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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돈이 되고 표가 되지 않게, 시민 목소리 커져야"

권영은 입력 2019.01.31. 04:44

‘파편사회서 공감사회로’ <6ㆍ끝> 배려와 연대가 먼저다 - 전문가 좌담회

한채윤(왼쪽부터) 상임이사, 박권일 비평가, 이일 변호사, 이진희 사무국장은 “혐오를 선동하는 세력과 가짜뉴스를 촘촘히 추적하고 반대 증거를 제시하는 연구자, 지식인, 언론의 역할이 선행돼야 한다”라며 “혐오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일상의 노력만으로는 변화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류효진 기자

모두가 혐오와 차별에 몸서리치는 사회, 우리는 종언을 고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는 신년기획 ‘파편사회서 공감사회로’ 시리즈를 통해 모든 이가 조각나고 부서져 혐오하는 사회의 현실을 돌아봤다. 현장에서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운 혐오를 분석하고 이에 맞선 이들이 보는 원인과 해법은 무엇일까. 최근 한국일보사 회의실에서 박권일 사회비평가,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ㆍ난민인권네트워크),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를 함께 만났다. 이들에게 한국 사회의 혐오, 차별, 불평등의 현실과 그 치유의 전제 조건을 물었다.

-혐오만 남고 ‘공감’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크다.

한채윤 상임이사(이하 한)=일단 공감사회가 뭔지 묻고 싶다. 혐오를 넘어서는 방법으로 공감이라는 해결책을 쉽게 제시하는 것도 답은 아니다.

이진희 국장(이하 이)=공감도 천차만별이다. 뭘 차별하면 안 되는지 깊은 고민 없이 공감을 이야기할 때 동정에 기반한 더 강한 혐오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공감이 과연 지금 가능한지부터가 고민이다.

박권일 비평가(이하 박)=공감이 듣기는 좋은 얘기다. 따져 보면 누구에 대한 공감이 필요한지부터 다 생각이 다르다. 막연한 따뜻한 말이 부족해서 이런 사회가 온 건 아니다. 소수자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한= 요즘 보면 오히려 혐오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공감하고 뭉친다. 공감하고 조직화하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혐오를 강화한다. 그래서 공감이란 말이 오히려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도 공감이라는 말 좋아한다. 그런데 지금 이 말만으로는 한국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되고 슬프다. 그럼 그거 말고 뭔지도 실은 모르겠다.

-최근 혐오 현상에 대한 관심, 우려가 커졌는데.

이=오랫동안 반차별 운동, 성 소수자 운동 등 많은 운동 안에서 혐오 담론을 무르익게 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고 본다. 전 사회적으로 보자면 혐오가 전면에 가시화되었을 뿐, 해결을 위한 방향으로의 책임 있는 움직임들은 없었다. 공감이 필요한 건 맞는데, 과연 사람들이 그 공감해야 할 ‘우리’를 누구라고 상상하고 있을까. 걱정된다.

이일 변호사(이하 이일)= 7, 8년 전만 해도 혐오 발언을 온라인에서조차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건 꺼렸다. ‘다문화 반대 카페’에서조차 그랬다. 한국 최초의 넷 우익, 반 다문화, 반 이주노동자 정서를 총집결한 회원 몇십만 단위의 커뮤니티에서도 드러내놓고 쓰는 사람은 없을뿐더러, 직접 접촉하려고 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실명을 내걸고 더 심한 얘기를 한다. 불과 수년 사이 혐오 정서가 물밑에서 수면 위로, 완전히 전면화 공식화 일상화했다고 본다.

난민들의 경우 지난해 예멘 난민을 두고 범죄자, 누구나 강간할 것 같은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며 이 차별과 혐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이걸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혐오에 대한 역치도 낮아지고 다른 영역으로 그 혐오가 쉽사리 전이될 수 있다는 걱정도 많이 했다. 오프라인에서도 손들고 삿대질하고 대놓고 욕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생긴다. 혐오에 기반한 가짜뉴스 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많이 고민한다.

