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리뷰] 日 억지 주장에도 국제사회는 '쿨 재팬'..언제 바뀌나

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2019. 1. 3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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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기 사건처럼 일본 잘못인데도 국제적 발언권 우위..日 적반하장 배경
미국내 '재팬 핸즈' 전문가 집단이 日 국익 대변..韓 공공외교는 시작 단계
군사대국 향한 日 도발적 행위 지속될 듯..단호하되 냉철한 접근법 필요

■ 방송 : CBS라디오 <임미현의 아침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 임미현 > 한반도와 동북아 국제정세를 살펴보는 '한반도 리뷰' 시간입니다. 홍제표 기자, 오늘은 어떤 주제를 갖고 나왔나요?

(사진=연합뉴스 제공)
◇ 홍제표 > 한일 간 초계기 갈등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20일 발생했으니까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해법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더 꼬여만 가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 측 잘못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되레 큰 소리를 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시각도 과연 우리와 같을까요? 저는 좀 다를 거라고 봅니다. 강자의 논리가 통하는 국제무대에선 결과가 반드시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습니다. 일본이 숱한 망언과 억지 주장을 해온 배경입니다. 국제 여론전에서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겠죠. 오늘은 초계기 사건 자체에서 잠시 벗어나 보다 긴 호흡에서 살펴볼까 합니다.

◆ 임미현 > 우선, 한일관계가 요즘처럼 악화된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이것부터 간단히 짚어보죠.

◇ 홍제표 > 2012년 12월 아베 정권(2차 집권)이 들어선 이후 양국관계는 계속 냉각됐습니다. 박근혜 정권 후반 위안부 피해자 합의를 졸속 처리한 것은 결정적으로 양국관계를 후퇴시켰습니다. 현 정부 들어서도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으로 건건이 부딪히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북미대화와 남북화해 기류 속에 일본이 느끼는 소외감도 일부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두 나라가 군사 충돌이 우려될 만큼 관계가 악화된 것은 이전에 없던 현상입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의 발언 수위가 그 단면을 보여줍니다.

"상처가 있다면 그 상처를 먼저 보여주는 게 순서다. 대단히 무례한 요구이고 사안 해결의 의지가 없는 억지 주장이다"

◆ 임미현 > 위안부나 강제징용 판결 같은 것은 1965년 한일수교 과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제니까 좀 복잡한 문제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초계기 사건 같은 경우는 너무나 명명백백한 사안인데 일본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키우는 것 아닌가요?

◇ 홍제표 > 그렇습니다. 정말 일본 측 주장대로 공격용 레이더를 맞았는지, 우리 측 주장대로 일본 초계기가 오히려 위협비행을 했는지 여부는 양쪽이 갖고 있는 과학적 증거자료를 내놓으면 간단히 해결될 일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에 응하지 않고 치고 빠지기 식 대응을 거듭하며 국제 분쟁거리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의 내부 결집용 의도와 함께 헌법 개정을 통한 군사대국화의 야심이 깔려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입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의 말을 들어보시죠.

"조금이라도 (한국 쪽에서) 군사적으로 대응이 나오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이것은 일본에 유리하죠. 역시 강한 군대는 필요하다"

◆ 임미현 > 하지만 일본이 자료 공개를 계속 기피한다면 국제 여론의 지지를 받기 힘들 것 같은데요.

전직 총리 비서관 출신인 오노 지로(小野次郞) 전 참의원 의원이 지난달 트위터에 올린 글. 그는 일본 정부의 '레이더 영상' 공개와 관련해 "영상은(영상을 보면) 우리(일본) 쪽 주장보다도 한국측의 긴박한 일촉즉발의 상황을 잘 이해됐다"며 "작전행동 중인 군함에 이유 없이 접근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며 경솔하다"며 당시 일본 초계기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사진=오노 지로 트위터 캡처)
◇ 홍제표 > 당연합니다. 심지어 일본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습니다. 오노 지로 전 참의원의 경우는 지난달 29일 첫 동영상을 본 뒤 "(오히려) 한국 측의 긴박한 일촉즉발의 상황이 잘 이해됐다"고 트위터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북한 선박에 대해 작전행동 중인 (한국) 군함에 이유 없이 접근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며 경솔하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일본은 유리한 증거만 공개하고 객관적 검증 요구에는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제사회 여론이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도 아닙니다. 두 나라 모두 여러 외국어로 번역한 동영상을 퍼나르며 열심히 여론전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볼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 사안이면 당연히 우리 손을 들어줄 것 같은데 기대에 못 미치는 것입니다.

