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여성들의 탈출 이어질까.. 2015년에만 최소 577명 탈출 시도

장지영 기자 2019. 1. 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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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결혼 거부한 18세 사우디 소녀의 캐나다 망명 성공 이후 관심 집중
아버지가 강요하는 강제결혼을 피하기 위해 캐나다로 망명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18세 소녀 하라프 알쿠눈이 지난 15일(현지시간) 토론토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AP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의 18세 소녀 라하프 알쿠눈이 아버지의 강제결혼 강요에서 벗어나기 위해 트위터로 구조를 신청한 끝에 캐나다 망명에 성공한 이후 또다른 사우디 여성이 트위터로 도움을 요청하고 나섰다. 사우디 여성들의 잇단 탈출 사건을 계기로 여성 인권을 억압하는 사우디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들의 탈출 문제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뉴욕포스트 등은 17일(현지시간) 노주드 알-만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이 아버지의 통제와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 14일 트위터에 아랍어로 도움을 요청하는 동영상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그는 얼굴을 공개하지는 않은 채 “아버지가 나를 욕하고 때려 고통받고 있다. 현재 내가 원하는 건 도움과 지지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내 방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려 친구의 차를 타고 도망쳤다”며 “예전에 가출했을 때 아버지가 경찰에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는데 소용이 없었으니 제발 경찰에 아버지를 신고하라는 말은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알-만델은 알쿠눈의 망명 성공에서 자극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포스트 등은 전했다. 다만 알쿠눈이 가족여행을 갔다가 태국에서 귀국을 거부한 끝에 국외 탈출에 성공한 알쿠눈과 달리 알-만델은 사우디에서 출국하지는 못했다. 현재 보호소에 수용돼 있는 그는 “나를 무차별 구타하고 불로 지지기까지 한 아버지가 검찰에 ‘앞으로는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나를 다시 집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를 나를 죽일 것이다”면서 “아버지가 나를 집으로 다시 보내지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AP뉴스는 사우디 당국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 2015년 한해에만 최소 577명의 사우디 여성이 사우디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해외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자료는 없다. 캐나다로 망명한 알 쿠눈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면서 “많은 사우디 여성들이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해 실종된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 여성들의 잇단 사우디 탈출은 여성인권을 경시하는 가부장적인 문화 때문이다. 최근 개혁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여성 운전을 허용하는 등 일련의 조치를 시행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특히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도 거의 사라진 ‘마흐람(남성 후견인) 제도’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문제다. 여성이 아버지·남편·아들 등의 동의 없이 결혼·여행·교육·취업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없도록 한 마흐람 제도는 서방은 물론 사우디 내 개혁적인 인권 단체들로부터 여성 인권을 가장 크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와 보수파들은 “여성들을 보호하는 것은 남성의 의무인만큼 마흐람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개혁을 추구한다는 빈 살만 왕세자도 마흐람 제도의 폐지에 부정적이다. 그는 “마흐람 제도를 폐지할 경우 딸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을 원치 않는 가정에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여성들이 조국과 가정을 탈출하려는 것은 바로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을 개척하겠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실제로 사우디 당국은 지난해 5월 이후 마흐람 제도에 반대하는 여성 인권운동가 10여명을 투옥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들 여성 인권운동가들이 고문은 물론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고발했다.

사우디의 인권운동가 할라 알도사리는 “가정에서 여성에게 아버지와 남편, 남자 형제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치는 마흐람 제도는 사우디의 국가 시스템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국왕에게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는 것과 흡사하다”면서 “사우디는 아직도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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