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자초한 민주노총, 리더십도 대안도 없었다

이효상 기자 2019. 1.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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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불참하기로 했다. 정확히는 참여와 불참에 대해 아무런 결론을 내놓지 못함으로써 불참을 ‘유지’하는 셈이 됐다. 10시간 동안 이어진 격론에서 1000명의 대의원은 “민주노총의 주체적 결정”을 강조했지만, 정작 민주노총은 수동적 결론을 받아 들었다.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에 의지를 보이던 집행부의 좌절은 둘째치고, 불참 이후의 대안도 뚜렷이 제시되지 않았다. 민주적 의사 개진만 있을 뿐, 설득과 조정은 없는 지도력의 부재 속에 민주노총은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노총은 28일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정기 대의원대회를 열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여부를 묻는 세 건의 수정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모두 부결됐다. 집행부가 마련한 사회적 대화 참여를 골자로 한 원안은 표결에 부치지도 못했다.

대회장에서 일부 대의원들은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을 경사노위에 불참해야 하는 이유로 언급했다. 민주노총 내부도 불참 결론의 배경을 ‘정부 불신’에서 찾고 있는 듯 보인다. 공공운수노조는 29일 논평을 내고 “이번 결과는 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해왔던 정부·여당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고 했다.

하지만 ‘엄중한 경고’로 뜻이 모아진 것도 아니란 게 문제다. 대회에는 정부 불신을 전제한 ‘전면 불참안’과 ‘조건부 불참안’이 각각 상정됐다. 정부·여당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는 이 중 한 안건이라도 가결시켜야 했지만, 두 안건은 각각 34.6%, 38.7%의 찬성률로 과반이 되지 않아 부결됐다. 이후 상정된 ‘조건부 참여안’마저 44.1%의 찬성률로 부결되자 장내는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술렁였다.

이도 저도 아닌 결론이 나오면서 민주노총 내부의 분열과 지도력 부재가 노출됐다. 세 가지 수정안이 모두 부결된 이후에도 회의는 1시간여 공전했다. 일부는 “수정안이 모두 부결됐으니 집행부 원안을 표결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쪽에서는 “ ‘조건부 참여안’이 부결됐으니 원안에 대한 판단도 이미 끝났다”고 맞섰다.

■ 민주노총 리더십 위기

김명환 위원장은 우왕좌왕했다. “원안을 포기한다고 말씀드린 적 없다”고 했다가, 정회 뒤에는 “원안을 표결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 집행부의 원안이 올해 사업계획서에 포함돼 있어 사업계획서까지 동반 부결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회 전부터 “집행부가 경사노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사업계획서에 끼워넣기식 꼼수를 썼다”는 비판이 나온 터다. 원안이 표결됐을 경우 집행부에 대한 재신임 투표로 비칠 가능성도 우려한 판단으로 해석된다. 사태를 봉합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집행부가 사퇴압력에 노출되지 않는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다.

새벽까지 1000명에 가까운 대의원이 참여하는 토론의 장을 열고도, 불참 이후의 항로를 노정하지 못한 것 역시 뼈아픈 대목이다. 주체적으로 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했더라면 자연히 뒤따랐을 불참의 이유와 사후 대책을 민주노총은 이제부터 찾아가야 한다. 김 위원장은 산회를 선포하기 직전 “사업계획을 새로 만들어서 임시 대의원대회를 소집하겠다. 투쟁을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이제 김 위원장은 ‘조건부 불참안’에 포함돼 있었지만 부결된 ‘2월 총력투쟁’을 향해 조직을 추슬러 나가야 한다. 그 투쟁이 지난날 김 위원장이 공언한 ‘2월 총력투쟁’은 아닐 것이다. 당시 그는 경사노위 참여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교섭과 투쟁의 선순환”을 이야기했다. 이제는 얼마나 뜻을 모을지 알 수 없는 장외투쟁만이 유일한 카드로 남았다.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지렛대 삼아 거리를 좁혀가던 대정부 관계도 경색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대회는 민주노총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내부가 정부에 대해 최소한 3가지 이상의 입장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일시적이나마 하나로 조정하는 능력은 부재함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민주노총과는 대화로 뭐가 되지 않는다(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발언이 재현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민주노총 스스로 노사정 대화를 단절하고 고립을 자초한 것으로 정부가 향후 사회적 대화의 노동계 파트너로 한국노총을 선택한다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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