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싫으면 밤에 다니지 마".. '강간의 왕국' 오명 쓴 나라

이재은 기자 2019. 1. 14.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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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인도 그리고 성차별 ①] 13분30초에 한 번 꼴로 성폭행 발생.. 뿌리 깊은 여성혐오가 문제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인도 아그라 타지마할 /사진=위키커먼스

2011년 겨울, 여자인 친구와 둘이서 두 달 동안 인도-네팔 여행을 갔었다. 당시 인도 특유의 자유로운 느낌과,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 아그라의 타지마할, 히말라야 등에 빠져있었기에 '여자끼리 인도 여행을 가면 위험하다'는 말에도 어떻게든 여행을 강행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대신, 최대한 준비해갔다. 잡상인 등이 다가올 때 '필요없다'는 말을 힌디어로 하면 '현지에서 좀 살았나' 싶어 바로 자리를 뜬다기에 'नहीं'(아니오·'나히'로 발음)를 계속 되뇌었고, 오후 5시 이후는 절대 밖에 나가지 말자고 친구와 굳게 약속했다.

2014년 인도 콜카타 서더스트릿 /사진=위키커먼스

북인도 콜카타(캘커타)로 처음 인도에 발을 디딘 뒤 우리의 약속은 굳건했다. 밤 늦게 나가지 않으니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 인도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상한 일은 꽤나 자주 벌어졌다. 예컨대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길을 지나가면 인도 남성들이 은근슬쩍 내 몸을 만진다든가, 몰래 핸드폰 카메라로 나를 찍기에 항의하면 그런 바 없는 척 한다든가 등의 불쾌한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내 반응을 이끌어내려고 빤히 쳐다보며 쫓아온다거나, 끈질기게 캣콜링(cat-calling·여성에게 휘파람을 불거나 추파를 던지는 등의 행위)을 하는 일은 매일 있었다.

반응을 하지 않으면 따라오며 반응을 유도하고, 화를 내면 좋아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사람으로 보지 않고 마치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흰 피부를 선호하는 인도인들이 우리에게 호기심을 갖는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키가 동아시아인 보다 큰, 그래서 보다 위협적으로 인지되는 서양인 여성들에겐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 점엔 부아가 치솟았다.

콜카타 칼리가트(칼리사원) /사진=위키커먼스

대부분의 사건은 여행이 끝난 뒤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사건은 딱히 별 일이 없었음에도 뇌리에 강하게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바로 콜카타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의 기억이다.

인도를 가기 전 읽은 가이드 북엔 '여성들은 대중 교통, 특히 지하철과 버스는 절대 타지말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상식 밖의 구절이었다. 보통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는 안전을 위해 다수의 목격자가 있어 특별한 일이 벌어지기 어려운 대중교통을 탈 것을 권유받는데, 왜 그럴까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을 탈 적절한 기회가 왔다. 때마침 호텔 바로 앞에 지하철 역이 있었고, 칼리 사원(Kalighat Temple·'죽음과 파괴의 여신' 칼리를 모시는 사원으로 콜카타에서 가장 오래된 숭배지)을 가기에 가장 편한 방법이었기에 지하철을 타보기로 했다.

타자마자 친구와 나는 바로 후회했다. 북적이는 지하철 칸 속 수십명이 넘는 남성이 우리를 향해 원을 그리며 몸을 돌렸고, 강렬하게 눈빛을 쏘아댔기 때문이다. 자동적으로 '자칫 이들이 한 마음을 먹고 우릴 다 같이 성폭행하려한다면 도무지 구해질 방도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몇 정거장 뿐이었기에 위험한 일은 없었지만, 이때의 두려운 마음은 지속됐다. 이후 뉴델리, 아그라, 바라나시 등을 여행할 땐 절대 대중교통을 타지 않았다.

