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이온 환상 못 버리면 제2의 라돈침대 사태는 계속 발생할 것"

최준호 입력 2019. 1. 20. 08:08 수정 2019. 1. 2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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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가 지난 18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라돈침대 사태와 음이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손에 들고 있는 것 에틸알콜과 메틸알콜 분자모형. 최준호 기자


15일 개정 ‘생활방사선법’ 공포, 7월부터 시행

지난 15일 개정‘생활방사선법’이 공포됐다. 지난 한 해 광풍처럼 전국을 휩쓸었던‘라돈침대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다. 법의 효력은 시행령 등 정비작업을 거쳐 오는 7월16일부터 발효된다. 앞으론 침대나 베개ㆍ팔찌 등 신체밀착형 생활제품에는 방사성 원료물질인 모나자이트를 아예 쓸 수 없게 된다. 또 음이온을 내세운 허위광고도 할 수 없다.‘라돈침대 사태’의 한쪽 편에는 이덕환(65) 서강대 화학과 교수가 있었다. 그는 라돈침대 사태 때는 물론 지난 수십 년간 방사성 물질의 위험과 함께 음이온의 환상을 비판해온 학자다. 라돈침대 사태 역시 출발은 음이온이었다. 지난 18일 서울 신촌 서강대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개정 생활방사선법이 공포됐다.
“개정 방향은 맞지만 너무 늦었다. 2011년 처음 생활방사선법을 만들 때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다. 의욕만 넘쳤지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못한 것이다. 결국 한국 사회는 문제의 씨앗을 키웠고, 그게 드러난 것이 지난해 라돈침대 사태였다. 혼돈의 한 해였다. 문제 제기까지는 좋았지만 해결 방식은 최악이었다. 위험을 지나치게 증폭시켰다. 이렇게 온 나라가 마비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관부처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처신 때문에 온 국민이 돌부리를 지뢰밭으로 인식하게 됐다. 정부의 무능, 비전문성이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라돈 검출 제품 조사 결과 공개 및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라돈침대 매트리스, 결국 방폐장으로 보낼 수밖에 없어

-지난해 수거ㆍ분해한 매트리스가 아직 대진침대 본사 창고에 쌓여있다. 정부는‘소각한 후 매립’방침을 고민 중이라는데.
“해결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정부가‘모나지아트는 매우 위험하다’고 인식시켜줬기 때문에, 일반 폐기물로 버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방사성 물질은 불에 태운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결국 드럼통으로 넣어 경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에 보내는 수밖에 없다. 2011년 문제됐던 서울 노원구의 아스팔트도 결국 방폐장으로 갔다. 땅에 묻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만, 그러려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했어야 했다.”(모나자이트는 천연 방사성 핵종인 우라늄과 토륨이 1대 10 정도로 함유된 광물질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에도 우라늄이 들어있다.)

-애당초 왜 모나자이트를 수입했을까.
“모나자이트는 희토류를 추출할 수 있는 광물이다. 토륨이라는 차세대 원전 원료를 뽑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용도 모두 국내에는 관련 산업이 없다. 결국 모나자이트는 국내 한 중소기업이 음이온 마케팅을 위해 수입한 것이다. 모나자이트 방사선을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음이온이라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여러 업체가 토르말린ㆍ게르마늄ㆍ칠보석 등의 광물로 음이온 마케팅을 해온 터였다.”

-앞으로 이 법이 시행되면 라돈침대 사태와 같은 문제는 더 이상 없을까
“라돈침대 사태는 해결되겠지만 기업과 소비자가 음이온과 같은 유사과학에 집착하는 한 모나자이트가 아닌 또 다른 무언가가 등장할 것이다. 음이온 환상을 우리 사회에서 벗겨버리지 않으면 제2, 제3의 라돈침대 사태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지난해 10월 충남 천안의 대진침대 본사 공터에서 관계자들이 라돈 메트리스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음이온 환상에 찌든 한국 사회

-음이온 환상이 뭔가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이다.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몸에 좋은 음이온이 나온다고 홍보하는 생활용품이 여전히 넘쳐난다. 라돈 침대 역시 음이온이 나오는 건강한 침대라는 홍보 마케팅이 빚은 참극이다. 침대 제조사도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나오는 모나자이트를 몸에 좋은 음이온이 발생하는 신비한 광물질이라고 여겼을 정도로 무지했다. 음이온은 원자나 분자에 여분의 전자가 결합돼 만들어지는 화학종을 통틀어 일컫는 화학용어일 뿐이다. ”

-왜 우리나라에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지난 수십 년간 동안 유지돼온 음이온의 환상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음이온 상술은 30여 년 전 일본에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국민 일부가 엉터리 과학에 찌들어 있었지만, 과학 선진국 일본에서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엉터리 상술이 힘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나라 전체가 음이온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기업이 엉터리 상술을 이용했고, 언론은 엉터리 과학을 판별할 능력이 없었다. 과학계 역시 기업의 소송이 두려워 이런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해 왔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잘못이다.”


음이온ㆍ원적외선ㆍ게르마늄…과학적 근거 없어

-아직도 음이온 기능을 얘기하는 제품들이 팔리고 있다.
“일부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에 음이온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게 사실은 심각한 거다. 대부분 전기 방전을 이용하는데 음이온만이 아니라 살균기능이 있는 오존도 같이 발생한다.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와 다르지 않은 매우 위험한 제품이다. 기관지에 위험하다는 사실은 여러차례 보도됐다. 정부가 나서서 금지해야 한다.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오존 허용 기준을 정해 기준치 이하의 경우에는 제품 인증을 해주고 있는데, 오존은 발생량이 아니라 공간의 문제다. 나라에서 여름이면 ‘오존 경보’도 내리는 판에 밀폐된 실내 공간에 오존이 쌓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시거잭에 연결하는 차량용 공기청정기 역시 같은 원리다. 오존 발생기는 제품 살균용이지 생활용품이 아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는 오존 발생기를 가정용으로 쓰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게르마늄 관련 제품도 있다. 국내는 물론 일본 면세점에 가도 음이온이 나온다는 게르마늄 팔찌를 비싸게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르마늄은 참으로 황당한 거다. 1960년대 경 일본의 한 석탄회사에 근무하던 사람이 게르마늄의 효능이 있다며 먹는약을 만들었다. 약의 효능은 검증되지 않았고 유해성은 많이 검증이 됐다. 이후 일본에서는 게르마늄 약 광고가 없어졌다. 그래도 남아있는 게 정체불명의 게르마늄 팔찌 정도다. 게르마늄에서는 방사선도 음이온도 나오지 않는다. 게르마늄 관련 주장은 하나도 믿을 것이 없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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