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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 마두로 최대 정적 과이도 잉태시킨 바르가스 참사는?

배준용 기자 입력 2019.01.29.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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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을 선언한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돌이킬 수 없는 정적(政敵) 관계가 됐을까. 프랑스 국제 보도 채널 '프랑스24' 등 외신들은 '바르가스 참사'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과이도의 측근들은 "과이도가 바르가스 참사를 겪고서 우고 차베스와 그의 후계자 마두로에 반대하는 정치투쟁에 뛰어들었다"고 말한다.

바르가스 참사는 베네수엘라 북부 바르가스주의 주민 3만여명이 단 3일 만에 목숨을 잃은 베네수엘라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다. 1999년 12월 14일부터 3일간 바르가스주에 910㎜에 달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1년 평균 강수량에 해당하는 비가 3일 새 내리자 해발 2000m 산악지대에서 형성된 급류와 토사가 주민들이 모여 사는 해안지대를 덮쳤다. 대형 산사태까지 겹치면서 수만명이 흙더미에 깔려 숨졌다. 최고 12m 높이 토사가 쌓여 몇몇 마을은 통째로 사라졌다.

당시 집권 1년 차였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은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구조 인력을 받겠다"며 국제사회에 원조를 요청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군인 수십여명과 헬기를 사고 현장에 투입해 인명 구조 활동을 벌였다. 미국은 "미 해병대 450여명과 해군 엔지니어를 추가로 파견해줄 수 있다"고 했고, 베네수엘라 국방장관도 이를 수락했다.

그런데 차베스는 돌연 미국의 추가 지원을 거절했다. 훗날 베네수엘라 국방장관은 "차베스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의장과 통화한 후 미국의 원조를 거절하라고 지시했다"고 털어놨다. 외신들은 "차베스가 '미국의 원조를 받아들이면 반미(反美) 투사라는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가 훼손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르가스 참사를 심층 취재한 로리 캐롤 영국 가디언 기자는 "이후 차베스는 야당의 비난 등에 시달리다 재난 수습 문제에 아예 관심을 꺼버렸다"고 했다. 국제사회에서 전달한 수천만달러의 원조금도 이재민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캐롤 기자는 "참사 후 10년이 지나도록 수천명의 주민이 집을 잃은 노숙자 처지였다"고 했다. 과이도는 그 참사에서 살아남은 바르가스주 출신이다. 16세 소년 과이도는 목숨을 건졌지만 가족과 노숙 생활을 하며 이 과정을 다 지켜봤다. 대학 진학 후 과이도는 반(反)차베스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정당을 창당하며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차베스와 그를 이은 마두로 정권에 일관되게 맞서왔다.

과이도는 27일(현지 시각)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민주주의 복원에 동참하는 군인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마두로 지지를 선언한 군부에 회유책을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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