한=일상화, 전면화가 맞다. 제가 운영하는 사이트에 하도 사람들이 동성애 비판글을 올리니 2000년도에 ‘동성애 싫어’ 게시판을 하나 따로 만들었다. 그런 내용은 여기다 쓰시라. 그랬더니 정말 사람들이 너무 착하게(웃음) 거기에만 썼다. 직접 만나서 얘기해보자고 했더니 아무도 안 오더라. 그랬던 게 지금은 조직화돼 있다. 표출해도 된다는 정당성을 어디선가 획득하고 있다. 이걸 어디서 얻겠나.

박=소위 헤이트(hate) 스피치, 혐오 발언을 드러내 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본인이 가장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힘드니까 다른 사람을 적으로 삼고 공격해도 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온라인에서 흔히 불행경쟁이라고 한다. 누가 피해자냐, 누가 진짜 순수한 피해자냐를 나눠서 조리 돌린다. 사건만 바뀌지 계속 같은 방식으로 순환한다. 남는 건 죽은 피해자다. 생물학적으로 전멸한, 죽은 이만 가장 불쌍하고 순수한 피해자가 된다. 이러면 난민 반대도 다 정당화된다. ‘남자 무슬림이 다 강간하고 죽인다더라, 얼마나 무섭냐’라는 식이지 않나. 과거 레드 콤플렉스로 빨갱이 낙인을 찍던 구조다. 과거엔 안보(security), 지금은 안전(safety)이 정당화 기제다. ‘내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저 타자들 때문이다.’라는 논리로 차별과 배제를 이어가고 각종 가짜뉴스가 근거로 붙는다. 다른 나라에서도 반복되는 정당화다. 일본의 재특회나 독일의 극우 나치 같은.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과거엔 안보, 지금은 안전을 내세워 혐오 발언을 정당화하는 혐오의 공급자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효진 기자

-누가 진짜 피해자냐는 검증은 왜 벌어질까.

박=촛불집회 때도 느꼈는데 ‘순수한 시민’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고 아닌 이를 가려내야 한다는 강박적 자기 검열 기제가 우리에 내재돼 있다. 소위 프락치를 끌어내라는 거다. 2002년, 2008년, 2016년 촛불에서도 끊임없이 있었다. ‘순수한 시민’, ‘순수한 피해자’만 찾아내 보호해야지, 나대거나 싸우거나 악을 쓰는 사람들은 불순하고 외부세력에 선동된 사람이라는 프레임이다. 일제시대의 ‘불령선인’ 개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내부를 갈라치는 건 지배집단의 논리인데 그걸 너무 깊이 내면화했다. 그래야만 우리가 겨우 요구사항을 전달할 수 있다라는 슬픈 경험 체계이기도 하다. ‘너는 순수하지 못하니 그런 얘기할 자격 없다’는 이런 태도가 우리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건 시민에도 위계가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말로는 못 해도 ‘비장애인은 장애인보다 위가 아니냐’는 식. ‘탈북자는 3등, 난민은 4등, 5등도 못 되니 너희는 추방’ 하는 식이다. 입으로만 말하지만 인간이 절대 평등하다고 믿지 않는 상태다.

한=쌓인 게 터졌다고 본다. 진짜 불쌍한 사람만 도와야지 아니면 혼란에 빠진다는 거다.

이=제도에서부터 진짜 피해자, 가짜 피해자를 증명하게 만든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에서도 피해자에게 재판부가 그런 얘길 하지 않나. ‘어린아이도 아니고 배울 만큼 배웠고 장애인도 아니고 자기결정권과 판단력 가진 사람인데 그게 어떻게 성폭력이냐’고.

한=혐오를 선동하는 사람, 세력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근대역사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했고 결국 신도 수 제1의 종교의 자리에 오른 개신교가 왜 하필 지금 성 소수자와 이민자 혐오에 앞장서는지 봐야 한다. 자신들이 지금 ‘정부로부터 가장 억압받고, 호시탐탐 정부가 동성애자에게 인권을 주고, 이슬람과 난민을 받아들이려고 하고, 개신교를 억압하려고 한다’고 주장하면서 조직화를 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대다수가 편견을 깨자’는 논의 수준으로는 상황 해결이 어렵다. 다들 살기 힘들어서 타인을 공격한다는 얘기만 하는 건 오히려 혐오를 선동하는 그들의 정체를 희미하게 만든다.

