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일본 "징용재판 방치땐 양국 파탄날 것"..박근혜 압박

나운채 입력 2019. 1. 22.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일현인회의, 지난 2015년 박근혜 대통령 방문
前 일본 총리, 朴에 "강제징용 판결 방치 안된다"
"日정부 심각하게 받아들여..정치적 해결 필요"
박근혜, 외교부에 '국격 손상 안 되게 처리' 지시
검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영장에 구체적 기록

【서울=뉴시스】나운채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현직이던 시절 2015년 중순 일본 고위 인사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판결을 방치해선 안 된다. 한일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놨던 사실을 검찰이 확인했다.

이 같은 발언은 한국과 일본의 정·관·재계 원로들로 이뤄진 '한일현인(賢人)회의' 인사들이 청와대를 방문해 박 전 대통령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나라 망신이 안 되도록, 국격이 손상되지 않도록 (징용소송을) 처리하라"며 외교부에 지시했고, 사법부도 기민하게 발을 맞춘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이 같은 정황을 적시했다.

한일 관계 개선 모색 등을 목적으로 하는 한일현인회의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정·관·재계 원로들로 구성됐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 사사키 미키오 일한경제협회 회장, 가와무라 다케오 전 관방장관 등 일본 측 인사와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 한국 측 인사들로 구성됐다.

한일현인회의의 일본 측 인사들은 지난 2015년 6월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방한했고, 이들은 박 전 대통령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회담을 가졌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지난 2015년 6월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 현인회의' 대표단을 접견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2015.06.01. park7691@newsis.com

이 자리에서 모리 전 총리 등은 박 전 대통령에게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밝힌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당시 청와대 면담에 참석한 인물들의 메모 등을 확보해 이런 발언이 오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파기 후 항소심은 지난 2013년 7월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고,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모리 전 총리 등의 발언은 이 같은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한일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압박한 것이다. 이는 일본 측 인사가 한국 정부에 개별사건 재판에 개입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범한 것으로 비춰지는 대목이다.

특히 이 자리는 당시 일본 전범기업 측을 대리하고 있던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근무하던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이 주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기업 측을 대리하는 김앤장 측 인사가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된 일본 측 의견을 한국 정부에 '은밀하게' 개진할 수 있도록 해줬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외교부 측에 강제징용 소송 재판을 지목하며 '나라 망신이 안 되도록, 국격이 손상되지 않도록 처리하라'는 지시를 전달했다. 일본 기업 측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서 제출 등을 하도록 촉구하는 취지다.

그러나 외교부는 국민 정서와 당시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로 악화된 여론 등을 고려해 의견서 제출을 미뤘고, 박 전 대통령은 다음해 4월 '모든 프로세스를 8월 말까지 끝내라'고 재차 지시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후 검찰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19.01.12. mangusta@newsis.com

결국,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이후 외교부는 법원행정처와 협의해 신속히 의견서 제출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일본 기업 대리인인 김앤장 측과 연락을 취해 의견서 제출 촉구서를 접수토록 했다.

검찰은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양 전 대법원장 등 당시 사법부 고위 법관들이 일제 강제징용 소송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정부 요청에 적극 협력해 상고법원 도입 추진 및 해외 파견 판사직 신설 등을 위한 편의를 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한일현인회의와 박 전 대통령 등과의 만남 등 구체적인 정황 증거를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에 적시했다. 검찰은 오는 23일 열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 같은 정황을 설명할 계획이다.

naun@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