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靑 명절선물에 담긴 '실세 코드'..왜 전북만 빠졌을까

강태화 2019. 1. 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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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의 ‘솔송주’, 전남 담양의 ‘약과’, 충북 보은의 ‘유과’, 강원 강릉의 ‘고시볼’.

청와대가 22일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사회 각계각층에 보낼 설 선물을 공개했다. 올해 설 선물은 경남 함양의 솔송주, 강원 강릉의 고시볼, 전남 담양의 약과와 다식, 충북 보은의 유과 등 우리나라의 전통식품 5종 세트로 구성했다. 청와대 제공

올해 설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1만여명에게 보낸 선물의 품목과 생산지다. 그런데 이들 농산물의 생산지는 공교롭게 정부의 실세로 불리는 인사들과 연관이 있는 지역이다.

솔송주를 납품한 경남의 도지사는 문 대통령의 측근인 김경수 지사다. 담양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이자, 현역 의원인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지역구다. 이밖에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김영록 전 농림장관도 전남 출신이다. 또 노영민 비서실장은 유과를 납품한 충북 출신이다.

김경수 지사는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남 함양 솔송주가 청와대 설 선물에 들어갔다”고 홍보했다. 그는 “솔송주는 조선 성종 시대 유학자인 일두 정여창 선생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온 술”이라며 “문 대통령도 당선 전에 정여창 고택을 두번 방문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농산물의 생산지와 특정 정치인은 아무 연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5일 “명절 선물은 농협에서 미리 태스크포스(TF) 팀을 구성해 비중국산, 무농약 등 다양한 조건들을 만족시키면서 1만여개에 달하는 물량을 감당할 수 있는 품목을 정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청와대가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은 맞지만 품목 선정은 사실상 농협 주도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개입이 들어가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농협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한 조직은 아니기 때문에, 선물 선정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의 민원이 반영됐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1일 청와대 연풍문에 개설된 추석맞이 직거래 장터를 찾아 선물세트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선물의 가격은 10만원 남짓이다. ‘김영란법’이 개정되면서 농산물로 구성된 선물의 상한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선물이 4~5개 품목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단순 계산상 품목당 가격은 평균 2만원 정도다. 선물 수량이 1만개가 넘기 때문에 선물로 지정된 해당 지역의 농가는 품목당 2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들어 선정됐던 2017년 추석 이후 과거 3번의 명절 선물은 어땠을까?

청와대는 2017년 9월 추석 선물로 경기 이천의 햅쌀, 강원 평창의 잣, 경북 예천의 참깨, 충북 영동의 호두, 전남 진도의 흑미를 보냈다.

2017년 추석 선물. 선물세트는 진도 흑미, 이천 햅쌀, 영동 호두 등 총 5가지 곡물로 이루어졌으며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친필 사인이 들어가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경기도에는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군으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있다. 전남 진도는 김영록 당시 농림장관(현 전남지사)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다. 또 당시는 주중대사이던 노영민 실장이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충북지사로 출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던 시기였다.

2018년 2월 설 선물은 경기 포천에서 만든 강정과 경남 의령에서 만든 유과, 전남 담양의 약과, 충남 서산의 평강, 강원 평창의 감자술로 구성됐다.

지난해 청와대의 설 선물. 청와대 사진기자단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던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의 출마 예정지에서 생산한 제품이 눈에 띈다. 충남은 안희정 전 지사에 이어 박수현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출마 예정지였다. 이개호 장관의 지역구인 담양은 2년 연속으로 선물 품목에 포함됐다.

2018년 9월 추석에는 섬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으로만 구성했다. 제주의 오메기술, 울릉도의 부지갱이, 전남 완도산 멸치, 경남 남해도산 섬고사리, 강화도에서 만든 홍새우 등이다.

지난해 청와대 추석 선물은 제주도의 오메기술을 대표 품목으로 울릉도 부지갱이, 완도 멸치, 남해도 섬고사리, 강화도 홍새우 등 섬마을에서 친환경적으로 생산되는 농·수·임산물 5종으로 구성됐다. 청와대 제공

섬지역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김영록 전 농림장관의 옛 지역구인 완도는 2년 연속으로 청와대 납품 품목에 들어갔다. 김경수 지사가 당선된 경남 남해도산 섬고사리와 김정숙 여사가 자랐던 강화도 홍새우 등도 눈에 띈다. 문 대통령은 강화와 관련 과거 선거 유세 때 “(나는) 인천의 사위다. 아내가 강화도 출신”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4차례 청와대가 선별한 명절 선물의 구성품에는 한가지 의문점이 더 있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이 포함됐지만, 유독 전북산 품목이 한 번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현 여권에선 전북 출신 인사 중 유력하게 부각된 정치인이 드물다.

이정도 총무비서관이 지난해 '설연휴 내수 활성화 및 나눔행사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문재인 대통령 내외의 이름으로 발송할 설 선물세트를 선보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관계자는 이와 관련 “과거에 전북산 품목을 넣으려고 했었는데, 농협이 ‘전북에서는 1만여개에 달하는 물량을 댈 품목을 구할 수 없다’고 보고해 선물 품목에 포함시키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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