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유전자 편집 아기' 창조주 허젠쿠이의 몰락

최준호 2019. 1. 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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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안에 넘겨 엄격 처벌"
사형 가능성도 나와 .. 대학선 해고
과학계, 유전자 가위 빙하기 우려
허젠쿠이
지난해 말, 세계 최초로 ‘디자이너 베이비(Designer Baby)’를 출산해 화제가 된 허젠쿠이(賀建奎·34)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세계 과학계는 이번 사건의 국제적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대표적 미래 기술로 떠오르고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빙하기’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22일 중국 신화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광둥성 정부 관할 ‘유전자 편집 아기 사건 조사팀’은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허 교수와 관계자들을 법에 따라 엄격히 처벌하기로 하고 공안기관에 사건을 이관해 처리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허젠쿠이가 사형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남방과기대는 이 같은 정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허젠쿠이를 해고하고 그의 연구 활동도 중단시켰다.

허젠쿠이는 지난해 11월 26일 홍콩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AIDS에 면역력을 갖도록 유전자를 교정한 쌍둥이 아기 루루와 나나가 탄생했다”고 발표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편집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당시 중국 과학자 122명은 SNS를 통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며 규탄 성명을 냈고, 국제 과학계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신화 통신이 보도한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허젠쿠이는 윤리 검토 서류를 위조해 부부 8쌍을 모집했으며, 개인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규제와 감독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유전자 편집 아기 임신에 성공한 부부는 2쌍으로, 이미 태어난 루루와 나나 외 다른 부부의 태아도 현재 임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과학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유전자 가위 관련 기술 개발의 위축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황우석 사태’ 이후 생명윤리법이 더욱 엄격해지는 등 트라우마를 겪은 터라 유전자 가위 연구 진행이 더욱 얼어붙을 수 있다.

구인회 전 한국생명윤리학회 회장은 “유전자 편집이 질병을 예방, 치료할 목적이 있다고 하지만 특정 유전자나 능력을 우생학적으로 강화·개량할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유전자 편집 기술이 ‘특허 경쟁’으로 번지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구 회장은 “유전자가위 기술은 안전성은 물론 윤리적인 면도 아직 해결이 안된 만큼 세계 각국에서 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한국은 생명윤리법과 보건당국의 규제가 이중으로 적용되고 있어 유전자 가위 연구에 원천적 한계가 있는 상황”며 “생식세포에 대한 유전자 변이를 실제 적용하는 것은 물론, 일부 희귀병 외에는 기초연구도 금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이를 국제사회의 흐름과 단절된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따라 배아줄기 세포에 대한 연구도 더뎌져, 국내 대학이나 바이오기업은 미국·일본 등 국가에서 연구를 진행하거나 환자를 치료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중국은 허젠쿠이 사태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이 분야 세계 선두권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처럼 배아의 유전자 치료에 대한 연구가 금지된 프랑스·독일은 물론, 연구가 허용된 미국·영국에 비해서도 규제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3년 이후 한 차례도 생명윤리법과 관련 규제를 개정한 적이 없으며 한국과 달리 일부 분야의 연구만 제외하고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형 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준호·허정원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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