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손혜원의 '선의'에 의심이 가는 이유

김영화 입력 2019. 1. 29. 19:03 수정 2019. 1. 29.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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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의원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마친뒤 국회를 나서고 있다. 고영권 기자

결말이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2011년 8월 곽노현 당시 서울시교육감의 후보 매수 의혹 사건이다. 곽 교육감이 2010년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후보직을 사퇴한 박명기 당시 후보에게 2억원을 사후에 건넸다는 게 사건의 골자다. 곽 교육감은 박 후보가 선거 때 많은 빚을 져 자살까지 생각한다는 얘기를 듣고 ‘선의’로 도와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럴 법도 했다.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곽 교육감이 대가 제공을 단호히 반대했으며, 실무진들이 선거 비용 변제를 약속하고도 이를 곽 교육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증언이 꽤 나왔다.

하지만 제 아무리 진보적 법학교수 출신의 말이더라도 그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박 교수의 사퇴로 결국 곽 교육감이 당선되는 이익을 누렸지 않느냐는 계산법이 더 확실했다. 2억원 가운데엔 일부라도 후보 매수의 성격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 쪽으로 여론의 무게추가 기울었다. 대법원에서의 최종 결론은 징역 1년형 선고.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의는 증명할 방법이 없고, 남들도 잘 믿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선의가 마지막 기댈 구석이라면 무능함의 고백에 다름 아니라고.

정치의 세계로 넘어 오면 선의의 약발은 더 떨어진다. 아예 선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종교인이나 시민단체 활동가는 선한 의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정치인은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이를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로 구분하고, 정치인은 책임윤리도 함께 갖춰야 한다고 했다.

목포 구도심 건물을 배우자 재단, 친척, 보좌관 및 그 가족이 사들여 논란의 중심에 선 손혜원 의원은 “왜 내 선의를 몰라주냐”는 식의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투기가 사실이면 “목숨을 걸겠다” “전 재산을 걸겠다”며 핏대를 세우고, 상대당 의원을 향해 “배신의 아이콘”이라고 독설 퍼붓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밤이 되면 인적조차 드문 목포 구도심에서 근대 목조건물의 가치를 발견하고 나전칠기박물관을 세워 도시를 재생하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었던 거 같다. 박물관 부지로 구입했다는 건물도 한때 20여채까지 숫자가 늘어났으나 강남의 고가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는 게 사실이다. 투기 딱지를 붙이는 것은 과해 보인다.

하지만 문화재를 향한 그의 열정과 선의를 이해한다고 해도 국회의원으로서 이해충돌 회피 의무는 안중에도 없던 행위까지 용인되는 건 아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위 간사인 그는 이미 목포를 박물관 부지로 점 찍고, 지인들이 그곳에 건물을 매입한 상황인데도 목포 목조건물 지원을 위한 예산 증액을 요청했다. 그러고선 어차피 목포시에 기증할 박물관 부지인데 뭐가 문제냐 반박하고, 누군가는 먼저 목포의 가치를 알려야 했다는 논리로 포장한다. 하지만 당장 전주한옥마을, 서울의 서촌ㆍ북촌, 최근 뜨는 익선동까지 도시재생이 가져오는 지가상승 효과를 그와 지인들이 몰랐을 리 없다는 게 세간의 시선이다.

그의 ‘선의’ 주장이 의심의 꼬리표를 떼어놓을 수 있을까. 나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선의를 확실히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아예 이해충돌을 막자는 논의가 생겨난 건데, 손 의원은 그 선을 과감히 넘어버렸다. 기자간담회에서도 이해충돌 질문이 나오자 “지겨워서, 그 얘기는 못하겠다”며 여전히 오불관언이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 나전칠기 매입을 종용하고 지인인 나전칠기 장인의 딸을 채용하라고 압력을 넣은 건 문화재 열정 차원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손 의원은 자신의 선의가 피감기관에겐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 봤을까. 혹여 공무원들이 자기 앞에서 굽실대며 항변조차 못했던 게 대통령 부인과 중ㆍ고교 동창이라는 배경 때문은 아니었을지 고민해봤을까. 손혜원 이슈의 남은 반쪽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문제에 답하지 않고 문화재를 향한 열정과 선의를 앞세워 억울함만 호소한다면 정치인은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이다.

김영화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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