-그런 혐오로 누군가는 득을 보기도 한다.

박=국민 전체라는 수요자에게 혐오를 공급하는 공급자가 있다. 혐오가 돈이나 권력이 된다는 걸 아는 거다. 재빨리 과거의 반공주의를 밀어두고 새로운 방식의 혐오로 갈아타서 지지와 돈을 얻어내려고 하는 거다. 유튜브 등 채널 활용하고 이를 통해 또 다른 혐오세력도 만든다. 지금 당장 수면 위로 끌어낼 공급자들이 많다. 최소한 이건 아니라는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언론과 활동가들이 할 역할이 크다. 연구자들도 이런 공급의 흐름을 잘 분석하고 정확히 추적할 필요가 있다.

한=문제는 주류 개신교조차 이런 혐오의 선동가들을 행동대원으로 생각해 덮어 준다는 거다. 또 이들이 발휘하는 정치적 입김이나 영향력은 활동가들의 것과 완전히 다르다. 종교계 의견 청취 등으로 포장되는데 문제가 많다.

박=엄연히 종교 분리 국가인데. 과거엔 비주류 목사였던 사람이 각종 혐오 채널을 만들어 영상을 올리며 수년간 무반응 속에 활동하다 어느 순간 각종 유사 단체가 생기고 이들이 연합하며 점점 허브가 됐다. 이들 단체가 최근 10년간 커 온 과정을 보면 정확히 한국의 혐오 발언이 커오는 과정과 결이 같다.

한=이들 단체의 관심사 흐름을 보면 한편으론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처음에는 난자 채취 반대부터 시작해서 차별금지법 반대, 탈북민 돕기, 반동성애 등으로 관심사를 옮겨가며 서로 연합하고 조직화한다. 수익 구조를 생각할 때 외부의 적이 계속 있어야 하던 걸 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생태계다.

박=블루오션을 개척한 거다.

한=90년대 인권운동 시작할 때는 ‘동성애를 잘 모르셔서 그래요’라는 설득으로 세상이 바뀔까도 생각했는데, 저런 분들의 생계 수단이 된 지라 ‘이건 쉽게 해결 안 되겠구나’ 싶기도 하다. 한편으론 더 강력한 정치적 결단이나 변화가 필요하단 얘기다.

이일=난민의 경우엔 너무 명백한 일부 개신교 극우 세력 선동의 존재에 더해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완전히 낯섦’에 대한 정서가 더해져 난민이란 존재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고 있다는 부분이 안타까웠다. 심지어는 정치인까지 ‘반공 말고 반난민으로 내가 스타가 돼 볼까’하고 나섰다. 토론회에서 “여러분의 딸을 무슬림이 강간합니다”라고 하질 않나. 이러니 아무리 근거를 찾아서 가짜뉴스가 가짜뉴스라고 말해도 안 먹힌다.

한=그래도 난민 쪽에는 ‘정우성’이라는 든든한 지지가 있는데. (웃음)

이일=도와주겠다던 정치인 그 누구도 전화도 받아 주지 않던 시점에서 유일하게 앞에서 바람을 맞으며 큰 역할을 해줘 너무 고마웠다.

이일 변호사(난민인권네트워크 의장)는 "혐오와 맞서야 할 정부와 국회 조차 차별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류효진 기자

-국회에서 외면한 까닭이 뭐였다고 보나.

이일= 예멘 난민 이슈는 이례적이었다. 기존에도 수만 명씩 체류하다 돌아가고 있던 상황에서, 예멘 난민 500명을 제주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면서, ‘난민은 제주라는 특정 공간에만 있어야 하고 나오면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낙인이 생겼다. 제주 사람들은 ‘왜 우리가 이런 짐을 떠안아야 하냐’고 생각하고. 사람들끼리 다투게 됐다. 관련 불안이 크니 관련 토론회도 모두 취소되고 국회에서도 돕겠다는 이들이 없었다. 일반 시민은 낯설고 두려울 수 있지만 책임 있는 정부나 국회에서조차 차별과 혐오를 주도하는 주체로 기능하니 안타깝다.