◆ 임미현 > 우리로선 답답하고 억울한 입장인데, 국제 여론이 잘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홍제표 > 이것이 바로 일본의 힘이고 외교력입니다.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가 한국뿐이라는 우스개도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과 세계가 바라보는 일본의 위상 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19세기 말에 당시 청나라를 누르고 열강 반열에 올랐습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1907년)에서 아무리 조선 독립을 호소해도 서구 제국들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국제질서를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 임미현 > 하지만 100년 전과는 다르고 우리 국력도 많이 커졌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대등한 관계 아닌가요?

◇ 홍제표 > 국력이 커져도 국격까지 따라서 올라가는 데에는 다소 시차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한일 간 격차는 3대 1 정도까지 좁혀졌습니다. 1965년 국교 수립 당시의 100대 1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은 여전히 차이가 큽니다.

◆ 임미현 > 국제사회는 여전히 일본 편이라는 얘기인데, 우리가 K-POP 같은 한류 확산을 통해서 매력국가 이미지를 많이 확보했는데도 아직 갈 길이 멀군요?

◇ 홍제표 > 최근 국내 일간지에 실린 미국 동아시아 전문가의 칼럼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불편한 현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이 쓴 '한일관계 악화는 중국의 오만을 부추긴다'는 제목의 글입니다. 그린은 여기에서 "현재 일본과의 대립 국면에서 한국이 정치적으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호주에서 싱가포르에 이르는 아시아 국가 대부분은 한일관계 악화가 한국 내에서 커진 갈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임미현 > 오히려 우리 잘못이라고 하는 건데, 좀 충격입니다. 마이클 그린이 원래 좀 친일 성향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는데 미국 주류사회 분위기도 같은가요?

◇ 홍제표 > 미국은 이번 사안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관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두드러진 움직임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달라진 현상입니다. 이는 신(新) 고립주의, 한미일 3각동맹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의 전환, 셧다운 같은 미국의 복잡한 내부 사정 등의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다만 미국 의회와 정부, 싱크탱크 전문가들이 여전히 일본을 훨씬 중시하고 있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입니다.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5년 2월 웬디 셔면 당시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동북아 역사 갈등과 관련해 일본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과 중국을 비판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 임미현 >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에서 보듯이 우리도 한미동맹에 엄청난 투자를 했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거죠?

◇ 홍제표 > 일본이 오랫동안 미국에 쏟아 부은 물량 공세에는 아직 역부족입니다. 일본은 이미 2차대전 이후부터 승전국 미국을 상대로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재팬 핸즈'로 불리는 일본 전문가 집단을 길러냈습니다. 앞서 소개한 마이클 그린도 CSIS의 일본 석좌를 겸하고 있습니다. 그린은 1980년대 일본 문부과학성 프로그램으로 일본을 방문한 것이 인연이 돼 일본 연구자가 됐습니다. A급 전범으로 기소됐던 사사카와 료이치가 설립한 사사카와 재단도 미국내 '지일파' 양성의 산실입니다. 하버드 대학에만 해도 일본학 기관인 라이샤워 센터와 미일관계 프로그램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이름을 딴 '아베 펠로십'이나 브루킹스연구소와 카네기재단의 일본 석좌 등이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한국계 빅터 차 교수가 CSIS 한국석좌를 맡고있고 캐서린 문 교수가 브루킹스 연구소 한국 석좌를 역임하는 정도에 머물러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합의 파동을 교훈 삼아 대미 공공외교를 강화한다고 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그나마 이번 정부 들어서는 존스홉킨스 대학 한미연구소(USKI)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 파동을 겪기도 했습니다.

◆ 임미현 > 향후 전망은 어떻습니까? 앞으로도 발언권이 센 일본 때문에 계속해서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건가요?

◇ 홍제표 > 안타깝지만 일본의 아성을 넘어서는 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반응입니다. 한 전문가는 "공공외교 예산만 해도 10배가 넘는데 이것을 우리가 이길 방법은 없다"고 했습니다. 일본은 이미 100년 전부터 미국과 서구사회는 물론, 종전 이후에는 동남아에서도 많은 투자를 통해 국제 위상과 발언권을 키워놓았습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커진 국력에 걸맞는 수준의 외교력도 행사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는 있습니다. 또, 외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력이 바탕이지만 명분과 전략·전술도 중요하기 때문에 활용 여하에 따라서는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이번 초계기 사건만 해도 우리가 처음부터 잘 대응했는지 복기해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일본의 보통국가화, 군사대국화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일본은 앞으로도 도발적 행위를 계속할 것입니다. 일본의 노림수에 말리지 않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단호하되 냉철하게 대응하는 것,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두 요소를 잘 조화시키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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