2010년의 콜카타 지하철 /사진=위키커먼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끔찍한 뉴스가 전해졌다. 2012년 12월 16일 남델리 근교 무니르카에서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23세의 인턴 물리치료사 조티 싱 판디가 남성 6명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해 숨진 것이다. 조티는 당시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고 함버스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

조티와 그 남자친구를 제외하고, 버스 안에는 운전사를 포함하여 여섯 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함께 조티를 강간했다. 이들은 강간한 뒤 피해자의 장기와 몸을 버스 밖에 던져버렸고, 조티의 상태는 돌이킬 수 없어졌다. 조티는 싱가포르로 후송되어 응급 치료를 받았으나 13일만에 숨졌다.

이 사건은 인도 국내적으로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반향을 낳았다. 이후 BBC에서 '인도의 딸'(India's daughter)이라는 다큐멘터리형 영화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가해자와 가해자 측 변호사가 한 말은 국제적 공분을 낳았다.

가해자이자 당시 버스 운전사였던 람 싱은 "여성은 알아서 조심해야한다"며 "해가 떨어진 뒤 여성은 밖을 돌아다니면 안된다. 결혼하지도 않은 남성과 밤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여성에겐 교훈을 줄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가해자 측 변호사 마노르 랄 샤르마 역시 "여성은 마치 보석이나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으로, 스스로 잘 지켜야 한다"며 "바깥에 마구 돌아다니면 당연히 길가의 강아지는 그 보석을 탈취해 갈 것"이라고 말해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BBC 다큐멘터리형 영화 '인도의 딸'(India's daughter) 중 /사진=유튜브 캡처

이 사건은 인도의 여성이 얼마나 불안한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가해자들이 아무런 반성이 없고, 나아가 공공연히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모습은 인도 여성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인도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사그라졌던 시위에 다시금 불이 지펴진 건 2015년 12월, 사건 가해자 중 한 명인 우타르(18)가 3년 형을 마치고 석방되면서다. 2013년 9월3일 인도 뉴델리 소년법원은 우타르에게 3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청소년이므로 청소년 최고형인 3년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강간 살인범을 3년만에 풀어주는 게 어디있냐며 격렬한 항의시위가 일어났고 피해자 조티 싱의 유족들도 시위에 참가했다. 큰 반향을 일으켜 인도 정부도 관련 법률을 강화했다.

J S 베르마 전 대법원장을 위원장으로 한 '베르마 위원회'가 설립됐고, '베르마 위원회'의 권고안을 기초로 법률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이 개정안엔 집단 성폭행이나 미성년자 성폭행 등 범죄에 대한 최저 형량을 기존의 두 배인 징역 20년으로 높이고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식물인간 상태가 된 경우 가해자를 사형에 처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근본적인 건 바뀌지 않았다. 이따금씩 인도 고위 남성들이 실언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섰는데, 이 같은 실언엔 이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2012년 12월 당시 인도 대통령 프라나브 쿠마르 무케르지(임기 2012년 7월25일 ~ 2017년 7월25일)의 아들 아비지트 무케르지가 여성 시위 참가자들을 향해 "(그들은) 촛불 시위를 한 뒤 디스코텍에서 춤을 추고, 꾸미고 다니는 것만 좋아하는 소위 그렇고 그런 여자들"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또 "(이 같은 시위는) 현실 세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그저 그들만의 일"이라고도 언급했다. 전국적 비난이 쏟아지자 대통령 무케르지와 그의 딸 샤르미스타는 아비지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수상 역시 반대 의사를 표명해야만 했다.

인도 남성들의 근본적 생각이 바뀌지 않으니 성폭행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일종의 고질병처럼 고착돼갔다. 조티 싱 사건과 일련의 시위 이후 성폭행 사건의 신고가 큰폭으로 증가했지만, 경찰의 안이한 대처엔 변화가 없었다. 성폭행 사건의 신고 건수는 2012년 706건에서 2013년 1~9월 1330건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하지만 인도 경찰은 업무과다를 핑계로 2012년~2016년 사이 접수된 성폭행 사건 중 3분의 1가량만 조사했다.

