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 녹취는 인격권 침해

마석우 2019. 1. 3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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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95] 유명 언론인이 연루된 폭행 사건이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워낙 유명한 언론인이 당사자이다 보니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개중에는 기사를 가장한 흥미 본위의 이야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사건은 폭행 의혹 사건이다. 핵심은 '그 유명 언론인이 함께 식사하던 프리랜서 기자의 얼굴을 몇 번 폭행했는지 여부'다. 바로 피해자인 기자가 경찰서에 신고한 피해 내용의 진위 여부가 이 사건의 중심이고 핵심이다.

그런데 문제는 범행 장소에 단 두 사람만 있었다는 점이다. 가해자로 지목되는 사람과 피해자 단 두 사람만 있고 목격자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두 사람의 상반된 진술 가운데 어느 것이 진실인지 확인해 줄 제3자가 없다는 말이다. 마침 식사 장소이자 범행 장소는 CCTV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장소였다. 물증도 없다.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 피해 사실의 진위를 직접적으로 밝힐 수 있는 증거가 없는 상황이므로 이제 부수적인 정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두 사람의 그간의 관계, 그 식사 자리는 어떻게 해서 이뤄진 것인지, 범행 직전과 직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을 따져서 상대적으로 누구 말이 더 진실에 부합하는지를 가려야 한다. 물론 이와 같은 간접적인 사실, 정황 사실 역시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쯤 해서 보자. 현재 유일하게 제시된 게 피해자 측 녹취 파일이다. 이 녹취 파일에 수록된 대화를 들어보면, 그 언론인이 기자를 때렸다는 진술에 부합하는 듯하기도 하고 '정신 좀 차리라고 손으로 툭툭 건드린 것이 전부'라는 언론인 측 진술에 부합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똑 부러지는 내용이 없기에 아마도 수사기관은 이 녹취 파일 역시 하나의 간접 증거로 놓고 다른 여타의 증거를 수집하여 폭행 여부를 판단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 녹취 파일 속엔 그 유명 언론인의 음성이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다. "폭행 사실 인정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 그 음성, 음색, 강약 그대로, 그 사람의 인격을 가늠하게 하는 모든 음성 정보가 담겨 있다. 음성은 인격을 징표하는 정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의 가치를 징표한다.

이러한 정보 가운데 유튜브를 통해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두 사람 간의 대화,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항이 언론을 통해 검증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누구라도 접근이 가능한 매체를 통해 공개되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첫째, 아무리 대화자 사이의 내용일지라도 상대방 동의를 받지 않고 무단 녹취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일까?

둘째, 아무리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인격권을 침해하여 얻은 증거를 수사기관이든 법원에 제출하는 것이 맞는 걸까? 인권 보호를 또 하나의 사명으로 하는 법원으로서는 증거로 채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셋째,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무단 녹취자를 형사 처벌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민사적인 책임을 지울 수는 있지 않을까?

대화를 무단 녹취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이 있긴 하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이를 공개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대화 내용을 제3자가 녹음했을 경우를 상정한 것이고 대화자 가운데 한 사람이 녹음한 경우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다. 흔히 전화 통화를 하며 상대방과 대화한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하는 것은 문제 안 된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형사처벌 규정이 없으니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 형사적으로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격권 침해라고 하는 위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사람에게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국가로 하여금 이를 보장하도록 명하고 있다. 헌법은 제17조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도 하다. 무단 녹취 행위는 한 사람의 인격권과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다. 다만 형사처벌 규정이 없기에 처벌받지 않을 뿐이다.

만일에 그 유명 언론인이 통상적인 경우와 같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거나 화를 낸 경우라면 어땠을까? 그 사람이 평생 동안 쌓아올린 자신의 이미지, 외부적 인격이 속절없이 무너져 버리게 된다. 그게 옳은 일일까?

그렇다면 과감히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인격권을 침해하여 얻은 이 증거물을 증거로 채택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직 우리 법원이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다. 진실의 발견을 더 우위에 두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무단 녹취, 녹취한 녹음 파일의 무단 공개는 엄연히 인격권과 프라이버시권을 심각히 침해하는 행위다. 유튜브를 통해 과연 진실이 이렇구나라는 확인 용도로 우리는 그 언론인의 육성 음성을 듣게 되는지? 한 사람의 인격, 어떤 사람의 평소 이미지에 훼손이 가해질 수 있는 자료를 접하며 단순히 그것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무단 녹취를 하고 이를 공개한 사람에 대해 민사적으로는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손해배상을 청구를 할 수 있다. 하급심 판결 중에는 300만원까지 인정한 사례가 있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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