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취재K] "여자 선수 장악하려면.." 재발방지한다더니..묵인한 그들

변진석 입력 2019.01.10. 16:31

스물두 살 여린 선수가 코치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2006년 4월, 우리은행 프로 여자 농구단의 박명수 감독이 19살 선수를 호텔 방으로 불렀습니다.

취재진과 선수들의 접촉도 막았습니다.

"도대체 선수들은 그런 일을 당하고도 왜 바보같이 가만히 있습니까?" 방송 당시 취재진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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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 여린 선수가 코치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여론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관계 당국은 확실한 재발방지책을 내놓겠다고 다짐합니다. 11년 전 이맘때, KBS가 스포츠계 성폭력 실태를 심층보도 했을 때도 이랬습니다.

"여자 선수를 장악하려면 다 건드리라는 얘기도 있었어"


"선수는 자기가 부리는 종이야. 육체적인 종도 될 수 있고 선수장악은 성관계가 주 방법이고...여자니까 (성관계를) 가져야 날 따라오고...." (스포츠 지도자1)

"사실은 지도자들 사이에 여자(선수를) 장악하려면 다 건드리라는 얘기도 있었어." (스포츠 지도자2)

당시 스포츠 지도자들이 취재진에 털어놓은 얘기입니다. 극단적인 권위주의와 남성 위주의 문화가 기묘하게 결합한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민낯입니다.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 혹시 일부 지도자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그렇게 보기엔 그 '일부'가 너무 많습니다.

"피해자가 많았어요. 진짜 너무나 많았어요"


"저녁에 샤워를 하고 (샤워실에서) 나가려는데 선생님이 술 먹고 들어오신 거예요. 음주운전하면 안되니까 숙소에 주무시게 하고 나가려다가 나쁜 일을, 정말 나쁜 일을 당한 거예요." (전직 배구선수 김모 씨)

"몸을 긁고 있는 거예요. 살이 막 파헤쳐지잖아요. 피가 나오는데도 계속. 왜 그러냐 하면 몸에 벌레가 있다는 거예요. 옆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한지. 돌아버려요." (김모 씨 남편)

전직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였던 김모 씨. 다른 선수들은 모두 외박을 보내고 자신만 외박이 금지된 날, 감독에게 몹쓸 짓을 당했습니다. 끙끙 앓다 자신의 얘기를 꺼냈습니다. '나도 당했다'는 고백이 잇따랐습니다.

선수들은 단체로 숙소를 이탈하거나 진술서를 쓰며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은폐됐습니다. 감독은 조용히 경질됐지만 어떠한 법적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새로 온 감독도 성적인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김 씨는 운동을 그만뒀습니다.

배구코트 밖의 삶도 망가졌습니다. 한 번의 이혼과 두 번의 결혼. 정신과 치료와 자살기도가 이어졌습니다. 고통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오늘 밤에 와라. 너의 벗은 몸을 보고 싶다"


"감독이 그렇게 시킨대요. 호텔 방으로 불러서 바로 벗으라고. 선수 전화에 박명수 감독 번호로 문자 찍혔는데 '오늘 밤에 와라. 너의 벗은 몸을 보고 싶다'. (전직 농구선수 A씨)

"(구단 모기업에서는) 절대 얘기하지 말고, 그런 얘기 입 밖으로 나가는 일 있으면 가차 없이 잘라 버리겠다 그런 식으로 말하죠. 협박이에요." (전직 농구선수 B씨)

2006년 4월, 우리은행 프로 여자 농구단의 박명수 감독이 19살 선수를 호텔 방으로 불렀습니다. 알몸으로 기다리던 박 감독은 20여 분간 성추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발생 1년여 만에 추가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모기업인 우리은행은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되려 입단속에 나섰습니다. 취재진과 선수들의 접촉도 막았습니다. 기업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선수인권 대신 사건 은폐를 선택했습니다.

"만취 상태 우발 범죄", 집행유예 그쳐

이후 재판에서 박명수 감독은 집행유예를 받는 데 그쳤습니다. 법원은 만취 상태에서 우발적인 범행을 했고, 농구발전과 국위선양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나마 스포츠 성폭력 문제가 재판까지 가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입니다. 재판결과 역시 사회통념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한국의 스포츠 문화는 실미도 문화"


"솔직히 박명수 감독이 당한건지 선수가 당한건지 아직도 의심스러워요" (한국여자농구연맹 관계자)

"도대체 선수들은 그런 일을 당하고도 왜 바보같이 가만히 있습니까?" 방송 당시 취재진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유소년 시절부터 합숙소에 갇힌 채 운동만 했습니다. 감독은 내 선수생명을 쥐고 있습니다. 스포츠계의 인식도, 법원도 선수의 편이 아닙니다.

한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의 스포츠 문화는 실미도 문화"라고 설명했습니다. 절대 충성을 신조로 특수부대를 양성하던 실미도. 여러분이라면 선수생명을 걸고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시겠습니까?

'조사·퇴출·제명'의 무한 변주


공교롭게도 당시 방송이 나간 날은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탄 날입니다. 여론의 관심이 온통 숭례문에 쏠렸지만, 스포츠 성폭력 보도가 던진 충격도 만만찮았습니다.

학원 스포츠의 주무부서인 교육부는 문제를 일으킨 감독을 영구 퇴출하고 합숙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실태조사에 나섰습니다. 대한체육회는 보도에서 거론된 성폭력 관련 지도자를 영구제명했습니다.

그래도 심석희 선수는 피해자가 됐습니다.

성폭력, 잘못된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낸 범죄


"이 사건은 그동안 정부와 체육계가 마련한 모든 제도와 대책들이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심석희 선수가 피해를 고백하자 또다시 '대책'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선수촌 합숙훈련 개선과 국가대표 관리체계를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성폭력 전담팀을 구성하겠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을 포함해 지난 10여 년 간 나온 대책들은 모두 거기서 거기입니다. 제도가 없어서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반인권적이고 승리 지향적인 한국스포츠. 이제는 그 시스템뿐 아니라 문화까지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에 스포츠 한국의 미래가 걸려있습니다"

11년 전 제작진이 던진 말을 다시 전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는데.....

변진석 기자 (lam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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