박=혐오가 돈이 되고, 표가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한 거다.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유권자, 시민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 말고는 근본적 방법이 없다. 표가 안 되고 세력이 안 된다 싶으면 냉정하게 외면할 텐데.

한=그래서 배우 정우성씨 역할이 그냥 ‘개념 연예인’ 정도가 아니라고 본다. 유권자들이 바뀔 계기를 정부도 교육도 만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좀 더 용기 있는 개인이 결심하고 나서면 의미 있는 발언과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그가 보여준다.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이런 행보를 높이 평가하고 의미를 짚을 필요도 있다.

박=그는 너무 예외적 존재인 것 같아서. (웃음)

한=그걸 예외로 만들지 말자는 거다. ‘나는 정우성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야지’가 아니라 ‘나도 정우성처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는 한 변화는 너무 힘들다.

이일=그전까진 난민 분야는 관련 텍스트가 전무했다. 누군가 당연히 했어야 할 말을 정우성씨가 떳떳하고 당당하게 하는 모범을 보여줬다. 난민을 추방하자는 말만 넘치는 상황에서 그걸 계기로 텍스트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반 시민들도, 인접 학문에서도, 조금씩 난민에 대해 한 마디라도 더 해보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이=차별금지법 발의 과정에 대한 얘길 들어보면 국회 의원을 향한 혐오 세력들의 조직적 항의가 상당하다. 하루에 전화를 수백 통씩 돌린다. 정작 활동가들은 바빠서 하루 한 통 항의 전화도 하기 힘들다. 그런 정치인들에게도 학습효과가 클 것이다. 분명히 맞서 싸워야 할 부분인데. 어쨌거나 정치인이든, 배우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든 용기 있는 발언을 해 줄 사람이 더 많이 나와야 하는 게 맞다. 거기에만 기대선 안 되지만 차별 경험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연대해주는 힘은 중요하다.

-논의가 일단은 지속될 수 있게 한 셈이다.

박=다만 강조하고 싶은 건 혐오에 대해 논할 때, 자꾸 화이트칼라 위주의 논의, 정당성의 논리로만 얘길 하다 보면 굉장히 큰 반발을 산다. 서해안 벨트의 청년 노동자를 취재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100%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자동차 공장,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보면 ‘나는 학비를 벌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를 타며 매일 네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과 직접 경쟁한다’고 한다. 진보 진영에서 ‘이주 노동자는 받아들여야 해, 그들의 일은 우리와 겹치지 않아’라고 해도 현장에선 그렇지 않다는 거다. 이런 걸 외면한 채 말해봐야 고담준론, 뜬구름 잡는 얘기, 역겨운 말일 수 있다.

문제가 있는 부분은 실태 조사를 명확히 해 대응하고, 이들도 혐오에 빠지지 않으려면, 극우화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어느 대담에서도 잘 안 나오는 얘기다. 그냥 ‘옳으니까 해야 한다’, ‘혐오는 나쁘니까 하지 말자’라고만 한다. 실제 청년 세대 중 빈곤 계층 노동자, 지방 거주 노동자들은 외국인과 경쟁을 한다고 느낀다. 외국인과 일하면서 부대끼는, 몸으로 체험한 이야기를 하면서 혐오를 분출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얘길 해버리면 그들의 존재를 말소하는 거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이=나를 대체할 인력이 있다는 게 주는 불안감이 분명하다. 실제 경험하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 갈등 원인이 상대방이 아니라 구조에 존재하는 데도 상대방에게서만 찾는 상황에 대해선 사회적인 고민이 뒤따르지 않으면 혐오는 계속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차별금지법 없는 혐오 종식은 없다"고 강조했다. 류효진 기자

-일상적 고민, 용기, 태도 변화가 절실할까.

한=사실 지금 일상이 문제가 아니다. 이미 혐오가 일상화된 상태에서 ‘더 공부하고, 더 고민해라’라고 해봐야 과연 해결될까 싶다. 스스로 책임을 다 하지 않는다면 정치권과 언론은 시민들을 향해 ‘일상의 변화’를 말할 자격이 없다. 시민들의 태도만 바뀌면 달라질 것처럼 하는 건 책임 회피다.

