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개 공공기관 캠코더 물갈이, 관행을 가장한 위법이었을까

박태인 2019. 1. 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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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 중인 검찰
공공기관 물갈이 인사에 대한 유무죄 검토
법적으로 임기 보장하나 정권 바뀌면 또 낙하산
검찰, 권성동 의원 기소 논리면 "현 정부도 처벌"
관행처럼 이어져왔던 공공기관 낙하산 물갈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중앙포토]
"10년간 야당 생활을 했으니 얼마나 굶주렸겠어, 보낼 사람이 많은지 내부 승진한 임원도 나가라 하더라고."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로 최근 검찰에 출석한 환경부 산하기관의 전직 임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이뤄진 '공공기관 물갈이'를 이렇게 기억했다.

이 전직 임원은 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 같은 낙하산은 정권이 바뀌면 나가는 것이 예의상 맞다"면서도 "환경부 출신 임원에게도 사표를 받을 때는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위 '도리'나 '예의'란 이름으로 행해진 공공기관 임원의 물갈이 인사는 죄가 될 수 있을까.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이 살펴보는 것도 이 오랜 관행에 대한 유·무죄 여부다.
자유한국당의 김도읍(오른쪽) 의원과 강효상 의원이 7일 오후 서울동부지검에서 여권 인사들을 무더기로 고발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신재민 전 사무관의 유튜브 폭로와 관련해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6명의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연합뉴스]
검찰 관계자는 "고발된 공공기관 인사에 대한 사실 관계와 법리 검토를 최대한 치밀하게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동부지검은 처음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수사관을 3일, 4일, 7일에 불러 조사했고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에 대한 집중적인 소환 조사도 진행 중이다.

이와 비슷하게 최근 검찰이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와 관련해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을 기소한 사례도 주목할만하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은 지난해 7월 "권 의원이 자신의 지인을 강원랜드 사외이사에 지명되도록 공무원에게 압력을 가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대규모 채용비리 사건에 묻혀 덜 알려졌지만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의 권 의원 기소 논리면 현 정부도 빠져나가기 어려워"
재판연구관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이 권 의원을 기소한 논리를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장 인사에 적용한다면 빠져나가기 어려운 케이스가 상당할 수 있다"고 했다.

낙하산 인사는 청와대와 여당의 일부 국회의원 등을 통해 이뤄지기 마련인데 법적인 임명 권한은 통상 두 기관이 아닌 공공기관을 관리하는 정부 부처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각종 인사에 대한 청와대의 영향력 행사는 위법할 수도 있다.

2017년 10월 김인호 당시 무역협회 회장은 '정부에서 그만두는게 좋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 뒤 사임했다. 민간기관인 무역협회 회장의 임명권한은 정부에 없다.

김 전 회장은 다만 "지금까지 회장 임명 과정을 정부와 논의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사퇴 압력을 느끼지도 않았다"며 자발적 사퇴 의사를 밝혔었다. 만약 김 전 회장이 문제를 제기했다면 메시지를 전한 정부 인사에게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조세소위원회에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의 모습. 검찰은 권 의원이 자신의 지인을 강원랜드 사외이사로 임명한 것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4월 임기를 1년 앞두고 법무부의 특별 감사를 받은 뒤 해임된 이헌 전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은 자신을 "표적 감사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 전 이사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정부는 과거와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표를 내지 않으니 무리한 감사를 벌였다"고 했다.

법무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이 전 이사장에 대한 감사를 벌인 뒤 ▶독단적 방식의 기관 운영 ▶공단 구성원들에게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언사 남발 ▶인센티브 3억 4000만원 무단 지급 등의 이유로 해임했다. 감사 결과에 '독단적 방식의 기관 운영'이라는 주관적 표현이 들어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정부가 지난 정부 인사들을 몰아낼 때 사정기관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제도 법적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퇴를 시키기 위해 표적 감사를 벌이는 것 역시도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 갖춘 인사 임명한 뒤 임기 보장해줘야"
관행처럼 이뤄진 공공기관 물갈이 인사를 법적으로 따진다면 위법성 소지가 드러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하지만 이를 검찰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검찰 조사를 받은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 사이에서 "관례에 따라 먼저 사표를 냈다"는 진술과 "사퇴 압력을 받았다"는 진술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임원들은 임기를 다 채운 경우가 많아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 김한규 변호사는 "직권남용 혐의가 원체 까다로운 법리고 진술도 엇갈려 검찰의 고민이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 이헌 당시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 의원질문에 답하는 모습. 이 전 이사장은 자신이 표적감사를 당해 이사장직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번 수사를 통해 관행처럼 이뤄진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에 일부 제동이 걸릴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다음 정부에선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들의 임명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으로 2014년~2016년 정부 인사혁신처장으로 근무한 이근면 전 처장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 보은 인사를 해야하는 현실도 존재하지만 이런 관행은 이제 근절될 때도 되지 않았냐"고 했다.

이 전 처장은 "공공기관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정권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공정한 절차를 거쳐 전문성 있는 인사를 임명한 뒤 그 사람의 법적 임기를 보장해주는 것이 결국 국민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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