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 오도독] 갑자기 찾아보기 힘든 "국가적 단합"이라는 단어

최경영 2019. 1. 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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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언론 보도에 나온 인터뷰 내용들입니다. 과연 누가 언제 어느 매체에서 한 말일까요?

1.경제는 심리다. 너무 낙관해도 안 되지만, 너무 비관해도 안 된다. 터널을 지날 때 어둠만 보는 비관적인 자세가 아닌 터널 속 어둠과 터널 끝의 밝은 빛을 모두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2.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 영원한 비관론자로 통하는 외국의 유명 애널리스트의 명성이 유지되는 것은 몇 년마다 한 번쯤은 맞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가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펴면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과도한 비관론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지 않다.

3. 지금 나라마다 얼어붙은 경제를 녹이려고 애쓴다. 문제는 얼어붙은 경제를 녹여서 다시 흐르도록 하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실제 얼음을 녹이는 데 필요한 융해열은 이내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얼어붙은 것은 실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소비해야 경기가 되살아날 터인데 미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는다.

4. 새해 우리 경제는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중국의 성장둔화, 저유가, 미국의 금리인상 등이 세계 경제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수출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어려워지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이 크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의 주력산업은 경쟁력을 강화하는 중국과, 가격으로 위협하는 일본 사이에서 매우 힘든 상황인데다 저출산 고령화와 복지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면서 국가예산 운용의 차질도 예상된다.

5. 전 세계가 경기침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최빈국에서 반세기 만에 선진국 문턱으로 발전을 이룬 나라다. 단합하면 극복할 수 있다. 국민적 화합을 바탕으로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발휘한다면 새해에는 다시 한 번 도약의 기회가 찾아오리라 확신한다

거꾸로 답을 말씀드리면 5번은 사법부 수장 “경제위기, 단합-소통으로 이길 수 있다”는 제목의 조선비즈의 기사(2016.1.1)중에서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의 발언을 재인용한 것입니다. 대법원장까지 나서 경제 위기 상황에 단합과 소통을 강조했다는 게 눈길을 끕니다. 2016년 1월에도 우리나라 경제는 위기 상황이었나 봅니다.

4번은 재계 수장들 “내년 경제 더 어렵다”...국가적 단결 주문” 이라는 파이낸셜뉴스의 기사(2015.12.29) 중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발언을 재인용한 것입니다. 중국 성장이 둔화되고, 저유가에 미국 금리인상으로 세계 경제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고 발언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신년사는 현재 2019년 올해 그대로 인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지요? 한국경제가 처한 구조적 상황이라는 것이 최근 몇 년간 늘 비슷했다는 반증입니다.

3번은 보수논객이자 소설가인 복거일 씨의 칼럼을 재인용한 것입니다. 2009년 1월 18일 “미네르바와 경제예측”이라는 세계일보의 칼럼에서 복거일 씨는 “아쉽게도 지금 경제위기에 관한 예측은 거의 다 그렇게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것들이다.”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2009년 초면 2008년 가을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해서 미국이 금융위기에 직면한 직후이니, 지금보다 세계 경제는 더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지표가 지금보다 나빴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경제 위기에 관한 예측은 거의 다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것들이다는 주장이 나왔군요. 그런데도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복거일 씨의 칼럼에는 “어용”이네, “좌빨”이네와 같은 댓글은 달리지 않았습니다.

2번은 이명박 정부 당시 금감위 위원장이었던 전광우 위원장이 미네르바의 논리는 허점투성이며 반박할 가치도 없다고 비판하면서 한국경제는 안정적이다,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고, 내년 하반기부터는 회복의 모멘텀들이 나타나지 않겠냐는 신중한 낙관론을 펴면서 했던 발언들입니다. 2008년 12월 1일 조선일보는 전 위원장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썼지요. 단 한 마디의 반론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경제는 심리다”라고 말한 1번의 발언 내용은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조선비즈를 통해 2014년 12월 31일 한 발언들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기사 제목이 “경제는 심리, 너무 비관해서는 안 된다”입니다.

지금도, 그때도, 언론은 늘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언론에는 잘 보이지 않는 단어가 그때는 있었습니다. 바로 “단합”이라는 말입니다. 그때는 국가 경제가 위기니 단합이 필요하다고 심지어 대법원장까지 나서서 이야기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똑같이 국가 경제가 위기라고 하면서 “그게 다 문재인 탓이다”라는 식으로만 말하는 것일까요?‘조중동매한’으로 대표되는 정파적 상업 신문사들은 국가적 경제위기를 설파하면서 왜 그때는 국가적 단합을 외치고, 지금은 그런 단어 자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요? 2019년 신년이 시작되고 언론사 경제보도의 헤드라인을 보면서 문득 들게 된 저의 궁금증은 2013년 12월 17일 조선일보의 김대중 칼럼을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가 됐습니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은 자신의 칼럼에서 당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입니다.

“다음 정권도 현 정권의 정체성을 이어갈 수 있는 동질, 동종의 보수 성향일 때 선행자로서 박 정권의 존재는 의미가 있다. 보수 측 관점에서 박 대통령은 그것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또 다른 시대적 요청을 안고 있다”

노골적입니다. 적나라하지요. 박근혜 정부 때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이 말하는 이것, “다음 정권도 현 정권의 정체성을 이어갈 수 있는 동질, 동종의 보수 성향일 때 선행자로서 박정권의 존재는 의미가 있다”는 이 언명은 마치 보수 신문 조선일보의 존재의 의미도 동시에 규정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니까 보수 정권이라면 보수 정권을 유지시켜야 하는 것이 존재의 의미, 시대적 요청인 것이고, 만약 현재가 민주당 정권이라면 보수정권으로 교체하는 것이 존재의 의미, 시대적 요청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만이 조선일보 같은 신문사들에게는 존재의 의미이자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으로 밖에 읽혀지지 않습니다.

결국 이들 정파적 상업신문사들에게는 국가 경제에 대한 사려 깊음이나 국익에 대한 고려, 저널리즘의 윤리와 같은 보편적 가치관은 애당초 기대할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2013년의 김대중 칼럼과 최근의 조선일보의 "경제야 망해야 정권이 망한다"는 식의 극단적 보도 태도를 통해 유추해 본다면 조선일보에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정권타도"를 위한 악바리 근성, 오로지 그것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최경영 기자 (nur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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