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51층짜리 '태양광발전소' 있다
[오마이뉴스 글:임지윤, 글:윤종훈]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 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기자말
국회의사당이 있는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의도역에서 여의도공원 쪽으로 가다 보면 왼편에 나타나는 지하 6층, 지상 51층의 전국경제인연합회(FKI) 건물이 '알고 보면' 발전소다.
멀리서 보면 그냥 유리로 된 고층 건물인데, 가까이 가서 보면 외벽의 생김새가 범상치 않다. 매끈한 일자형이 아니라 지그재그다. 하늘을 향해 30도로 기울어진 면마다 '건물일체형 태양광설비(BIPV)'가 내장돼 있다. 최대한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이 태양광 외벽에서 '연료비 공짜'인 태양광 전기가 자동으로 생산된다.
‘51층짜리 태양광발전소’인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
ⓒ 쌍용건설, 에스에너지 |
전경련에 따르면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해 7월 1일에서 31일까지 외벽과 옥상 등의 태양광발전설비에서 만든 전기는 하루 평균 1893.54킬로와트시(kWh)였다.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의 하루 평균 1318kWh보다 약 43% 많은 양이다. 더울수록 냉방 전기료를 걱정해야 하는 일반 건물과 사정이 반대였다.
지난 2013년 말 준공된 이 건물에 설치된 태양광패널 면적은 5500제곱미터(㎡)다. 728킬로와트(kW) 태양광모듈 3500여개가 생산하는 전기는 바로 사용 가능하고, 건물 전체 전기사용량의 4~7%를 충당한다. 조명 전력으로만 따지면 전체의 70% 가량을 자체 조달하는 셈이다. 이는 270여 가구가 연중 쓸 수 있는 전기와 맞먹는다. 나무 8만7000그루를 심은 것과 같은 탄소배출 감축효과가 있다.
이 건물은 또 세면기에서 쓴 물을 정화해 화장실 세정용수로 쓰고, 150미터(m) 깊이의 지열을 냉난방에 활용하는 등 다양한 자원절약과 에너지효율화 장치를 가동하고 있다. 연 면적 약 17만㎡(5만1028평)에 4000여억 원의 공사비를 들인 전경련회관은 국토교통부의 친환경 최우수등급 인증을 받았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도 에너지효율 1등급 인증을 받았다.
에너지효율화 건물 전국에 속속 건설
기후변화 대응과 비용절감을 위해 에너지소비를 최소화하고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건물들이 전국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지난 2017년 6월 인천시 남구 학익동 736일대에 들어선 인천 업사이클 에코센터도 그중 하나다. 사업비 50억 원을 들여 지은 지상 3층 건물은 냉방, 난방, 급탕, 조명, 환기에 쓰이는 모든 에너지를 태양광과 지열, 소형 풍력 등 자체 생산한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 그래서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제로에너지형 건물'로 꼽힌다.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제로에너지형 건물인 인천 업사이클 에코센터. |
ⓒ 윤종훈, 인천 업사이클 에코센터 |
기업이 나서면 엄청난 변화 가능
정부는 공공부문이 모범을 보이면서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에너지효율화에 큰 도약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18일 '2019년 업무보고'를 통해 "수요관리가 에너지정책의 핵심이 될 수 있도록 국가 에너지효율 혁신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개별 제품 단위의 에너지효율 향상을 넘어 제로에너지건물, 스마트에너지산업단지, 스마트에너지시티 등 시스템 단위의 에너지소비구조 혁신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산자부는 오는 2020년 공공부문(연면적 3000㎡ 이상)을 시작으로 2025년 민간부문(5000㎡ 이상), 2030년 모든 건축물에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을 의무화하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녹색건축물조성지원법 등에 따라 건축주가 초기사업비 부담 없이 건축물의 에너지성능 개선을 추진할 수 있도록 공사비 금융이자 등을 지원한다. 비주거 건물 1동당 50억원, 공동주택 1세대당 2천만 원, 단독주택 1호당 5천만 원이 지원한도다.
▲ 에너지효율화를 위해서는 시민참여와 교육도 중요하다. 서울 하계동 노원에너지제로주택 다목적실에서 지난해 10월 20일 열린 ‘우리 동네 에너지포럼’ 행사에서 한 어린이가 어머니와 함께 에너지절약을 내용으로 큐브를 만들고 있다. |
ⓒ 임지윤 |
전력판매구조 개편, 산업용 전력요금 현실화 필요
▲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 |
ⓒ 김해동 |
김 교수는 산업용과 상업용 전력요금은 발전소에서 멀수록 비싼 요금을 물리는 '거리병산제'와 사용량이 몰리는 일정시간대에 가중치를 적용하는 '피크요금제'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에서 쓰는 경우 송전과정에서 손실되는 부분을 감안해 더 비싼 요금을 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주상복합 등 유리외벽으로 된 고층건물들은 '그린하우스 효과' 때문에 일반 건물의 몇 배나 되는 전기를 쓴다"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문제 등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김현권(55·비례대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에너지소비를 효율화하면 많은 신산업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택설비의 효율 개선, 그린주택 분야 등에서 수요가 창출되고 기업의 기술력 향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은 값싼 전기에 기반한 산업들이 많은데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서 에너지 효율화에 나서도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에너지효율화가 곧 경쟁력인 시대가 온다"고 덧붙였다.
환경운동연합 배여진(29) 활동가는 "호텔, 상가 등 대형건물의 에너지효율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수사업장 인증 제도가 있지만 신청을 통해 적용하기 때문에 참여도가 낮다"며 "에너지다소비업체는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인과 가정, 생활 속 작은 실천도 중요
▲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12일 대구 중구 동성로 야외무대에서 ‘월화수목금토일 착한에너지’ 캠페인을 하고 있다. |
ⓒ 장성환 |
환경운동연합은 보일러를 고를 때 KS(한국공업규격)표시가 있고 '에너지소비효율등급'이 1등급인 제품을 고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가정용 가스보일러는 전체 도시가스 사용량의 50~60%를 차지하는 대표적 에너지다소비기기인데, 1등급 제품은 3등급보다 12%가량 에너지비용을 아낄 수 있다.
서울 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 김소영(48) 대표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에너지를 필요한 만큼 쓰고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기후변화의 위협이 심각한 지금은) 필요한 만큼 다 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가 새는 곳은 어디인가, 환경개선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가 등을 따져서 전력소비량을 줄이는 계획을 각 가정이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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