매출이 30~40%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고 했다. 동대문에서 대량으로 의류를 사 가던 중국인 도매상들이 발길을 끊자 "중국 정부의 통제 때문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다 지난해 봄부터 중국인 보따리상 BJ가 하나둘 동대문 상가에 나타나 수백 팀까지 늘어났다. 지대식 사무국장은 "지난해 동대문 지역에서 활동하는 '보따리상 BJ'들이 발생시킨 매출이 1500억~1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동대문에서 액세서리 도매업을 하는 이모(50)씨는 "지난해 4~5월부터 보따리상 BJ들의 활동이 늘면서 판로도 늘고 동대문 의류 상가 전체가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며 "2016년 대비 60~70% 수준까지 매출이 회복된 느낌"이라고 했다. 박보람 차이나마케팅명가 이사는 "동대문 의류 도매 상가에서 활동하며 하루에 1억원을 파는 중국인 BJ도 있다고 안다"고 했다.

동대문 상가를 휩쓸고 다니는 보따리상 BJ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많을 때는 한 상가에서만 50팀이 다니는 통에 자정부터 오전 5시 사이 활동하는 한국인 소매상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아동복 소매상인 이성욱(44)씨는 "중국인 BJ들이 큰 소리로 방송하거나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일에 방해가 될 때가 잦다"고 했다. 좁은 매장 안에서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으면서 주문량이 많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동대문에서 의류 도매상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30분 넘게 방송을 하고서 옷 6장만 사 가는 보따리상 BJ도 봤다"며 "재고가 남아서 할인할 때가 아니면 방송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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