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표 4000억 박물관 사업, 하루 관람객 40명.. 25명..

이해인 기자 2019. 1. 3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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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도시 서울' 프로젝트 13곳 중 3곳 개관.. 시민들 외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는 국내 봉제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있다. 서울시가 27억원을 들여 지난해 4월 개관한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를 박물관 도시로 만들겠다며 추진하는 박물관 13곳 중 하나다. 서울지하철 동대문역에서 내려 창신시장을 지나 오르막길을 10여 분간 지나야 나온다.

주말인 지난 12일 오후 주요 전시실인 2층에선 셔츠를 만드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10여 분 재생 시간 동안 관람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박물관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5)씨는 "의상 디자인 공부에 도움이 될까 해서 왔는데 볼 만한 게 없다"며 "찾아오기도 쉽지 않은 이런 곳에 왜 박물관을 지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말인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에서 해설사 혼자 텅 빈 전시실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4월 약 27억원을 들여 박물관을 열었으나 관람객은 하루 평균 40여 명에 불과하다. /오종찬 기자
이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백남준기념관도 관람객이 적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미디어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지만 생전 영상을 틀어놓을 뿐 변변한 미디어아트 작품이 없다. 이날 두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은 각각 40명, 25명에 그쳤다.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는 4000억원 규모의 '박물관 도시 서울'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 2011년 취임 후 "서울 시민의 일상에 숨어 있는 문화 자원을 발굴해 가치를 부여하겠다"며 박물관·미술관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공예박물관, 한식박물관, 민요박물관, 로봇과학관, 사진미술관,한양도성박물관, 우리소리박물관 등 13곳을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미 개관한 박물관은 콘텐츠가 부족하거나 위치상 찾아가기 불편한 곳에 있어 시민들이 외면한다. 개관 예정인 박물관은 전시품이 충분치 않거나 서울시의회 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박물관은 추진 단계에서부터 무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시가 1800억원을 들여 종로구 안국동 풍문여고 부지에 짓고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은 일찌감치 '공예품 없는 공예박물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시는 2017년 유물 4000점을 수집하겠다며 예산 72억원을 편성했지만 고작 600점을 수집하는 데 그쳤다. 시 관계자는 "조상이 쓰던 물건을 가져와 공예품이라며 구매해달라는 경우가 많았다"며 "박물관에 넣을 만한 수준의 유물을 찾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박물관은 지난해 별세한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이 평생 모은 자수 5000점을 기증하면서 유물 8400점을 가까스로 모았다. 공예박물관이 아니라 자수박물관이 된 것이다. 개관 일정도 지난해 9월에서 오는 2020년 5월로 1년 반이나 늦춰졌다.

시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수년째 표류하는 박물관도 있다. 시가 한식박물관으로 조성하려는 성북구 삼청각이다. 시의회는 2017년 말 "역사가 유구한 삼청각을 단순히 한식박물관으로 쓸 수 없다"며 "다른 방안을 고려하라"고 했다. 결국 2018년 시의회 예산 심의에서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그럼에도 시가 계속해서 한식박물관을 고수하자 올해도 예산이 전혀 배정되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시의회에서 예산이 통과되지 않아 용역조차 못하고 있다"며 "언제 개관하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가 무리하게 박물관을 추진하면 세금 수천억원이 낭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에는 이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서대문구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등 박물관 109곳이 있다. 미술평론가인 하계훈 한국예술경영학회 부회장은 "서울시의 13곳 박물관 짓기 프로젝트는 전형적인 공급자 위주의 정책"이라며 "무조건 수를 늘리려다 보니 시민들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민요박물관, 봉제역사관 같은 것들이 세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박물관을 우후죽순 새로 세우는 것보다 있는 박물관을 내실 있게 운영할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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