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할머니, 마지막 사력 다해 분노.."끝까지 해달라"

이해진 기자 2019. 1. 2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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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서 김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과 여성인권운동가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윤 대표는 "할머니께서 어제 오전 극심한 통증에 진통제를 투약받고 주무시다가 갑자기 눈을 부릅 떠 수많은 말씀을 하셨다"며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일본에 대한 강한 분노, 그 어느때보다도 절규에 가까운 분노를 표현하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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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일 운구 차량, 일본 대사관 앞 지날 예정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빈소가 마련되고 있다./사진=뉴스1

"할머니가 마지막 순간 절규에 가까운 분노를 말하셨다.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 일을) 끝까지 해달라고 하셨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서 김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과 여성인권운동가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윤 대표는 "할머니께서 어제 오전 극심한 통증에 진통제를 투약받고 주무시다가 갑자기 눈을 부릅 떠 수많은 말씀을 하셨다"며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일본에 대한 강한 분노, 그 어느때보다도 절규에 가까운 분노를 표현하셨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의사 진단으로는 장기가 쇄약해져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박동도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이마에 송글 땀이 맺힐 정도로 온 사력을 다해 말씀하셨다"며 "이후 나시 눈을 감고 진통을 거듭하시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평온한 모습으로 운명하셨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김 할머니가 강한 여성인권운동가의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윤 대표는 "2018년 1월5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대장암을 발견해, 큰 수술을 하시고도 유엔 다니고, 미국에 다니며 26년 동안 일본 정부를 향해 외치던 '사죄하라', '배상하라'는 메시지를 전하셨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일 외에도 다양한 평화 인권 운동과 기부에 적극적이었던 할머니를 기리기도 했다.

윤 대표는 "나중에는 복막암이 간으로, 위로, 온몸에 퍼져 정말 고통스러워하시면서도 포항 지진에 1000만원, 콩고 우간다 전시성폭력피해자에 5000만원, 재일조선학교 5000만원 등 여러 번 재산을 내어놓으시고 마지막 통장에 160만원을 남기셨다"고 말했다. 이어 "장례는 아마 국민이 치러주실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모두 털어 내놓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장례는 할머니 생전 바람대로 시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할머니의 운구차량은 2월1일 발인날 일본 대사관 앞을 거쳐 서울 추모공원으로 향한다.

윤 대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 전 장례는 시민장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며 "내일 수요집회를 마친 뒤 할머니 운구차량이 일본대사관 앞, 할머니 한이 서렸던, 일본대사관 앞에서면 '사죄하라', '배상하라'는 할머니의 생전 목소리를 시민들과 다같이 내려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 전에도 수요집회에 못 가서 어떻게 하냐고 했는데, 그날 기자, 학생 어느 누구 구분 없이 할머니는 보내는 나비가 돼 거리에 서자"며 "그날 그 목소리, 역사, 그 삶을 우리가 함께 기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 거리로 나가 시민들을 만난 김 할머니는 성폭력 피해자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호소해 왔다. 1992년 1월8일 첫 발걸음을 뗀 수요집회는 올해로 27주년을 맞았다.

29일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전날 오후 10시41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93세.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김 할머니의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진행되며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월1일 금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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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기자 hjl1210@, 이지윤 기자 leejiyoon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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