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엔] 빈 공간이 반인데 과대포장 아니라고? 고정재의 함정

박서강 2019. 1. 31.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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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선물세트의 허술한 포장 기준

시중에서 판매중인 설 선물세트의 플라스틱 고정재(왼쪽)와 내용물을 모아 본 모습.육안으로 보기에 내용물을 제외한 빈 공간이 상당한데도 고정재 사용 시 가산 공간을 부여하는 환경부 기준을 적용하면 포장공간비율은 25%를 넘기 힘들다.포장공간비율 25%는 과대포장 단속 기준이다.
생활용품 선물세트에 사용된 플라스틱 고정재(위)와 고정재를 제거하고 내용물을 따로 모아 본 모습.
시중에서 판매 중인 가공식품 선물세트의 플라스틱 고정재(위)와 고정재를 제거하고 내용물만 따로 모은 모습.
한 생활용품 선물세트의 플라스틱 고정재(위)와 고정재를 제거하고 내용물만 따로 모은 모습.

중견기업 신입사원 김모(26)씨는 며칠 전 회사에서 지급받은 설 선물세트를 들고 퇴근했다. 입사 후 첫 명절 선물이라는 뿌듯함도 잠시, 얇고 널찍한 상자는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에 오른 순간 애물단지가 됐다. 어떻게 들어도 불편했고 주변 승객들의 따가운 시선까지 쏟아졌다. 겨우 집에 도착한 김씨는 내용물에 비해 터무니없이 큰 상자와 플라스틱 고정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재활용 폐기물... 이 정도면 과대포장 아닌가?”

실측이 필요하겠지만 김씨가 받은 선물은 과대포장에 대한 환경부 기준상 ‘적합’으로 판명 날 가능성이 크다.고정재 사용 제품에 부여하는 ‘가산 공간’ 때문이다.환경부의 ‘제품의 포장재질ㆍ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선물세트의 경우 포장공간비율이 25%를 넘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포장공간비율이란 전체 포장용적에서 제품 및 필요공간 부피를 제외한 공간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그런데 고정재를 사용한 제품은 각각의 단위 제품 체적 측정 시 가로, 세로, 높이를 10㎜씩 늘려서 계산한다. 제품의 체적을 실제보다 크게 계산하는 ‘가산 공간’ 덕분에 포장공간비율은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10㎜에 불과한 작은 수치지만 이로 인한 결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시중에서 유통 중인 선물세트를 구입해 포장공간비율을 직접 측정해 봤더니 51%였던 실제 빈 공간의 비율이 환경부 기준을 적용하자 18%로 뚝 떨어졌다. 다른 종류의 선물세트도 결과는 비슷했다.

선물세트 포장공간비율 25% 넘으면 과태료 부과

고정재 사용 땐 10㎜씩 늘려서 계산해 비율 줄어

빈 공간이 51%인 제품 환경부 기준 적용 땐 18%로

그렇다면 고정재 사용 제품에 이 같은 이점을 부여하는 이유는 뭘까. 환경부 관계자는 “과대포장 규제가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됐는데 당시엔 포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상품끼리 부딪히지 않고 고정물이 박스에 들어가려면 1㎝ 정도 여유 공간이 필요했다”라면서 “이제는 기술도 발달했고 포장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어 이번에 규제를 강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가산치를 종전의 절반(5㎜)으로 줄인 개정안을 16일 입법 예고했다. 그러나 여전히 고정재 사용 제품에 가산 공간을 부여하고 완충ㆍ고정재를 쓸 수 있는 품목을 따로 규정하지 않아 통조림이나 치약, 칫솔 등 손상 위험이 거의 없는 제품에까지 고정재가 무분별하게 쓰이는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완충ㆍ고정재 없이 제품으로만 상자를 빼곡히 채워 실속파 소비자에게 인기인 생활용품 선물세트.
1986년 판매된 생활용품 선물세트. 완충재로 쓰인 스티로폼 2조각 외에 제품만으로 빽빽하게 포장된 모습이 실속 있게 느껴진다.

