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IT 대장'을 친 미국..FBI 국장 "화웨이 뻔뻔하다"

심재우 2019. 1. 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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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고위 무역협상 직전 화웨이 기소
법무부 "금융사기·기술절취 혐의"
화웨이·협상 묶는 트럼프 양동작전
中, 압박 느낄지 박차고 나갈지 변수

전광석화와 같은 ‘한방’이었다. 미국이 중국과 고위급 무역협상을 앞두고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이자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를 전격 기소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이 구사할 수 있는 ‘양동작전’이라는 분석이다.

또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에서 앞서가고 있는 화웨이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영국·호주·뉴질랜드 등 동맹국에 화웨이 장비 사용을 자제할 것을 촉구해왔는데, 이번 기소로 화웨이의 부정행위 논란을 공식화 할 수 있게 됐다.

미 법무부는 28일(현지시간) 금융사기와 기술절취 등 혐의로 화웨이와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부회장을 기소했다고 AP통신을 비롯한 외신들이 보도했다. 캐나다에서 가택연금 상태인 멍 부회장에 대해선 이미 캐나다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상태이다.

중국 광둥성에 위치한 화웨이 리서치개발센터. [AP=연합뉴스]

기소 대상은 화웨이와 멍 부회장을 비롯해 홍콩의 화웨이 위장회사로 알려진 ‘스카이콤 테크’(Skycom Tech), 미국에 있는 ‘화웨이 디바이스 USA’ 등 2개 관계회사가 포함됐다.

이란에 장비를 수출하기 위해 홍콩의 위장회사를 활용해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하고, 이란과의 거래를 위해 2개 관계사와 그 실체를 의도적으로 감춘 은행 사기 등 혐의다. 여기에 멍 부회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미 통신업체인 T모바일의 로봇 기술을 절취한 혐의도 포함됐다. 사람의 손가락을 흉내 내고 스마트폰을 테스트하는 ‘태피(Tappy)’ 로봇 공장을 찾은 화웨이 엔지니어들이 이 기술을 훔쳤다는 것이다.

미 법무부는 “화웨이가 경쟁사들로부터 기술을 빼내는 데 성공한 직원들에게는 ‘보상’을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면서 “이는 악의적인 직원에 국한된 혐의가 아니라 회사 전체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은 미국 기업과 금융기관을 부당하게 이용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글로벌 시장을 위협하려는 화웨이의 뻔뻔하고 지속적인 행태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언젠가는 미국이 화웨이를 기소하고 멍 부회장의 신병을 캐나다에서 인계받을 것으로 전해졌지만, 그 시점이 미ㆍ중 고위급 무역협상을 진행하기 이틀 전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당연히 협상의 악재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오른쪽)가 지난달 12일(현지시간) 경호원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의 한 보호관찰소에 도착하는 모습. [AP=연합뉴스]

게다가 멍 부회장에 대한 기소와 함께 신병 인도 요청은 중국의 강력 반발이 당연시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캐나다 정부가 미국 요청으로 멍 부회장을 체포했을 때 중국 정부가 그의 석방을 요구하며 강력히 반발했으나, 캐나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양국 외교 관계가 극도로 악화했다. 중국에서 잡힌 캐나다 마약범에게 속전속결로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저의는 무엇일까. 왜 장관급 무역협상이 열리기 이틀 전 무리수를 둔 것일까.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이날 “화웨이에 대한 법 집행은 중국과의 무역협상과는 완전히 분리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지만 T모바일과 관련된 기술절취 혐의가 바로 무역협상에서 분명한 이견을 보이는 구조적 문제의 주요 이슈라는 점에서 두 사안을 연관 짓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화웨이 기소를 무역협상의 카드로 활용하려 한다는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 통신은 “화웨이 사법처리와 미국의 무역협상 요구는 별개의 트랙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중국이 기술 강호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반드시 국제통상 규정과 법을 지키도록 압박한다는 점에서 목표가 같다”고 해설했다.

미ㆍ중은 30일부터 이틀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류허(劉鶴) 부총리가 양국의 우두머리로 나와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윌버 로스 상무장관,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ㆍ제조업 정책국장이 협상팀에 포함됐다. 협상 장소는 백악관 내 아이젠하워 빌딩으로 결정됐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류허 부총리를 면담할 예정이다. 화웨이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 류 부총리와 악수를 노리는 양동작전인 셈이다.

지난 베이징 차관급 협상에서 중국이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미국산 제품을 대거 수입하기로 하면서 일부 진전을 이뤘으나 미국이 요구한 보조금 삭감, 지식재산권 침해 및 기술 강제 이전 중단 등 핵심쟁점을 둘러싼 이견은 여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에 대한 기소가 중국을 압박할지, 또는 중국이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게 될지 주목되는 배경이다.

중국은 이미 미국을 위해 제도개선과 시장개방 등 구체적인 조처를 했다는 입장이다. 자동차나 금융 서비스 분야의 경우 외국의 경쟁자들을 위해 보다 자유로운 규칙을 만들었고, 지식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강화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또 미국의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글로벌에 중국 업체와 파트너 관계를 맺지 않고 독자적으로 신용평가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면허를 내주기로 했다. 할 만큼 했는데도 미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화웨이를 억압하면서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은 28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상당한 진전을 기대한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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