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신유용 "고1부터 유도 코치가 성폭행..실명으로 고발합니다"

입력 2019.01.14. 01:36 수정 2019.01.14.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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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유망주였던 신유용씨의 5년간의 고통 '미투'
"코치가 숙소에서 성폭행 직후 말하면 유도계에서 끝이라 말해"
아내에게 들킨 코치가 전화해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해라" 요구
진정 어린 사과도 없이 회유로 일관해 지난해 3월 경찰에 고소
"얼마나 많은 17살 유용이가 있을지 참담한 심정으로 고소장 낸다"
상황 알던 지인들의 증언 거절에 수사는 지지부진
지난 13일 <한겨레>와 만나 유도선수 시절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힌 신유용씨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의 성폭력 사건이 드러난 뒤인 9일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기자회견 관련 기사를 보여주고 있다. 신씨는 “피해자가 엄청난 용기를 내지 않으면 내부의 문제를 알 수 없는 체육계의 폐쇄적 구조 때문”이라는 정부의 답변에 밑줄을 그은 사진을 내밀었다. 지금껏 피해자의 용기 없이 문제를 알 수 없었다는 이 답변에 대해 신씨는 “무책임한 말”이라고 지적했다. 이정규 기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는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가해를 고발하면서 “심하게 폭행을 당했는데도 그 이후에 선수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여준 게 큰 힘이 됐다”는 팬의 편지를 받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이번에는 심석희 선수의 고발을 보고 용기를 낸 또 다른 성폭행 피해자가 있다. <한겨레>는 13일 고등학생 시절인 2011년 유도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신유용(24)씨의 폭로를 신씨와의 3시간 대면 인터뷰, 사전 서면 인터뷰, 신씨가 제출한 고소장 내용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신씨는 자신의 실명을 공개해달라고 했다. 그는 “‘신유용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고, 제가 이렇게 용기를 내서 저보다 어린 선수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유용은 5살 때 유도를 시작했다. “자기 몸은 자기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매일 유도를 했고, 곧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때 전라북도 대회에서 입상하는 등 재능을 보이자 고창 영선중에서 그를 스카우트했다. 그 학교에서 ㄱ 코치를 만났다.

■ “맞는 게 너무 싫었다”
ㄱ 코치는 영선고 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힐 정도로 실력이 좋았던 신유용에게 유난히 혹독했다. 운동이 조금만 미진하면 노란색 수도관 파이프로 신유용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때렸다. 같은 운동부 학생들은 그 파이프를 ‘단무지’라고 불렀다. “학교 숙소에서 외박을 받아 집에 가면 엄마와 목욕탕을 갈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ㄱ 코치는 48㎏급 선수였던 신유용의 몸무게에 민감했다. 외박 다녀온 뒤 몸무게를 맞추지 못했다고 유도 기술인 굳히기를 써서 신유용이 거품을 물고 기절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신유용은 “맞는 게 너무 싫어서 열심히 했어요”라고 말했다.

ㄱ 코치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심지어 ㄱ 코치가 시합에서 일부러 지라는 주문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떠줘라”는 메쳐져서 붕 떠주라는 뜻으로, 고의로 져주라는 유도 은어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선배의 성적을 위해 후배들은 종종 져줘야 했다. 신유용은 2~3차례 ‘떠줘라’라는 말에 따랐다. “그 사람이 무서웠어요. 항상 운동 시간이 두렵고 코치가 뭘 시키면 무조건 해야 했어요.”

■ 숙소 청소하라고 부른 줄 알았는데…
신유용의 고통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고1이던 2011년, 신유용은 영선고 유도부에서 ‘따까리’라고 불리는 코치의 숙소 청소를 전담했다. 그해 여름, ㄱ 코치는 숙소로 신유용을 불렀다. 신유용은 그날도 ‘따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ㄱ 코치는 신유용에게 매트리스로 올라오라고 한 뒤 성폭행을 했다고 한다. 신유용은 성폭행을 당한 직후 ㄱ 코치한테 “너 막 메달을 따기 시작했는데 이거 누군가한테 말하면 너랑 나는 유도계에서 끝이다. 우리 한국 떠야 해. 한강 가야 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성폭행은 그날로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유용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한테 말하면 그 사람 말대로 ‘유도계를 떠나야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한테는 유도밖에 없었어요. ‘나만 조용히 하면 된다’ 그렇게 마음먹었어요.” 신유용이 침묵하자 ㄱ 코치가 불러내는 횟수는 더 잦아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인 2015년까지 이런 일은 20차례 정도 반복됐다고 한다.

2011년 12월 제주도에서 열린 탐라기 유도 대회에서 신유용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3위에 그쳤다. ㄱ 코치는 “생리했냐?”고 물었다. “아직 안 했다”고 하자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임신 테스트기 2개를 주면서 해보라고 했다. 2개 모두 ‘비임신’이 떴다. ㄱ 코치는 그런데도 다음달인 2012년 1월 고창에 있는 한 산부인과로 데려가 초음파 검사를 하도록 했다.

