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재범 성폭행 의혹, 이렇게 대책이 빨리 나오다니

최영조 입력 2019.01.11. 15:15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주장] 체육계 성폭력, 문제는 사람인가 구조인가

[오마이뉴스 최영조 기자]

사람이 일으킨 사건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시각에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정책오류를 줄일 수 있다. 그 두 가지 시각은 '사람'과 '구조'다. 문제의 원인이 사람에게 있는지 아니면 구조에 있는지를 따져 묻는 것이다. 사람이 문제라면 처벌에 방점이 찍히고, 구조가 문제라면 환경변화와 법·제도의 보완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문제일 경우는 원인 제공자 개인에게 책임을 묻게 되지만, 구조가 문제일 경우는 자연스레 정부에 비난의 화살이 향하게 된다. 물론, 대부분 사건은 사람과 구조 두 요인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사건 당사자 처벌과 제도적 변화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를 놀라게 한 체육계의 신체적 폭행, 성폭력 사건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때도 이 기본적 접근법은 유용하다. 지난 8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몇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한 사실이 알려졌다. 조 전 코치는 지난해 1월 16일 훈련 중 심석희 선수를 폭행해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는 등 2011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4명의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상태다. 
 
성폭행 의혹을 받는 조재범 전 코치 개인의 특성 등 사람에 대한 논의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니 생략한다. 사건의 구성 요소 중 사람을 다루는 처벌은 재판을 통해 진행될 것이니 이제 남은 것은 구조다. 법적 처벌은 비교적 엄격한 사법 체계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결론이 난 후에 갈등과 논란이 상대적으로 적지만(없는 게 아니라 적다), 구조적 접근은 그 수준과 범위부터 논란의 대상이 된다. 즉각적이고, 강력한 대책이 나오더라도 적절성과 지금까지 정부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한 책임 공방이 지속된다.
 
구조를 보지 못한 대책들
 
▲ 문체부 '심석희 사건 브리핑…조재범 성폭행 파문 후속 대책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빙상 조재범 전 코치 심석희 성폭행 파문 관련 브리핑에서 후속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의혹이 알려진 후 나온 대책을 살펴보자.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긴급 브리핑을 하고, 이 자리에서 노태강 문체부 제2차관은 체육계 성폭행뿐 아니라 각종 비위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 강화 ▲성폭력 가해자 체육관련 단체 재취업 및 관여 금지 ▲체육계 비위 근절을 위한 민간주도 특별조사 실시 ▲체육단체 성폭력 전담팀 구성 및 피해자 보호제도 강화 ▲체육단체 성폭력 전담팀 구성 및 피해자 보호제도 강화가 핵심이다.
 
한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법 개정을 통해 체육계 폭행·성폭행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10일 발의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스포츠 지도자가 되려면 국가가 정한 폭행 및 성폭행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며 ▲선수 대상 폭행·성폭행 죄에 대한 형을 받은 지도자는 영구히 그 자격을 박탈하고 ▲형 확정 이전에도 선수 보호를 위해 그 자격을 무기한 정지시킬 수 있으며 ▲기존 대한체육회에 소속되어 징계 심의를 담당하던 위원회를 '스포츠윤리센터' 별도 기관으로 독립시켜 공정하고 제대로 된 징계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8일에 이 사건이 알려지고, 이렇게 빨리 대책이 나오다니.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허무함이 앞선다. 지금까지 뭐 하고 있다가 이제야 방지 대책과 강화된 처벌 규정이 나온단 말인가. 이전부터 체육계의 문제를 알고, 해결을 회피하고 있었다는 의심은 지나친 것일까.
 
문제의 발단이 된 체육계의 구조
 
▲ 체육계 성폭행·폭행 OUT!, 발언하는 안민석 의원  자유한국당 염동열(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민주평화당 최경환,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체육계 성폭행·폭행 OUT! '운동선수 보호법(일명 심석희법)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문제의 발단이 된 체육계의 구조에 집중해보자. 심석희 선수가 겪은 안타까운 사건의 원인이 된 한국 체육계의 문제는 잘못된 교육 문화와 성과지상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잘못된 교육 문화는 체육 교육 시스템이 오직 운동선수를 양성하기 위해 운영되는 현실을 말한다. 다른 나라를 보면 학교 공부와 또래 집단과의 생활을 중심에 두고, 일종의 클럽활동으로 운동을 즐기고, 이 과정에서 전문 선수로서 꿈을 키우고, 실력을 쌓는 방식이 보통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찍이 초·중등학교부터 운동으로 진로를 정하고, 오로지 프로 선수,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건 질주를 한다. 운동 선수가 아니면 다른 직업은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나의 길에 매몰된다. 프로 선수와 국가대표가 몇 명이나 되는지 생각해보면 이런 현실은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다.
 
성과지상주의로 인해 운동 선수는 무조건 국가대표가 될 때, 국가대표가 된 후에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 인정받는다. 이렇다 보니 많은 선수와 부모는 국가대표와 금메달에 목을 매게 되고, 이를 위해서 담당 코치나 감독 등 선수의 선발과 교육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지도자들에게 철저한 '을'이 된다. 더구나 코치의 개인적 영향력이 큰 쇼트트랙과 같은 종목은 어린 시절부터 코치와 선수가 엄격한 상하관계에 놓인다고 한다. 불합리한 대우와 폭언, 폭행에서 선수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다른 선수의 고통과 아픔을 알게 되더라도 밝힐 수 없는 '침묵의 카르텔'은 이런 현실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렇게 체육계 문제의 구조적 요인을 짚어보니, 문체부와 국회의원들이 내놓은 대책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 포함된 스포츠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폭행 및 성폭행 예방교육을 제외하면 전부 처벌과 사후 보호 조치에만 집중돼있다. 사건의 구조와 관련된 개선 방안은 찾기 어렵다. 강력한 처벌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지만, 체육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사건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이런 구조적 요인은 심석희 선수의 변호를 맡고 있는 임상혁 변호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법률적으로 관리감독의 문제가 있다. 국가대표선수는 국가의 대표이고, 국가가 필요해서 국제대회에 내보낸다. 좋은 성적을 요구하며 통제된 시스템에 선수를 넣어두고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난 모른다고 빠진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부터 나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근절될 수 없다.
- 한겨레, 2019.01.09. 

이번에 알려진 체육계의 문제를 '사람'에만 집중하고, 처벌만을 강조해서는 해결이 요원할 것이다. 사건을 만든 체육계의 '구조'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그 시작이 될 심석희 선수의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