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군은 게임이 안됩니다 [박수찬의 軍]

박수찬 입력 2019. 1. 25. 11:24 수정 2019. 1. 25. 13: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하늘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주변국들이 공군력을 증강하면서 활동반경을 자국 영공에서 공해로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해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배치했으며 2020년까지 F-5A를 42대 도입할 계획이다. 해상자위대 이즈모급(2만6000t급) 헬기탑재 호위함 2척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기로 하면서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도입도 추진중이다. 최대 100대의 F-35를 일본이 구매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도 자체 개발한 J-20 스텔스 전투기를 200~300대 배치할 태세다. 일본과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증강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여기는 미국은 J-20의 복제품을 만들어 훈련하는 등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러시아도 SU-57 스텔스 전투기 개발과 SU-35 전투기 배치 등을 지속하고 있다.

공군 F-15K 전투기가 대구 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공군 제공
우리나라도 F-35A가 오는 3월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40대를 들여올 예정이다. 2030년에는 한국형전투기(KF-X) 120대를 배치하는 등 전력증강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2020년대 항공전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기종이 적지 않은데다, 국내 개발 프로그램의 효용성 등을 놓고 의문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겉은 멀쩡하지만…기형적 전력구조

공군이 전시와 평시 상황에 대비해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전투기 규모는 430여대 정도다. 전략적 타격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하이(F-35A, F-15K)급 전투기 120여대, 다양한 작전에 투입 가능한 미디엄(KF-16, F-16, F-4)급 전투기 220여대, 지상군 지원에 주로 쓰이는 로(KF-5, F-5, FA-50)급 전투기 90여대를 갖춰야 한반도 유사시 효과적인 공중작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공군이 보유중인 전투기는 400여대로 공군이 필요로 하는 수량의 93% 수준이다. 얼핏 보면 큰 문제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 전력구조를 들여다보면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공군 F-4 전투기가 훈련을 위해 활주로를 이륙하고 있다. 공군 제공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의 지난해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공군의 하이급 전투기는 50여대로 공군 적정 보유량의 41.7%, 미디어급 전투기는 170여대로 적정 보유량의 77.3%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로급 전투기는 170여대로 적정 보유량의 188.9%에 달했다.

현대 공군의 핵심 임무 중 하나가 전략적 타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상군의 근접지원에 전력이 집중된 전투기 운용구조는 유사시 효율적인 항공작전에 제약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같은 상황은 노후 기종인 KF-5와 F-5, F-4 전투기를 퇴역시키지 못한 채 운용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노후 기종들을 대체할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은 2000년대 초부터 거론됐지만 실제 개발은 2016년 시작, 2030년에야 실전배치가 시작될 예정이다.

KF-X 개발이 늦어지면서 공군은 KF-5와 F-5, F-4 전투기 운용기한을 5년 연장, 2024~2030년 퇴역시키기로 했다. 공군은 성능개량과 단종 부품 확보, 대체품 적용 등을 통해 운용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는 입장이지만 40~45년을 써야 하는 전투기가 유사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군의 규모 유지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대목이다.

군 당국은 이와 관련해 F-35A 20대 추가 도입을 내부적으로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F-35A 20대가 추가로 들어와도 KF-5와 F-5, F-4 전투기의 퇴역으로 인한 공백을 완전히 메우기는 어렵다. 전력공백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기존 전력구조를 혁신하고 임무 범위와 수행방법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군 정비사가 KF-16 조종석에 탑승한 조종사로부터 헬멧을 넘겨받고 있다. 미 공군 제공
◆항공 관련 국내 개발 사업 ‘우려’ 시선

KF-X와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 사업은 공군의 전력증강 계획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노후 기종을 대체할 KF-X와 전략적 타격능력 강화 역할을 맡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이 차질을 빚을 경우 공군 전력공백은 피할 수 없다.

