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의 눈] 새치기하면서 양보 강요, 나이 많은 게 힘?

이혁 2019. 1. 2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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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에서 새치기하면서도 당당한 어른들, 육두문자 쓰며 큰소리치기도
나이 앞세우며 대우받길 바라면서 남에게 피해 주는 사실 외면해 '씁쓸'
경범죄로 처벌 가능하지만 신고 건 수 없어.. 최소한의 예절 지켜야

“버스터미널에서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노인들이 무리를 만들어 옆쪽으로 새로운 줄을 만들어서 먼저 탔어요”

“놀이공원에 놀러 갔는데 할머니와 5살쯤 보이는 남자아이가 새치기해서 따졌더니 원래부터 앞에 있었다고 오히려 화를 냈어요”

“영화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줌마가 혼자 서 있다가 입장할 때 되니깐 10명이 우르르 몰려와서 먼저 입장했어요”

버스·지하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놀이공원·영화관 문화생활을 즐길 때,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할 때,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등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항상 줄 서기 전쟁(?)을 치른다.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순서를 지키는 이유는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는 ‘새치기족’ 때문에 불편한 상황들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더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양보를 강요하고, 자신들의 편리함을 위해 저지른 생각 없는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줄을 못 본 건지, 못 본 척하는 건지, 줄을 설지 모르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급한 일이 있는 건지 그들의 파렴치한 행위에 기가 찰 노릇이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여의도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혁 기자

■ 새치기하며 되레 큰소리, 부끄러움 모르는 어른들

평일 오후 김주희(가명·33)씨는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광화문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 후 지하철이 도착해서 탑승하려는데 60대 보이는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새치기해서 먼저 탑승했다.

주희씨는 조심스럽게 “할머니, 제가 먼저 서 있었는데요”라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할머니는 주희씨를 노려보더니 “뭐라고? 뭐라고 했어?”라며 화를 냈다. 이에 주희씨가 재차 “제가 먼저 줄 서 있었다고요. 순서를 지키셔야죠”라고 말했는데 할머니는 “참 별나다 별나. 뭘 그런 걸 따져? 먼저 탈수도 있지”라며 막무가내였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50대 아주머니 두 분이 주희씨를 대신해 다시 할머니에게 따졌다. “우리가 봤는데 할머니가 새치기하셨잖아요, 어른이 어른답게 행동해야지. 나이만 먹었다고 다 어른인가요? 요즘 애들은 이런 거 다 지켜요. 우리 어른들도 지켜야지”라며 면박을 줬다.

그 후 할머니의 반응은 정말 가관이었다. 할머니는 “뭐라고? 나보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라며 육두문자를 쓰며 노발대발했다. 할머니는 지하철을 내릴 때까지 화를 주체하지 못했고, “다른 줄은 사람 한 명도 없었는데 거기서 타면 되지”라며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말에 친구들과 뷔페를 간 강형식(가명·32)씨는 초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인기가 얼마나 많은지 줄은 지그재그로 꼬여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형식씨 순서가 다가왔는데 갑자기 중년 부부가 그릇을 들고 주위를 맴돌았다. 눈치를 보던 중년부부는 형식씨가 음식을 뜰려고 하자 대뜸 끼어들었다. 이에 형식씨는 정중하게 “뒤쪽으로 가서 줄 서셔야죠. 뒤에 기다리는 사람 안 보이세요?”라고 말했다. 중년부부는 형식씨를 째려보며 자리에서 이탈했다. 그런데 잠시 후 주위를 계속 살피더니 기어이 더 앞으로 가서 새치기에 성공(?)했다.

형식씨는 “새치기를 하는 어른들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알 것 다 아시는 분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이어 “새치기도 습관인 것 같다”며 “제발 좀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운 줄 알고 반성하고 순서를 지켰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 새치기 대처법도 등장.. ‘노어른존’ 만들어야 하나?

새치기족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새치기에 대한 대응법도 있어 화제다. 유튜브에서 새치기를 검색한 결과, ‘새치기 응징’, ‘새치기 사이다’, ‘새치기 당했을 때’ 등 많은 콘텐츠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1년 전에 업로드된 ‘새치기 당했을 때 대처법’이 눈길을 끌었다. 조회 수 287만회를 기록한 이 영상은 새치기 대처법으로, ‘새치기에는 새치기로 대응’, ‘여러 사람의 동조를 이끌어 내며 대놓고 면박하기’, ‘새치기 불가능하게 줄을 타이트하게 서기’ 등이 있었다.

2,000개 이상 달린 댓글들을 살펴보면, “새치기는 너무 짜증 나고 치사해요”, “나이가 깡패다”, “새치기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새치기하면 싫어한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은 다양하지만 중장년층·노인들의 새치기가 특히 심하다. 이런 현상 때문에 노키즈존(영유아와 어린이를 동반한 고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곳)처럼 ‘노어른존’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채종민(가명·39)씨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무임승차를 하는 노인들의 새치기가 활발하고 눈에 띈다”며 “출퇴근 시간대에는 무임승차를 없애고 요금을 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100세 시대에 65세 이상은 더 이상 노인이 아닌 것 같다”며 “나이 드신 만큼 어른답게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014년 여행 가격비교 사이트 스카이스캐너는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여행자를 대상으로 ‘공항 에티켓’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여행객 10명 중 6명(62.7%)이 새치기를 가장 불쾌한 행동으로 꼽았다. 2017년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대중교통 출근길 꼴불견 유형’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새치기하는 사람(10%)’이 3위를 차지했다.

여의도의 한 구내식당.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혁 기자

■ 경범죄로 처벌 가능.. “나이는 벼슬 아냐, 기본 상식 지켜야”

새치기는 경범죄 처벌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제3조 36호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승차·승선, 입장·매표 등을 위한 행렬에 끼어들거나 떠밀거나 하여 그 행렬의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은 5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신고 방법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질서계 담당자는 “신고하는 사람도 없고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모르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법은 만들어져 있지만 생활질서를 책임지는 담당자조차 어떻게 처벌할 수 있는지 방법을 모르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젊은 사람은 무조건 양보해야 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 새치기를 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인데 모른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양보는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타인에 의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는 돈 내고 양보를 강요받고, 누구는 돈 안 내고 양보를 강요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기본을 지키면 꼰대 소리 듣지 않고, 최소한 중간은 간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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