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발전인가, 예산낭비인가..수십조원 '예타 면제' 논란

2019. 1. 23. 0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타 면제 앞둔 사업들 살펴보니

정부, 비수도권 14곳 이달 말 발표
문 대통령 "광역정부 1건씩 배정"
전국서 최대 수조원 정부 지원
시·도별 예타 면제 신청 상당수가
'비용 대비 편익' 기준 못 맞춰
전문가들 "예타 개선" 필요성 공감
"지방 발전 거점 혁신도시 투자를"

오는 29일께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 선정과 관련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광역지방정부별로 최소 1건은 배정될 것이라고 말해 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문 대통령처럼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이번처럼 일률적으로 지방정부의 신청을 받아 한 광역정부에 하나씩 허용하는 방식을 두고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사업의 재정적 악영향은 예산 투입뿐 아니라 사업 완공 뒤에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각 광역지자체에서 요청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

■ 문 대통령이 불붙인 예타 면제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회견에서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 지역에 대규모 공공인프라사업을 해야 되는데, 서울이나 수도권처럼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은 예타 통과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예타 면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경남도청에서 “남부내륙고속철도는 경남북 내륙지역의 균형발전, 지역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꼭 필요하다”며 “예타 면제를 곧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남뿐 아니라 많은 광역정부가 반색했다

지난해 11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기획재정부가 전국 광역정부 17곳에서 받은 예타 면제 신청 사업은 33건으로 총사업비가 58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이 가운데 14개 비수도권 광역 시·도별로 1건의 예타 면제 사업을 선정해 29일께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업 추진 가능성이 너무 떨어지는 사업이 많아 지자체 쪽과 신규사업 등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수도권은 제외되지만 낙후한 인천, 경기 북부 지역 사업은 선정될 가능성도 있다. 송재호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지난 15일 전북혁신도시 국민연금공단에서 “지금 지역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업이 무엇인지는 해당 지역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각 지자체에서 제안하는 사안을 들어주는 게 이치에 맞는다”고 말했다.

■ 그러나 여전한 예산 낭비 우려

문제는 과연 이 사업들이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과거 수많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이뤄졌지만, 그 가운데 상당수가 경제적 타당성도 없고 그 지역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전국의 국제·국내 공항이 14곳 건설돼 있는데 이 가운데 인천, 김포, 제주 등 서너곳을 빼고는 모두 적자를 내고 있다. 일부 공항은 적자 폭이 줄어들고 있지만, 대부분 공항이 여전히 적자 기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송하진 전북지사(앞줄 왼쪽 넷째)와 전북 14개 지역 시장·군수가 지난해 12월21일 전북도청에서 새만금 국제공항 조기건설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촉구하는 건의문을 낭독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북도 제공
새만금국제공항 예상도. 전북도.

이런 이유로 이번에 신청된 사업 가운데 사업비 9700억원의 새만금국제공항은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전북은 이 사업을 제1순위로 신청했으나, 균형발전위나 기획재정부는 골머리를 썩고 있다. 부근에 군산공항이 있는데다 멀지 않은 곳에 국제공항인 무안공항과 청주공항도 있어 타당성이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전북도는 새만금공항의 항공 수요가 충분하다고 밝혔으나, 그 근거인 수요 조사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했다”고 꼬집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도 “새만금국제공항은 심각하다. 과연 도마다 공항이 필요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전북은 공항을 새로 만들기보다는 도로와 철도 등 다른 교통 수단을 종합적으로 보고 개선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 지역 균형발전엔 도움 될까?

이번에 예타 면제를 신청한 사업 가운데 다수가 경제적 타당성을 나타내는 비용 대비 편익(B/C)이 1 이상 나오지 않는 사업이다. 인천시가 신청한 광역급행철도 B노선은 2014년 예타에서 비용 대비 편익이 0.33에 그쳤다. 또 충북의 충북선 고속화 사업도 2017년 예타에서 0.37, 역시 충북의 중부고속도로 확장도 2017년 예타에서 0.65가 나왔다. 대통령이 사실상 예타 면제를 약속한 남부내륙고속철도의 비용 대비 편익도 2017년 예타에서 0.72를 기록했다. 강원도가 신청한 제2경춘국도 역시 2016년 예타에서 비용 대비 편익이 0.76으로 나와 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예타 면제 역사상 최악의 사례로 꼽히는 것은 4대강 사업이다. 2010년 경기 여주 이포보 일대 남한강 정비사업 공사가 진행중인 현장. 여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제는 이렇게 비용 대비 편익이 낮은 사업이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균형발전을 위해 2009년 예타 없이 추진한 전남 영암의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 사업은 전남도에 투자비 1조원, 운영비 6천억원의 천문학적 손실을 안겼다. 특별법 제정으로 예타를 면제받은 강원 평창올림픽 시설도 연간 40억원 넘는 운영비를 세금으로 충당한다. 예타 면제 사업 가운데 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4대강 사업은 건설비 22조원에 유지관리비가 해마다 5천억원 이상 든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예타는 중복적이거나 낭비적인 사업을 걸러낼 수 있는 수단이다. 지역에서 원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 차원에서 필요한 시설들을 고민하고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예타 면제를 어떻게 개선할까?

전문가들은 예타 개선의 필요성에 모두 공감을 나타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국가균형발전위원)는 예타 면제로 문제를 풀기보다는 예타 기준을 좀 더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현재 가장 중요한 경제적 타당성의 비중을 조금 줄이고, 균형발전이나 지역의 관점을 좀 더 늘리는 방식으로 예타 기준을 개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이런 산발적인 인프라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보다는 지방 대도시와 혁신도시 등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마강래 교수는 “예타에서 균형발전이란 개념이 오히려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지방의 대도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중소 도시나 시골에 더 많은 가점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을 대광역으로 묶어서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하고, 예타도 이런 대광역에 가점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도 “예타 면제를 통한 인프라 투자 때 지방의 거점인 혁신도시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혁신도시의 발전은 지방 전체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데, 현재 혁신도시의 인프라 수준은 매우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예타를 면제해서 사업을 시행하더라도 예타 자체는 평가용으로 해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예타를 면제해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예타 자체는 해야 한다. 그래야 사전에 조사하고, 사후에 평가할 수 있다. 예타를 면제했을 때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알아야 예타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가피하게 예타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면 지방정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예타를 수도권-비수도권으로 나누거나 완화해야 한다면 중장기적인 운영·관리 비용 부담 등 지방정부의 책임 있는 조처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임근 오윤주 박수혁 이정하 노현웅 김규원 기자 pik007@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영상+] 연말정산 뽀개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