더 큰 문제는 가공식품이나 생활용품 등 인기 품목에 들어가는 고정재 대부분이 플라스틱 재질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종이 재질의 고정재 도입이 늘고 있지만이 또한 재활용 폐기물인데다 업체로선 성형이 쉽고 단가가 싼 플라스틱 고정재를 포기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 정부가 가산 공간까지 부여하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큰 선물 상자가 아직 흔하고 플라스틱 등 재활용 폐기물 발생량도 그만큼 늘고 있다.이 같은 현상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자는 사회적 분위기나 정부의 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다.

김현경 서울환경연합 생활환경 담당 활동가는 “실용성보다 단순한 과대포장만을 위해서 일회용 플라스틱이 만들어지고 쓰인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환경부 기준이 강화되고는 있지만 남는 공간과 더불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도록 기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대통령ㆍ국회의장 선물에도빠지지 않은 고정재

뷰엔팀은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각계에 보낸 선물세트의 포장공간비율을 직접 측정해 봤다. 실제 빈 공간은 44%였지만 종이 고정재를 사용했으므로 10㎜의 가산치를 적용했다. 결과는 26.7%. 오차를 감안할 때 환경부 기준을 가까스로 충족하는 수준으로 포장한 것으로 보인다. 기성품인 문희상 국회의장의 선물 역시 49% 정도였던 빈 공간의 비율은 환경부 기준을 적용하자 25.7%로 낮아졌다.

그러나 가산치를 절반으로 줄인 개정안 대로라면 대통령 선물의 포장공간비율은 36%, 국회의장은 38%로 과대포장에 해당한다. 물론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유통ㆍ판매업자에게 적용되는 환경부 기준을 지킬 의무는 없으나 이미 16일 입법 예고된 개정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문재인 대통령이 설날을 앞두고 사회 각계에 보낸 선물의 포장공간비율을 직접 측정해 본 결과 실측값은 43.6%였으나 종이 고정재(위 사진) 사용 시 부여하는 ‘가산 공간(10㎜)’을 적용하자 26.7%로 떨어졌다. 최근 입법 예고된 개정안(5㎜)을 적용할 경우 포장공간비율은 35.5%를 기록했다. 유통 판매업자의 경우 포장공간비율이 25% 이상이면 과대포장 단속 대상이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제품인 문희상 국회의장 선물의 포장공간비율은 실측값 48.9%, 현행 기준 25.7%, 새로 시행될 개정안 기준 38%로 측정됐다.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가 사회 각계에 보낸 설 선물. 빈틈이 거의 없이 꽉 채운 구성에 낱개 포장은 재사용이 가능한 밀폐용기로 대신했다.

선물 구성에 고정재가과연 꼭 필요할까?2009년 재사용이 가능한 밀폐용기로 제품 포장을 대체하고빈 공간이 거의 없이구성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설 선물이 화제가 됐고,시중에서는 완충ㆍ고정재 대신 제품만으로 상자를 빼곡하게 채운 제품이 이미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국회의장 선물에 과대포장 가능성을 키우고 재활용 폐기물을 추가로 발생시키는 고정재가 사용된 점은 아쉽다. 환경부는 16일 개정안 입법 예고와 함께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폐기물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소비자ㆍ업계ㆍ정부 등 사회구성원 모두가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라고 밝힌바 있다.

◇포장공간비율 산출 수식

포장공간비율=(포장용적-제품용적)/포장용적*100

포장용적=(가로-2(10-세로 두께)*0.6)(세로-2(10-가로 두께)*0.6)*높이

제품용적

현행 기준(가산 공간 10mm)에 따른 제품용적=(가로+10)(세로+10)(높이+10)

개정 기준(가산 공간 5mm)에 따른 제품용적=(가로+5)(세로+5)(높이+5)

※정확한 산출 방법은 환경부 고시 ‘제품의 포장제질 및 포장방법에 대한 간이측정방법’ 참고

◇환경부 기준에 따른 설 선물 포장공간비율 비교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mailto:poem@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mailto:will@hankookilbo.com)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mailto:pindropper@hankookilbo.com)

김혜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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