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성' 소설, 국경 넘어 세계로

김유태 2019. 1. 8. 17: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혜영 '홀' '재와 빨강'
나란히 美 서점가에
'엄마를 부탁해'는 미드로
정세랑 '보건교사..'는
넷플릭스 시리즈로
"한국문학 동력은 여성 작가"
소설은 국경 없는 장르다. 세계의 거울인 소설은 언어의 옷을 갈아입으며 세계 곳곳을 비춘다. 소설이 세계를 건넌다는 사실, 그것은 소설적이다.

한국 문학도 국경을 망각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여성' 문인이 쓴 작품이 해외에서 이목을 끈다. 선천적 성(性)으로서의 특정된 '여성 문학'이 아니라 젠더(gender)로서의 '여성성 문학'이다. 7일 한국 문학을 수출하는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 도움을 받아 해외에서 사랑받는 한국 문학의 뜨거운 현주소를 짚었다.

편혜영은 2016년작 '홀'의 영문판인 'The Hole'로 지난해 7월 '셜리 잭슨 상'을 받았다. "미치광이 아니면 천재"로 불리던 소설가 셜리 잭슨을 기리는 이 상의 수상자로 한국 소설이 꼽힌 건 처음이다. 불의의 사고로, 눈꺼풀을 제외하고 불구의 몸이 된 교수 집에 '구멍'이 파이는데, 삶의 한꺼풀을 벗겨낼수록 서늘한 서사가 독자를 흔든다. 편혜영의 2010년작 '재와 빨강'도 'City of Ash and Red'란 제목으로 작년 11월 미국 서점가를 찾았다. "글로벌 무대에서 편혜영 문학의 지평이 확대되는 분수령"이라고 이 대표는 상찬했다.

모친의 피투성이 시신을 무덤덤하게 쳐다보는 첫 장면이 충격적인 정유정의 2016년작 '종의 기원'은 19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The Good Son'으로 제목을 갈아탄 소설은 영미권 스포트라이트가 거세다. 미국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작년 3월 정유정의 이 소설을 소개하는 기사 첫머리에서 "다른 나라의 장르 소설이 그림자에서 빠져나오고 있다(coming out of the shadows)"고 평가했다. 정유정의 2011년작 장편 '7년의 밤'도 12개국 진출이 확정된 상태다. 골방에서 탄생한 선악의 화두가 몸을 바꿔 국경을 넘었다.

조남주가 우리 시대를 소묘한 2016년작 '82년생 김지영'은 진지한 농담처럼 세계 곳곳을 여행 중이다. 100만부가 팔린 소설은, 해외 판권 수출국이 현재 16개국이다. 지난달 초 출간된 일본판은 3쇄를 찍었다. 이탈리아에선 움베르토 에코와 파울루 코엘류의 전속 편집자가 판권을 가져갔고, 프랑스에선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을 출간한 로베르 라퐁의 임프린트 닐에서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된다.

신경숙의 2008년작 '엄마를 부탁해'의 영문판 'Please Look After Mom'은 미국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한국 소설이 '미드'로 갈아타는 건 처음이다. 판권을 사들인 영미권 제작사 '블루 자 픽처스'의 담당 프로듀서는 "엄마를 잃은 죄책감으로 곤경에 처한 한 가족의 경험을 진솔하게 그린 소설"이라고 말했다. 2007년작 '리진' 영문판 'The Court Dancer'도 번역 출간됐고, 2001년작 '바이올렛'도 출간을 앞뒀다. 귀신을 쫓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가 새로 부임한 고교에서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코믹한 방법으로 퇴마의식을 거행하는 판타지가 원작의 골자인 정세랑의 2015년작 '보건교사 안은영'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된다.

2019년 해외에 번역 출간되는 소설도 상당수다. 이지민의 2009년작 '나와 마릴린'은 'Marilyn and Me'란 제목으로 올해 상반기 미국과 영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독일·이탈리아로도 판권 진출이 완료됐다. 서미애의 2010년작 '잘자요 엄마'는 'The Good Girl'로 환복하는데, 8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수출국은 더 늘 전망이다.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 박지리의 '번외'도 주목받는 소설이다.

'여성' 문인들의 해외 문학상 수상 소식도 반갑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스페인판 'La vegetariana'는 지난해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수상하며 눈길을 끌었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라는 이름의 고등학교 재학생들이 수상작을 뽑는데, 훗날의 문학 향유층인 학생들이 직접 심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혜순 시집 '죽음의 자서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Autobiography of Death'는 펜 아메리카 문학상의 해외 시 부문 최종 결선 후보로 올랐고, 1월 중으로 수상 결과가 발표된다.

노태훈 문학평론가는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 평단, 독자의 관심을 지금처럼 차분하고 조용하게 받아들이는 풍경은 낯설기까지 하다"며 "다양한 한국의 여성 작가들이 해외 독자들에게서 주목받는 현상은 최근 한국문학을 이끌어 온 동력이 사실상 여성 작가들에게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 정호승 '연인' 10만부 獨 출간

정호승의 어른동화 '연인'과 김언수의 소설 '설계자들'은 독일에서 열풍을 예고하는 중이다.

8일 KL매니지먼트에 따르면 독일 출간을 앞둔 정호승의 '연인'은 초판 부수가 10만부로 책정됐다. 정호승 시인의 '연인'은 국내에선 1998년 출간되며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혹은 '잠언동화'라는 열풍을 일으킨 책이었다.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이구용 대표는 "해외 출판시장에서 이 정도 규모의 초판으로 발행되는 건 '엄마를 부탁해' 이후 첫 사례"라며 "독일에서 한국문학 붐을 일으킬 기대작"이라고 귀띔했다.

한국문학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에 따르면 'DIE PLOTTER'란 이름으로 표지를 갈아입은 김언수의 2010년작 '설계자들'도 지난 6일 독일 현지에서 범죄스릴러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혈흔을 묻힌 듯한 디자인이 강렬하다. '설계자들'은 독일·호주 출간에 이어 이달 미국에서, 2월 영국에서도 출간을 앞둔 상태다. 현재 판권은 22개국에 팔렸다.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