박=태도의 문제도 필요하지만 우선돼야 할 것들이 있다. 차별금지법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나라에서 일상을 바꾸자고 해봐야 소용없다. 성희롱을 하지 말자고 해봐야, 처벌되지 않는 한 코웃음만 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 한국 사회는 최소한의 제재 없이 ‘바르게 삽시다, 착하게 삽시다’고 해봐야 한계가 명백하다.

한=물론이다. 앞서 비관적인 말을 했지만, 일상 차원을 생각하자면 모두가 더 자주 내가 했던 차별, 내가 했던 혐오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내 안의 여성 혐오, 내 안의 장애인 혐오 등. 사람들은 세상에 차별받는 사람들만 존재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군다. 차별을 하니까, 받는 건데. 단체 활동하면 많이 듣는 말이 ‘차별받은 사례를 가져오라’는 거다. 차별하는 사람이 특별한 괴물이어서, 이상해서, 사회가 다 썩어빠져서 이렇다고만 하면 답이 없다. 내가 일상에서 하는 차별을 고백하고 토론하고 대화해야 한다.

이=너무 동의한다. 그런 노력 없이는 공감도 없다. 그게 아니고선 권력을 가진 채, 이해관계에서 우위를 점한 채 배려하는 차원에서나 공감이 다뤄질 거다. 자꾸 ‘무심코 건네는 차별의 말’이라고 하면서 무심코를 강조하는데, 미리 알든 모르든 내가 언제든 가해자의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점을 모두가 늘 생각해야 한다. 정말 이상하고 파렴치한 괴물만 차별, 혐오를 하는 게 아니다. 동시에 차별금지법 제정 넘어서지 않고서는 어떤 얘기를 더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는 "정치와 언론이 책임을 다 하지 않은 채 시민들의 태도 변화만을 강조하는 것은 전후가 바뀐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효진 기자

박=완전히 동의한다. 일베에서의 차별 발언을 보면 대부분 능력주의에 기반한다. 꼭 학벌 인증을 한다. 나는 그러니까 너희 같은 미개인을 비난해도 된다는 식이다. 그게 사실 한국 사회의 사고방식이다. ‘4시간만 자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는 걸 급훈으로 걸어놓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공부만 잘하면 다 용서되는 사회를 만들고서, 일베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대악마인 것처럼 굴면 안 된다. 너도 능력에 따라 사람 차별하고 위계화한다고 지적하면 펄펄 뛴다.

한편으론 그런 성찰이 잘 안 되는 요인 중 하나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문화 같다. 누구나 발언 실수를 할 수 있지 않나. 다 완벽할 순 없고. 차별, 편견이 드러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한마디를 가지고 사람들이 거의 사회적 매장을 시도한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경중이나 정도에 대한 구분이 없다. 크고 작은 잘못 모두를 조리돌림 한다. 예리하게 비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론 매우 둔탁한 둔기로 모든 사람을 패고 다니는 거다. 그게 성찰을 막는 주요 조건 같다.

조금만 잘못해도 큰 잘못과 마찬가지로 비난하고 매장하면, 잘못을 방조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과나 용서로 될 수 있는 발언이 있는 반면, 형사처벌까지 가야 할 발언과 행동이 있다. 너무 강퍅하게 조금만 잘못하면 욕하고 매장시키는 문화는 오히려 성찰을 막는다.

이일=첨언하자면 울산의 한 강연에서 강의 후 대화를 나누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보낸 시간 동안 누적된 부정적 경험의 영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건 설명으로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더 중요한 건 연구자나 활동가들이 ‘과연 정말 난민 때문에 지금의 삶이 이렇게 힘든가’를 명확하고 선명하게 밝혀줄 필요가 있다. 농축된 연구 결과나 사실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 세력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게 없이는 ‘우리 설득하려 하지마, 너희에게 넘어가지 않아’라는 반응만 돌아온다.

-혐오 정서 밑에 깔린 현장의 고민을 입체적으로 들어 봐야 한다는 지적인데.