신씨가 2012년 전국체전 52㎏ 이하 고등부 대회에서 딴 동메달(왼쪽)과 유도선수로 활동하던 오빠가 선수 시절 딴 금메달이 나란히 놓여 있다. 신유용씨 제공

■ 회유에 고소했지만…입 다문 증인들
2015년 신유용이 서울로 오면서부터는 ㄱ 코치가 성관계를 요구하는 문자를 보내도 답장을 하지 않아도 됐다. 더 이상 ㄱ 코치가 집 앞으로 찾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끔 자신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트리지 말라고 보낸 문자는 무시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ㄱ 코치가 갑자기 다시 연락을 해왔다. 유도계에 있었던 ㄱ 코치의 아내가 지인에게 신유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생님이 부탁할게. 가진 거 지금 50만원이 있는데 이거라도 보내줄게. 받고 마음 풀고 그렇게 해주면 안 되겠니. (아내에게는) 그냥 무조건 아니라고 해라. 아니라고 하기만 하면 돼.” ㄱ 코치가 에스엔에스(SNS) 메신저로 보낸 글이다. 그는 이어 “내 죄를 덮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제자인 미성년자인 너를 선생님이 좋아하고 관계를 가진 그 자체에 너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신유용은 “기억이 상당히 왜곡되신 것 같은데, 저는 전혀 그런 적 없고요. 제가 억지로 당해서 무섭고 아파서 울었던 건 기억하고 계시네요?”라고 답했다.

신유용은 ㄱ 코치가 진정 어린 사과 대신 돈으로 회유하는 모습을 보고 고소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난해 3월13일 서울 방배경찰서에 낸 고소장에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열일곱살의 유용이가 있을지, 오늘도 얼마나 속을 끓이고 가해자가 아닌 본인을 원망하며 잠을 설칠 피해자들이 있을지 참담한 심정으로 고소장을 제출합니다”라고 썼다. 그 고소장을 쓸 때, ㄱ 코치는 다시 500만원을 주면서 사죄하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신유용은 경찰에 여러 증거를 제출했다. ㄱ 코치와 주고받은 메신저 내용과 통화 녹취, 산부인과 진료 내용까지 냈다. ㄱ 코치는 경찰 조사에서 신유용을 산부인과에 데려간 기억이 없다고 말했으나, 자신이 고창의 산부인과에서 쓴 카드 명세가 나오자 “코치들은 종종 아픈 학생을 병원에 데리고 간다”고 진술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신유용의 피해를 증언해줄 증인을 요구했다. 신유용은 자신이 피해 사실을 알렸던 유도부 동료 1명과 여성 코치 1명에게 증언을 부탁했다. 하지만 여성 코치는 유도계와의 친분을 거론하며 거절했고, 증언을 해주겠다고 했던 동료는 경찰 출석 하루 전날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피해 당시 영선고 유도 감독에게도 도와달라고 문자를 보내봤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만둔 운동선수의 피해 사실을 입증해주자고 자기 유도 인생 다 무너뜨릴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무래도 유도계가 많이 폐쇄적이다 보니까…. 두려웠겠죠, 그들도.” 증언이 확보되지 않으면서 수사는 지지부진해졌다. 사건은 경찰에서 전주지검으로 넘어갔다. 전주지검은 사건 수사를 서울중앙지검에 촉탁했다. 하지만 수사 촉탁 뒤 두달이 넘도록 수사에 별 진척은 없었다.

13일 <한겨레>와 만난 신유용씨는 임솔아 시인의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지니고 다녔다. 그는 책 표지 날개에 적힌 글이 자신의 심정과 같다고 말했다. 표지 날개에는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 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라고 적혀있었다. 이정규 기자

■ 코치는 “연인 관계” 주장
ㄱ 코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성폭행한 적이 없으며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ㄱ 코치는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다시 사귀고 그런 관계였다. (나중에도) 명절에 전화도 하고 돌잔치도 놀러 오고 그랬다. (성폭행이었으면) 이게 가능하겠냐”고 말했다. 신유용에게 돈을 주려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아내가 신유용이랑 사귀었냐고 물어서 아내가 알면 안 되니까 (신유용에게) 50만원을 받고 아니라고 하라고 말한 것뿐”이라고 했다. 500만원을 추가로 전달하려고 한 것에 대해선 “(성폭행으로) 고소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변호사를 찾아갔더니 (화를) 풀어주고 고소를 안 하게 하는 게 제일 좋다고 했다. 그래서 500만원 주고 마무리하려 한 것이지 성폭행을 무마하려고 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신유용은 “2013년 유도를 그만둔 이후 먼저 연락을 한 적은 없고, 돌잔치도 유도부 카카오톡방에서 단체로 가는 사람을 모아서 빠지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아 억지로 간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과 연애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나 그런 내용의 메시지가 있다면 내 잘못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게 단연코 절대 없어요, 절대.” 신유용은 잘라 말했다. “내가 피해자인데, 자기들도 내가 피해자인 거 뻔히 알면서…”라고 말하는 그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 심석희 선수에게 고맙다
신유용은 심석희 선수에게 고맙다고 했다. “저는 운동을 그만두고 ‘미투’를 한 거잖아요. 심석희 선수는 현역 최정상급의 스케이트 선수잖아요. 그런데도 용기를 내줘서 대단히 감사해요. 심 선수도 어릴 때부터 맞았다고 했잖아요. 운동선수들이 다 그래서 말을 못 해왔던 거예요.” 신유용은 2011년 이후 “단 하루도 고통 없이 시간이 흐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신유용에게 유도는 전부였다. “잘했으니까, 좋아했고, 내 전부이기도 했고요.” 신유용은 그런 유도와 10대 후반의 삶을 모두 잃었다. 이제 그가 바라는 건 ㄱ 코치의 온전한 처벌뿐이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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