방위사업청은 KF-X 개발과 관련해 “예정대로 체계개발이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6월 기본설계(PDR)를 완료했으며, 오는 9월 상세설계(CDR)를 마칠 것이라는 게 방사청의 설명이다. 하지만 방산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전투기의 핵심인 전자전 체계와 임무컴퓨터 시스템 등의 경우 국내 업체는 물론 기술지원을 담당할 해외업체도 경험이 부족해 개발 속도가 더딜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KF-X가 무사히 개발된다 해도 효용성 측면에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KF-X가 하늘로 날아오를 2030년대는 F-35A와 J-20, SU-57, 템페스트 등의 스텔스 전투기가 운용될 시기다. 스텔스 기능을 갖춘 4.5 세대 수준의 KF-X가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스텔스 전투기보다 앞선 성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특히 F-35A는 2030년대에는 대당 가격이 상당 부분 인하되면서 KF-X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우리 손으로 만든 전투기’라는 산업적 측면의 대의명분이 있지만, 전쟁에서 싸워 이기는데 필요한 장비를 적절한 가격에 확보해야 하는 군의 입장에서 볼 때 무시하기 힘든 부분이다.

공군 F-16D 전투기가 조종훈련을 위해 상승 비행을 하고 있다. 공군 제공
8000여억원이 투입될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 및 생산은 높은 기술적 난이도와 개발 기간을 두고 논란이 적지 않다. 방위사업청은 오는 3월부터 탐색개발에 들어갈 예정이다. 개발을 담당할 업체로는 LIG 넥스원이 지난해 말 우선순위업체로 선정됐으며, 협상을 거쳐 3월까지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청은 기술적 난이도가 높다는 점을 감안, 2021년까지 체계개발에 필요한 설계 및 핵심기술을 미리 확보하는 탐색개발을 하고 2022~2028년 체계개발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일정대로라면 2028년 이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200발이 생산되어 KF-X에 탑재된다. 하지만 외국에서 운용중인 장거리 공대지미사일과 비교할 때, 국내 개발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중 가장 강력한 미사일로는 미국 록히드마틴의 재즘(JASSM)-ER이 있다. 사거리가 1000㎞에 달해 공군의 전략적 타격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유럽에서 개발한 스톰 섀도(사거리 560㎞)와 타우러스(사거리 500㎞)도 세계 각국에서 쓰인다. 재즘-ER의 대당 가격은 15억여원, 타우러스는 20억원 정도다.

한국형전투기(KF-X) 상상도. 스텔스 기능을 갖춘 전투기로 개발될 예정이다. 방위사업청 제공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총사업비 중 생산비용이 5000억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재즘-ER은 330여발, 타우러스는 250발 정도를 구매할 수 있다. 2028년 이전에 실전배치가 가능하다. 반면 2000년대 기술인 타우러스와 유사한 미사일을 국내에서 만든다 해도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해 200여발만 국내에서 생산하고 종료될 가능성도 있다. 개발 일정이 지연되면 전력화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2020년대 공군은 대대적인 변화의 요구에 직면할 전망이다. 2000년대부터 경고등이 켜졌던 공군 전력공백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해결과제다. 하지만 남북 화해 시대를 맞아 수조원이 소요되는 전투기 도입 사업은 추진 자체가 쉽지 않다. 기존에 보유한 자원만으로 위기를 극복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이 도발을 지속하던 시기에는 청구서만 제시해도 전력증강은 일사천리였다. 지금은 청구서와 함께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사업 추진의 명분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영토 방위능력의 강화’다.

엔지니어들이 KF-X 탑재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실험을 실시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능력의 강화는 새 무기를 구매하거나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기존 전력의 융합을 통한 시너지 극대화, 비(非)스텔스기로 주변국 스텔스기를 요격하는 전술 개발, 부대 구조 개편, 육군 탄도미사일 부대에 일부 임무 이양 등을 통해 ‘선택과 집중’을 꾀하면서 공군의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개발 사업을 철저히 점검하면서 리스크를 줄여나가야 한다. 지금은 규모나 외형이 아닌, 내실을 다져야 할 시기다. 이대로는 주변국에 ‘게임’이 안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