지난해 1월 납치된 후 1주일 뒤 성폭행당한 시신으로 발견된 8살 소녀 아시파의 살해에 항의하는 시위가 11일 인도령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에서 열리고 있다. 그러나 급진 힌두단체 회원 수천명은 지난해 4월12일 한 힌두교 사원 안에서 무슬림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힌두교도 남성 6명이 무죄라며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 행진을 벌였다. 6명 중 2명은 현직 경찰관이다./사진=뉴시스

지난해에만도 인도에선 굵직한 성폭행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지난해 1월 북부 잠무-카슈미르 주에서는 유목 생활을 하던 무슬림 가족의 8세 소녀가 힌두 주민들에 의해 집단성폭행 당한 뒤 살해됐다. 같은 달 뉴델리에서는 28세 사촌이 술에 취해 8개월된 아기를 강간해 중태에 빠지게 했다.

이어 지난해 4월에는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사는 16세 소녀가 여당 소속 주 의원과 그의 동생에게 1년 전 성폭행당했다며 주 총리의 집 앞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지난해 7월에는 첸나이에서 청각 장애가 있는 11세 소녀가 7개월에 걸쳐 보안요원, 배관공 등 22명의 남성에 의해 여러 차례 집단 성폭행 당했음이 알려졌다.

심지어 조티 싱의 집단성폭행 사망 6주기 추모 행사가 열리던 지난해 12월16일에도 유아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다. 뉴델리 서부 빈다푸르 지역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건물 경비원이 3세 여아를 유인해 성폭행한 것이다.

2018년 4월15일(현지시간), 뉴델리에서의 시위. 이들은 2018년 1월 북부 잠무-카슈미르 주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8세 소녀가 힌두 주민들에 의해 집단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데 대해 분노해 시위에 참가했다. /AFPBBNews=뉴스1

상황이 이러하니 인도는 '성폭행'이라는 오명을 쓴, 위험한 나라가 됐다. 톰슨로이터재단은 지난해 6월 보고서를 통해 '세계에서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로 인도를 꼽았다. 성폭력, 문화와 관행, 인신매매 3개 항목에서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라는 것이다.

인도 영화 '가비지'의 감독 코식 무케르지도 한 인터뷰에서 "강간 등이 기사화되는 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뭄바이나 콜카타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 인도에선 절대로 여성이 혼자 길거리를 다닐 수도 없다.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 인도에선 왜 성폭행이 끊이지 않을까. 미국 데일리비스트(The Daily Beast)지는 "문화적 전통에 따라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이 아직 남아 있다"며 "남성들은 여성을 희롱하는 일이 '진짜 남성성'을 과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데일리비스트는 이어 "이 같은 남성들의 비뚤어진 인식부터 바뀌어야 성폭행을 줄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BBC방송도 "인도에서 성폭력은 힘을 행사하거나 힘없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발생 빈도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BBC는 현지 정부 통계 등을 인용해 "인도에서는 16세 이하와 10세 이하 어린이가 각각 2시간35분, 13시간마다 성폭행당한다"며 "유아 성폭행 범죄는 2012년 8541건에서 2016년 1만9765건으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아동 성폭행과 성인 성폭행을 모두 합칠 경우, 성폭행은 더욱 빈번히 일어난다. CNN에 따르면 2016년 인도에서는 총 3만9000건의 성폭행이 발생했다. 13분30초에 한 번 꼴로 일어난 셈이다. 이 수치 역시 전년도 대비 12%이상 증가했다.

즉 인도가 '성폭행 나라'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유는 근본적으로 인도 사회 기저에 깔려있는 여성혐오를 탓할 수 있다. 힌두교에 뿌리를 둔 여성혐오사상은 인도 여성들의 삶을 주변화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인도의 오랜 여성 지참금 문화가 빈곤과 뒤섞이며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다음 편에서는 인도에서 성차별이 나타나는 근본적 이유와 인도 내 여성혐오를 살펴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인도 그리고 성차별 ②]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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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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