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의 '30시간' 조서 열람.."검찰 조서 통째로 외우는 듯"

이후연 2019. 1. 17. 15: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예 검찰 조서를 통째로 외우는 것 같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이례적으로 긴 검찰 조서 열람 시간을 두고 한 검찰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17일 검찰 조서 열람을 위해 다섯 번째로 검찰에 출석했다. 이날 늦게까지 조서 검토가 이뤄진다면 양 전 대법원장의 조서 열람 시간은 약 30시간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 신문 시간(약 20시간)보다 조서 검토에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되는 셈이다.

전직 대통령이나 다른 주요 법조계 인사들의 조서 검토 시간과 비교해도 월등히 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조서 열람 시간에 총 7시간 30분을 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6시간이었다. 앞서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4시간,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첫 번째 특검 조사 후 5시간 동안 조서를 검토했다. 우 전 수석에 대해서도 특검 관계자는 “조서를 모두 외우는 것 같았다”고 전했었다.

조서 검토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그중 가장 주요한 이유로는 검찰이 가진 패를 추측하기 위해서라는 게 꼽힌다.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검토하기보다는 검찰이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를 통해 방어 논리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의 질문에 대해 거의 대다수 부인하거나 모른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피의자 신문조서를 검토하는 이유는 자신의 답변이 사실과 완전히 다르게 기재돼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라며 “하지만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한 양 전 대법원장이 답변을 살펴볼 이유는 없으니 질문 내용을 통해 검찰이 가진 증거가 무엇인지를 읽어내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주요 혐의 [박춘환 기자]

구속영장 청구를 늦추기 위한 작업이라는 해석도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조서 검토가 끝나는 대로 구속 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앞서 ‘공범’으로 적시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는 만큼 양 전 대법원장도 구속될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다. 또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의 영장을 같이 청구한다면 법원 입장에서 청구된 영장 모두를 기각시키기는 것도 부담스런 점이 있다. 이를 대비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더 강한 '불구속 논리'를 갖춰야 하는 만큼 그것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려 한다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검찰 조서인만큼 신중히 검토하는 게 당연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증거능력이란 증거가 엄격한 증명의 자료로 쓰이기 위해 갖춰야 할 자격을 말한다. 한 판사는 “증거능력과 판사가 판단하는 증명력(증거의 실질적 가치)은 다르다”라며 “양 전 대법원장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겠지만 행여나 검찰 조서가 자신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명력 있는 증거가 되지 않도록 답변도, 검토도 치밀하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성격이 워낙 꼼꼼해서란 분석오 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원래도 빈틈 없고 꼼꼼한 분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며 “자신에 대한 조서인 만큼 특히나 더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 부장판사도 “판사들이 원래 판결문의 조사 하나까지도 손보던 사람들 아닌가”라며 “41년간 해온 일이었는데, 그 습관이 어디 가겠나”라고 전했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의 장시간 조서 검토가 ‘특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일반인은 그렇게 오랫동안 검찰의 조서를 검토할 수 없다”며 “검찰이 전직 대법원장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과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한 부장판사는 “그동안 제대로 조서 검토를 하지 못했던 관행이 잘못된 것이었다. 조서 검토는 피의자의 당연한 권리”라며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