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상사보다 무서운 너..육아휴직 아빠는 오늘도 '사랑과 전쟁' [키우며 자라는 아빠]

이준헌 기자 입력 2019.01.11. 17:58 수정 2019.01.2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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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육아휴직을 하면서 저의 주된 세계는 집이 됐어요.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이 세계에는 이현이와 저만 존재하죠. 만약 아기가 아프면 내가 아는 이 세상 유일한 사람이 아픈 거예요. 그때가 제일 안타깝고 힘들죠. 말도 못하는 애가 얼마나 답답할지 생각하면 그간 살면서 힘들었던 건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져요.”

육아휴직 2개월째인 신준희씨(34)는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나자마자 이어서 휴직에 들어갔다. 감기에 걸린 아이를 돌보다 신씨마저 감기에 걸린 탓에 취재일정은 늦춰졌다. 아빠와 아이 모두 감기에서 회복할 무렵 서울 종로구 구기동 집에서 신씨와 15개월된 딸 ‘이현’이를 만났다. 아이는 자고 있었고 아빠는 씻지도 못한 채 부스스한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신씨의 하루는 이현으로 시작해 이현으로 끝났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이현이와 함께 하다 보면 정작 저를 돌볼 시간이 없어요. 딱히 나갈 일도 없으니 ‘뭐 아무렴 어때!’란 생각으로 삽니다.” 지난 밤 아이의 코막힘으로 잠을 설쳤다는 그는 “아이가 깨기 전에 잠을 더 자도 되겠느냐”고 묻고는 아이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신준희씨는 이현이 옆에 누은 약 1시간동안 같은 자세로 잠을 잤다. 뒤척임 없는 잠자리는 육아하는 부모의 생존 특기다.
콜록거리던 이현이를 다시 재운 신준희씨가 슬로우 모션으로 침대를 빠져나오고 있다. 준희씨의 얼굴에서 아빠의 아침이 보인다.

1시간 쯤 뒤 잠에서 깬 아이의 칭얼거림이 들려왔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신씨가 딸의 손을 잡고 거실로 나왔다. “SNS에 올라오는 마냥 행복한 모습의 육아관련 사진들을 볼 때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라는 자책이 들곤해요. 하지만 이제는 가식적이지만 그 모습들이라도 올려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헝클어진 머리를 만지며 신씨가 말했다.

육아휴직 첫 달보다 아주 능숙해졌다는 신준희 씨와 이미 모든 순서를 알고 있다는 듯한 이현이의 기저귀 가는 호흡은 완벽했다.

신씨에게 육아휴직을 한다는 것은 동시에 세 식구의 가사를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신씨는 이현이와의 일상을 얘기했다. “아침에 아내와 저 둘 중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침 식사를 만들어요. 아내가 출근하면 이현이랑 놀아주다가 아이가 먹을 점심밥을 만들고요. 아이가 낮잠을 자기 시작하면 밀린 설거지와 빨래를 하죠. 푹 자 주면 잠시라도 쉴 틈이 있는데 만약 일찍 깨거나, 예정에 없던 방문자가 벨이라도 누르는 날이면 모든 일정이 뒤죽박죽 돼버려요.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놓았다가 널지도 못한 채 아이를 안아야 하고 기저귀를 갈기도 합니다. 틈이 나서 샤워하려고 몸에 비누칠을 하다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빛의 속도로 물을 끼얹고 샤워실을 나가게 돼요. 밥 생각은 대부분 안나요. 배가 고프다가도 애가 남긴 간이 안 된 음식을 조금씩 먹다 보면 식욕이 확 사라지거든요. 그럴 때면 가끔 ‘내가 무얼 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어요.” 이날 신씨는 냉동 핫도그 하나로 식사를 해결했다.

“육아는 전쟁이 아닙니다. 삶이죠. 전쟁은 적이랑 하는 것이고요. 내가 또 다른 나를 키우는 겁니다. 하지만 쉬운 게 하나 없어요. 이현이는 달걀을 좋아하는데요. 식사 때마다 실패한 적 없는 메뉴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달걀을 먹지 않는 거예요. 멘붕이 왔죠. 아무것도 먹기 싫어할 때 먹는 게 달걀이었는데 이걸 안 먹으면 그럼 뭘 먹여야 하나… 이런 것들부터 하나하나 경험하고 버티고 설득하고 타협해요. 그렇게 아이가 울 때 같이 울어버리고 싶은 감정의 산을 하나하나 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걸 느껴요. 이현이도 아빠랑 엄마가 육아가 처음인 걸 알아주면 참 좋을 텐데….”

신준희씨가 이현이의 점심을 만들고 있다. 요즘 생선에 빠져있는 이현이의 이 날 점심메뉴는 갈치구이였다.
달걀밥을 다 안먹은 이현이가 아빠가 가방에 간식 넣는 것을 봐버렸다. 간식을 달라며 이현이가 운다. 이틀간 이현이를 봤지만 이때가 내가 본 이현이의 첫 울음이었다. 순둥이 아기도 간식욕심은 있다.
이현이의 빈 숟가락이 신준희씨의 입을 향하고 있다. 이날 신준희씨는 빈 숫갈 한입과 냉동 핫도그로 점심을 대신했다.
이틀에 한 번 정도 운다는 순둥이 이현이도 약을 먹을 때 만큼은 싫어하는 티를 낸다. 신준희 씨가 아기의 눈을 가리고 약을 먹여서인지 이현이는 사진을 찍는 기자가 약을 먹인 줄 아는듯했다. 다시 친해지는데 삼십 분 정도가 걸렸다.

지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지만 신씨의 얼굴엔 미소와 웃음이 계속 머물렀다. 이현이는 아빠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저녁 외출이 있던 날, 이현이는 샤워실 문 앞에서 씻고 있는 아빠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신씨는 화장실을 갈 때도 씻을 때도 문을 닫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빠 껌딱지인 이현이는 아빠의 모든것에 함께하고 싶은 듯 하다.

딸 아이가 잠시 책을 보는 사이 겨우 소파에 몸을 기댄 신씨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참 감기로 고생하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힘들어하던 녀석이 씨익하고 웃어줄 때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저도 이렇게 부모가 되는 건가 봐요.” 대화를 이어가는 중에도 아빠의 시선은 줄기차게 아이를 향하고 있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