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꿈꿨던 K9폭발 생존자 "흉터, 나만의 색깔 됐다"

정아람 2019. 1. 2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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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펴낸 이찬호씨
"많은 걸 잃었지만 많은 걸 얻었다"
K-9 자주포 폭발로 화상을 입은 이찬호 씨가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누구에게나 흉터가 있습니다. 그 흉터를 숨기기보다는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2017년 8월 군대 훈련 도중 K-9 자주포 폭발로 전신 화상을 입은 이찬호(25) 씨가 덤덤하게 자신의 꿈을 밝혔다.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엔 죽음을 극복한 사람 특유의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크게 다친 당시 폭발사고에서 그는 생존자 중 가장 심한 전신 55%의 화상을 입었다. 당시 병장이었던 이 씨는 제대를 8개월 앞두고 있었다.

증학교 3학년 때부터 배우를 꿈꿔 왔던 이찬호 씨. 오른쪽 사진은 사고 직후 모습. [사진 연합뉴스]
폭발 사고가 발생하고 1년 반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어느새 상처를 극복하고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으로 이 씨는 최근 포토 에세이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새잎)를 펴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책 출간을 위한 비용을 모금했고, 목표 금액의 226%(1133만3777원)가 모였다.
책 표지
최근 서울 순화동에서 만난 이 씨는 "책 출간으로 그동안 도와주신 많은 분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며 "책의 수익금은 모두 화상 환자 등에게 기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책은 사고 이후 이 씨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신체와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담았다. 이 씨는 생사를 넘나들다가 다섯번 대수술을 통해 극적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

이 씨는 "치료를 받는 동안 나에게 새로운 일들이 너무 많이 펼쳐져서 잊으면 안 될 것 같아 기록하기 시작했다. 신체가 달라지고 나니 세상에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더라. 나중에 시간이 지나 이러한 기억이 모두 사라지면 후회할 거 같아 적어놓은 글들"이라고 소개했다.

힘든 시간을 기록하기보다 잊고 싶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물론 그럴 때도 잦았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나는 기록을 택한 거 같다. 기억함으로써 잊는 방법도 있다. 안 괜찮은 걸 인정하니 괜찮아졌다"고 했다. 이어 "사고가 일어난 뒤에도 K-9 자주포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고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사고로 이 씨가 잃은 것은 건강한 신체뿐이 아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을 당한 이후 10여년간 꿈꿔왔던 배우의 꿈 역시 폭발음과 함께 사라졌다. 이 씨는 "배우가 되기 위해 그간 운동도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했다. 폭발이 일어난 직후 의식이 온전치 않은 상황에도 이루지 못한 배우라는 꿈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인터뷰에서 이찬호 씨는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씨가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가족이었다. 24시간 곁을 지키며 간호해준 형과 부모님, 주변에서 많은 힘이 되어준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에게 고마운 빚을 졌다는 사실이 그를 버티게 한 힘이 됐다.

'살아있다'는 사실도 그를 일어서게 했다. 사고를 당하고는 계절 변화 등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도 다시 바라보게 됐다. 피부가 약해져서 날씨나 환경 변화에 민감해진 탓도 컸다. 이 씨는 "과거에는 몰랐는데 내가 숨이 붙어 있고, 많은 사람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소중해졌다"고 했다.

당시 절절한 기억들은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씨는 모진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극복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책에 남긴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이야기" "피부는 재생할 수 없지만 난 재생 중이다" "많은 걸 잃었지만 많은 걸 얻었다"는 고백이 이에 해당한다.

한술 더 떠 이 씨는 "폭발 사고로 남들이 갖기 힘든 흉터를 갖게 되면서 나는 오히려 나만의 색깔을 찾은 거 같다.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싶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그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fire_charisma'다.

촬영 도중 당당히 흉터를 보여주고 있는 이찬호 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찬호 씨는 "흉터로 인해 지금은 나만의 색깔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고 이후 많은 것들을 견뎌냈지만, 사실 그는 아직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다. 터널이나 엘리베이터 등 밀폐된 공간에서 엄청난 불안감을 느낀다. 또한 폭발음이나 물체가 터지는 형상에도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다. 가장 심각한 것은 극심한 불면증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한다.

인터뷰에 동행한 이 씨의 형 이윤호 씨는 "동생이 사고 이후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행동에 옮긴다. 아마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경험해봐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의 힘겨운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상 상처는 회복이 더뎌 앞으로도 2~3년 동안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한다. 당장 다음 달 25일 손가락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피부 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 씨는 "사실 고민이 많다. 앞으로 몇 년을 병원에서 보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30대가 된다. 몸이 어느 정도 괜찮아진다 해도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이찬호 씨는 지난 26일 서울 상계동에서 연탄 1000장을 나누는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상계동 골목길에서 연탄을 나르고 있는 이찬호 씨. [사진 연합뉴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자 "사고 이후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봉사활동을 할 생각"이라며 "이제는 먼 미래를 내다보기보다는 가까운 시일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씨는 지난 26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사비로 마련한 연탄 1000장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이날 연탄 나르기에는 이 씨뿐 아니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중사와 지뢰제거 작업 도중 지뢰 폭발로 시력을 잃은 김상민 씨 등도 함께했다. 이들은 이 씨가 사고를 당한 뒤 알게 된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의 다음 목표는 흉터를 당당하고 아름답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에게 흉터는 하나의 예술이 됐다.

"흉터가 흉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에겐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상처가 있습니다. 상처가 아문 흔적이 바로 흉터입니다. 앞으로 사진전 등을 통해 흉터를 예술로도 승화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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