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수소경제보다 녹색뉴딜 먼저

2019. 1. 3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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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수소경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전기차가 아니라 수소차에 무게 중심이 쏠린 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도 있고, 값비싼 수소 공급 기반 구축에 회의하는 이들도 있다. 가장 중요한 의문은 따로 있다. 수소를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요즘 미국 정가의 최대 화제는 한 초선 하원의원의 행보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뉴욕에서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그 주인공이다. 스물아홉살 젊은 나이에 연방 하원에 입성한 오카시오코르테스는 ‘AOC’라는 약칭으로 연일 언론 지면에 오르내린다.

보도 내용 대다수는 조롱이나 비난에 가깝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라 자처하며 젊은 세대의 문화를 온몸으로 대변하고 워싱턴 정치 문법을 무시하는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존재 자체가 미국 사회 주류에게는 강력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이 집중포화를 퍼붓는 것은 고소득층 세율을 70%로까지 올려야 한다는 그의 발언이다.

이 부자 증세론은 국내에서도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엘리트와 똑같이 세상물정 모르는 공상이라 치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에서도 빈부격차를 줄이려면 이 정도 개혁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데 정작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어떤 정책에 재원을 마련하려고 이런 증세론을 펼쳤는지는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최고 세율을 70%로 올려서라도 하자고 한 정책은 바로 ‘녹색 뉴딜’이다. 녹색 뉴딜은 오카시오코르테스만의 주장은 아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도전을 지지한 미국 좌파가 한목소리로 주창하는 비전이다. 최근 이들은 녹색 뉴딜을 당론으로 채택하라고 민주당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럼 녹색 뉴딜의 내용은 무엇인가? 목표는 미국 경제의 녹색화다. 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 변화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일자리를 늘릴 기회로 만들자고 한다. 그래서 녹색 ‘뉴딜’이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크게 두 축으로 이뤄진다. 첫째는 에너지 효율성 강화다. 모든 건축물에 전천후 단열 시공(웨더라이제이션)을 해 냉난방에 쓰는 에너지를 줄이자는 것이다. 둘째는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확대다. 화력이나 핵 발전 의존도를 줄이는 대신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오카시오코르테스를 비롯한 녹색 뉴딜 주창자들은 공공 투자로 이런 사업을 펼치면 미국 경제의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일자리와 소득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이렇게 녹색 뉴딜이 입에 오르내리는 동안 한국에서도 미래 에너지와 관련한 정책이 발표됐다. 지난 17일 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내놓았다. 화석 에너지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 대신 수소차를 늘리고 수소연료전지를 보급하며 이를 위해 안정적인 수소 생산·공급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수소경제 비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전기차가 아니라 수소차에 무게 중심이 쏠린 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도 있고, 값비싼 수소 공급 기반 구축에 회의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문은 따로 있다. 수소를 과연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석유가 내연기관차에 하던 역할을 수소가 대신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수소는 다른 어딘가에서 생산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다른 어딘가에서 생산된 전력을 사용해야 한다. 즉, 수소는 새로운 에너지 운반체일 뿐이다. 수소를 통해 자동차에 전달될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할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그것은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될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화력 혹은 핵 발전소에서 생산될 수도 있다. 아니, 에너지 효율성이 제자리걸음이고 자동차 사용 역시 현재 수준 그대로라면 십중팔구 화력·핵 발전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수소경제는 미래 에너지 체제의 비전으로서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토대 공사 없이 쌓아 올린 고층 빌딩과도 같다. 탈것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식이 충전식 배터리일지 아니면 수소연료전지일지는 차라리 지엽적인 문제다. 그보다 먼저 해결돼야 할 것은 바로 녹색 뉴딜 구상이 제기하는 문제들이다. 에너지 낭비를 최대한 줄이고 탄소 배출과 방사능 위험을 최소화한 에너지 생산 체제를 갖추는 일이다.

수소경제가 에너지 체제 전환이라는 진짜 과제를 회피하는 수단이 돼선 안 된다. 주류 정당과 대자본이 수소경제의 장밋빛 청사진에 스스로 도취해 있을 때에 다른 누군가는 에너지 체제 전환을 올곧게 강조해야 한다. 한국형 녹색 뉴딜을 제기하고 부단히 추진해야 한다. 진보정당의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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