박=20대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억울한 정서를 없는 척하고 말해선 안 된다. ‘너희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강자다’라고 해봐야, 20대 남성들은 ‘우리는 기성세대에 비해 힘들고 경쟁압력도 더 세고 예전 같은 가부장제 수혜를 못 누리는 상황서 군대도 다녀와야 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답하면 여기다 대고 ‘너는 군무새(군대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는 취지의 멸칭)냐’고 비난한다. 이런 태도로는 20대 남성과 소통할 수 없다.

실제로 2년간 희생하지 않나. 국가가 제대로 보상도 해 주지 않고, 말도 안 되는 돈으로 청년들을 2년간 노동 착취하지 않나. 그 부분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으면서 ‘군무새’라고 비난하고 ‘여혐종자’로 규정한다. 군대 문제만 해도 제대로 들여다보고 다양한 제도적, 정책적 접근을 해야 한다. 동시에 실제 적대는 다른 데서 벌어지는데 엉뚱한 곳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구조에 대해 말해야 한다. 누가 남성들을 군무새로 만들었는지 허심탄회하게 말해야 한다. ‘너는 혐오종자’라고 쉽게 비난하는 태도로는 무엇도 해결하지 못한다. ‘우쭈쭈’해야 한다는 건 아니고 이들이 실제 당하고 있는 희생과 구조적 착취를 외면한 채 논의해선 안 된다는 거다.

한=과거에 남성들이 그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건, 군대를 다녀와서 조금만 견디면 취직도 잘 되고, 승진과 연봉 상승 속도도 빠르고, 평생 직장을 가질 수 있어서인데. 지금은 40대 전에 회사 나가야 하고, 아버지만큼 안정적으로 누릴 수 없지 않나. 고난을 겪다 영웅이 되는 남성서사가 적용이 안 된다. 다만 지금 20대 여성들도 미래가 없는 건 같은 상태인데, 갑자기 정권 지지율이 발표되자마자 ‘20대 남성’이 특별한 존재가 됐다.

이=이제는 더 이상 성장은 못 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더욱 생존하려면 같이 의존하고 연대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걸 생각했으면 한다. 어차피 이 국면을 풀기 위해서는 한동안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은 연대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모든 것에 다 혐오 딱지 붙이는 것도 문제다. 우리 스스로 좀 더 다양한 언어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작업들도 있어야 되겠다. 혐오가 너무 쉬운 만능열쇠가 된 것 같다. 층위가 다 다른데.

박=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면, 보편적 인권이 있고 시민권이 보장된 사회라면 사실은 자기가 피해자라는 것 강조하지 않아도 기본적 권리들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우리에겐 딱 두 가지 정체성만 있다. 소비자나 피해자. 나는 소비자니까 내가 돈 낸 만큼 갑질 할 수 있어. 내가 피해자니까 너는 나한테 사과하거나 배상해야 돼. 그 두 가지다.

이=아직은 공중에 떠 있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런 감정의 언어들에 집중할 필요는 있다. 대중 강좌에서 질문을 받는다. 혐오 차별 얘기를 하다 보면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다고. 그럼 뭘 해야 하느냐고. 어렵다.

한=아시지 않나. (혐오와 싸우는 이들을) 후원해야 하고. (웃음)

이=집회에 참여하시라고 했는데(웃음)

한=또 상대방이 지적하면 빨리 사과하시라. 실수나 실언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박=동시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차별 발언에 대해 너무 진지하고 무게를 줘서 판단하는 것도 피해야 할 거라 생각한다. 일상적으로 다 차별하고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게 차별적인 발언을 한다. 조심하지만 100%는 안 되는 거니까. 누구든 잘못할 수 있고, 잘못한 만큼만 지적하면 된다. 지적 받으면 죄송하다 사과하고. 이런 게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서로 배우며 조금씩 변하면 된다. 더 나은 방향으로 실패하란 말도 있지 않나. 더 낫게 실패하는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른다. 100% 완벽 하려면 다 같이 침묵해야 할 거다. 그렇게는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우리가 한편으로는 조금 더 관대하게 용서할 줄도 알아야 한다. 차별에 대해 뭔가 엄숙하고 숭고하고 절대 해선 안 되는 거로 얘기할수록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 더 거리를 두게 된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 하지만 바꿔나갈 수 있는 실수로 여겼으면 한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김수진 인턴기자

공감사회를 위한 전문가 진단. 그래픽=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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