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 브렉시트'땐 국경 부활.. 아일랜드 '피의 충돌' 우려

파리/손진석 특파원 2019. 1. 2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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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드커 총리 "협상 실패땐 북아일랜드와의 국경에 군대"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가 자국 국경에 군대 배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버라드커 총리는 25일(현지 시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이 실패할 경우에 대한 질문에 "최악의 경우 20여년 전처럼 북아일랜드와의 국경을 군대와 경찰이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 언론은 그의 발언이 북아일랜드를 둘러싼 '피의 역사'를 상기시킨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아일랜드가 다시 유럽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 아일랜드섬에서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사이의 국경은 사실상 없다. 같은 EU 국가라 사람과 물품의 제약 없는 이동이 가능하다. 499㎞에 달하는 북아일랜드 국경으로 275개 도로가 관통한다. 매일 국경 너머로 출퇴근하는 사람만 3만명에 달한다. 양국의 국경이 이렇게 평화로운 것이 오래된 일은 아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갈등은 16세기 아일랜드를 침략한 잉글랜드 왕 헨리 8세가 북아일랜드 지역에 신교도들을 대거 이주시키면서 본격화됐다. 잉글랜드에서 넘어간 신교도들과 가톨릭계 구교도 원주민들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아일랜드가 1949년 영연방에서 완전 독립할 때 전체 32개 주(州) 중에서 신교도 세력이 주류인 북부 6개 주가 영국령으로 남는 쪽을 택하면서 현재의 국경이 확립됐다.

1960년대 후반부터 북아일랜드에선 구교도와 신교도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특히 1972년부터는 '내전(內戰)'을 방불케 했다. 그해 1월 영국군이 시위를 벌이는 구교도 측 시민들에게 발포해 14명이 숨지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졌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6개월 후 북아일랜드를 아일랜드와 통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장 투쟁 조직 IRA(북아일랜드공화국군)가 일으킨 폭탄 테러로 9명이 사망하는 '피의 금요일' 사태가 발생했다.

유혈 충돌은 1998년 영국과 아일랜드가 벨파스트 협정을 맺은 이후에야 간신히 봉합됐다. 벨파스트 협정에서 영국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자유로운 통행과 무역을 보장했고,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6개 주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후 양국 국경선은 평화를 찾았다.

하지만 영국과 EU가 '이별' 조건에 합의하지 못하는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오는 3월 29일 양국 사이에 강력한 국경선, 이른바 '하드 보더'가 등장한다. 하루아침에 통행인에 검문이 실시되고, 물품엔 관세가 부과된다.

하드 보더가 생길 경우 잠재돼 있는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북아일랜드 주민 중 가톨릭계를 중심으로 약 20%는 아직도 아일랜드인 정체성을 유지하며 아일랜드섬의 통일을 원한다. 물리적 국경이 부활해 이들이 '조국'을 마음대로 넘나들지 못하면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우려한 EU, 영국, 아일랜드는 그동안 '하드 보더'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안전장치(backstop)'라고 부르며 대안을 모색해 왔다. 하지만 묘수가 없다. 궁여지책으로 지난해 11월 EU와 영국은 2020년 말까지 영국이 EU의 관세동맹에 잔류해 지금처럼 자유 통행과 무관세를 유지하고, 추후 협상하자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영국 내 보수파는 안전장치가 영국의 주권을 침해한다며 강하게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EU와 타결한 브렉시트 합의안을 지난 15일 영국 의회가 부결시킨 핵심적인 이유다.

갈등의 조짐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지난 19일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런던데리에서 차량 폭발 테러가 발생했다. 사상자는 없었지만 경찰은 IRA의 후신인 NIRA(뉴 IRA)가 배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27일 "영국 정부 관계자들이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해 극심한 혼란이 있을 경우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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