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폐질환자, 연 1~2회 샤워기 헤드 바꿔주세요"

임웅재 기자 2019. 1. 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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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중 삼성서울병원 교수
급성 폐렴 유발 非결핵 항산균 득실
건강한 사람에겐 문제 안 되지만
기관지확장증 있으면 치명적일수도
가습기·대중탕 장시간 이용 피해야
[서울경제] “기관지확장증 등이 있는 만성 폐질환자라면 가습기를 사용하지 말고 샤워기 헤드는 6개월~1년에 한 번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게 좋습니다. 대중목욕탕의 온탕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고원중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샤워기를 오래 쓰다 보면 내부에 많은 때가 끼어 ‘비결핵 항산균(抗酸菌·acid-fast bacteria)’이 득실거린다. 기관지확장증·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을 앓는 만성 폐질환자의 기관지가 온수 샤워 때 수증기와 뒤섞여 나오는 비결핵 항산균에 감염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며 이같이 조언했다.

가습기도 비슷한 방식으로 수증기를 통해 비결핵 항산균을 퍼뜨릴 수 있다. 건강한 사람에겐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성 폐질환자에겐 급성 폐렴 등을 일으킬 수 있고 경과를 예측하기 힘들 때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정수처리 과정 중 염소로 소독해도 살균되지 않을 만큼 생명력이 끈질기다.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1~2년 안에 폐가 망가져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정상적인 기관지 내벽은 섬모(작은 털)와 점액으로 덮여 있어 외부에서 들어온 세균·먼지 등을 잡아내 가래 형태로 밖으로 배출한다. 하지만 감염 등으로 섬모들이 손상돼 점액이 잘 배출되지 않으면 세균이 번식해 만성적인 염증이 생기고 결국 기관지가 영구적으로 늘어난다. 기관지확장증인데 잦은 감기·독감이나 결핵·세균성 폐렴, 면역력 약화, 암모니아 등 독성물질 노출에 따른 염증·협착·괴사로 기관지 기능이 떨어지고 비대해져 반복적인 기침, 짙거나 피가 섞인 가래가 생긴다. 증상 부위가 광범위하거나 COPD를 동반한 경우 호흡곤란·천명음(쌕쌕거림)이 발생할 수 있다. 2017년 기관지확장증으로 건강보험 진료를 받은 사람은 약 7만5,600명, 결핵 환자는 3만6,000여명에 이른다.

非결핵 항산균 150여종···치료 중 다른 균 감염 흔해

유전자 검사 안 하면 결핵균과 구분 안 돼 오진도

항산균은 세포벽에 지질이 많아 일반적인 염색액으로 쉽게 염색되지 않지만 일단 염색되면 알코올·염산 등을 처리해도 쉽게 탈색되지 않는, 산(酸)의 탈색작용에 저항하는 박테리아를 말한다. 결핵·한센병을 일으키는 결핵균과 나병균도 항산균의 일종이다. 둘을 제외한 150여종의 다양한 박테리아가 비결핵 항산균으로 하천·수돗물·토양 등 자연환경에 널리 분포한다. 종(種)이 다양해 어느 정도라도 듣는 항생제가 제각각이고 잘 듣는 항생제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결핵보다 치료가 훨씬 어렵고 치료기간도 1년 반~2년은 걸린다. 그러나 병원성이 낮으며 사람을 통해 전염되지 않아 큰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고 교수는 “비결핵 항산균은 균을 배양해 현미경으로 검사해도 결핵균과 구분이 안 되고 흉부 X-선 검사나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도 결핵과 비슷해 결핵으로 오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둘을 구분하려면 반드시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과거에는 결핵이 아닌 비결핵 항산균 감염증으로 확진되기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근에도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은 채 결핵약부터 쓰다가 듣지 않아 1~5개월 지나서 제대로 진단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고 교수는 최근 비결핵 항산균으로 인한 폐질환 치료가 어려운 중요한 이유를 밝혀냈다. 치료기간 중 이미 감염증을 일으킨 종과 다른 박테리아에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 교수팀이 지난 2002~2013년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 중 균주 배양까지 마친 49명으로부터 배양된 500개 이상의 비결핵 항산균 유전자를 분석했더니 73%(36명)는 유전자 특징이 전혀 다른 종의 균에 감염돼 있었다. 이들은 평균 32개월가량 치료를 받았지만 균은 제거되지 않았다. 49명 중 49%(24명)는 기존 감염균과 완전히 다른 종의 균만 가지고 있었고 24%(12명)는 기존 균과 종이 다른 균이 뒤섞여 있었다. 기존 감염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내성을 보인 환자는 27%(13명)에 그쳤다. 새로운 항생제나 복합 항생제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많다는 얘기다. 치료를 시작한 뒤 새로운 비결핵 항산균에 감염되는 데는 평균 12개월이 걸렸다. 25%는 6개월을 넘기지 않았다.

고 교수는 “선진국에선 환자 가정으로 공급하는 수돗물과 샤워꼭지 등에 대해서도 비결핵 항산균이 있는지 조사하고 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기초 연구도 부족한 만큼 일상 환경에 얼마나 퍼져있는지 정확한 실태조사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흉부학회 학술지 ‘호흡기 및 중환자의학(American Journal of Respiratory and Critical Care Medicine, 인용지수 15.239)’에 발표됐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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