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정확한 통계 없다는데..유시민 '대북 지원' 계산보니

김도년 2019. 1. 1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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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 유시민의 '고칠레오'를 따져봤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7일 '가짜뉴스'를 바로잡는 팟캐스트 방송 '유시민의 고칠레오'를 추가로 공개했다. [연합뉴스]


[김도년의 숫자로 읽는 경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3일 직접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고칠레오'에서 '대북 퍼주기 설'에 대해 팩트체크했다. "북핵 위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70억 달러 이상 북에 돈을 퍼줬기 때문"이라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 발언의 진위를 검증해 본 것이다. 도마에 오른 홍 전 대표 발언은 지난 대선 당시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2017년 4월)에서 나왔다.


고칠레오 "김대중·노무현 정부, 현물 29억, 현금 39억 달러 지원"
유 이사장이 '고칠레오'에서 '팩트'로 주장한 내용은 대선후보 토론회 개최 당시 발표된 통일부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통일부가 2017년 4월20일 언론에 공개한 '정부별 대북 송금 및 현물제공 내용' 자료를 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옥수수·밀가루·의약품 등 현물 29억1304만 달러, 현금으론 39억1393만 달러를 북한에 지원한 것으로 나와 있다.

방송에 함께 출연한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는 "북한에 전달된 현물을 핵 개발에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북한에 준 현금은 39억 달러 중 1만 분의 1(40만 달러)뿐"이라고 설명했다. 현금의 99% 이상은 남북이 교역하는 데 쓰였다는 것이다. '고칠레오'의 팩트체크는 '팩트'일까? 이를 따져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부 "'대북 지원' 판단 모호…계산 방식 따라 다른 통계 나와"
결론부터 말하면, 통일부·기획재정부 등 정부에도 정확한 대북 지원액 총계를 계산한 통계가 없다. 유 이사장은 통일부 자료를 근거로 들지만, 같은 통일부가 발표한 대북 지원액은 계산 방식에 따라 달라졌다. '고칠레오'에서 근거로 제시한 통일부 자료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대북 송금액이 39억 달러로 나와 있다. 하지만 통일부가 2010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나온 이 액수는 27억 달러다. 교역·위탁가공 등 특정 항목을 빼고 더하는 식으로 계산 방식을 달리하면 대북 지원액 규모도 달라진다.

정부는 대북 지원액 통계 작성이 어려운 이유로 어디까지를 '대북 지원'으로 볼 것인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을 든다. 북한 땅에 철도·도로 등을 만들면 남한이 일정 기간 이용권은 갖지만, 소유권은 북한으로 넘어간다. 남한이 경협 활동에 이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선 '상거래용'으로 볼 수도 있지만, 소유권자가 북한이라고 보면 '대북 지원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대북 지원은 한국수출입은행이 관리하는 남북협력기금과 함께 정부 예산(일반 회계), 국제구호단체를 통한 인도적 지원, 한국전력·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 자금으로도 이뤄진다. 여러 갈래로 나눠 지원된 액수 중 기준이 모호한 '대북 지원액'을 정확히 발라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고칠레오'는 대북 지원액 70억 달러가 '돈(현금)'이라 말한 홍 전 대표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정확히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 지원 범위를 국제구호단체 성금·공기업 투자금 등으로 넓히고 '대북 지원'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정부가 순수하게 북한에 준 현금은 '고칠레오'가 밝힌 40만 달러(4억4900만원)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경제 협력 기반 조성을 위해 쓰인 자금을 대북 지원으로 볼 것인지 모호하다 보니 딱 잘라서 대북 지원액을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며 "숫자를 계산하는 사람마다 다른 통계가 나올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는 정확한 규모를 국민이 알 수 있도록 '대북 지원'의 명확한 기준이 세워져야 하는 이유다.
통일부가 'e-나라지표'를 통해 공시하는 '대북지원 현황'은 인도적 지원액만 계산돼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 스웨덴 '명품' 볼보 차 1000대 외상으로 사고 돈 안 줘
북한에 대한 현물·현금 지원이 '퍼주기'냐, 통일 준비를 위한 불가피한 비용이냐는 정치적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진보·보수 정부 모두 빌려준 차관을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천 이사는 '고칠레오'에서 "앞으로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대북 차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이 차관을 갚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그동안 한국은 물론 스웨덴·스위스 등 유럽 국가로부터 빌린 돈도 갚지 않고 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이 지난해 말 기준 남북협력기금으로 빌려준 차관은 9억3293만 달러(1조480억원)이지만, 연체 금액은 2억453만 달러(2300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연체가 발생하기 시작한 201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북한에 총 45차례 상환촉구 공문을 발송했지만, 북한은 남한 측 공문을 무시했던 것이다.

스웨덴 무역보험기관(EKN)의 2017년 연례보고서에 기록된 북한의 채무도 2016년 12월 현재 27억4100만 스웨덴 크로나(3400억원)에 달했다. 북한은 스웨덴 '명품' 볼보 자동차 1000대 등을 외상으로 수입한 뒤 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것이다. 스웨덴 EKN은 북한과 함께 시리아·베네수엘라·짐바브웨 등도 빚을 갚지 않고 있는 나라로 명시했다.


대북 지원금으로 핵 개발은 불확실…다만, 빚 안갚고 핵무기 개발
한국과 스웨덴 등이 빌려준 차관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쓰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북한이 국가 채무는 갚지 않으면서 핵 개발에 투자한 것은 예산 집행 우선순위가 채무 상환보다 핵 개발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힘들다며 돈을 빌려 간 친구가 이를 갚지도 않으면서 마약이나 총기류를 산 격이다.

한국은 그동안 북한이 빌린 채무를 갚지 않고 연체를 하더라도 국가 회계장부에서 손실(대손충당금)로 처리하지 않고 있다. 남북 경협의 경제 효과와 함께 정확한 대북 사업 손실 규모도 보고해야 국민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유 이사장이 '고칠레오'에서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지난 대선 TV토론에서 홍 전 대표의 '대북 퍼주기' 공격에 문재인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대북 지원액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지원액보다) 더 많았다"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유 이사장이 거론한 통일부 자료로만 보면, 현물·현금을 가장 많이 북한에 지원한 정부는 노무현 정부였다. 대선 당시 홍 전 의원도 문 대통령도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실랑이를 벌였던 셈이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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